한라산 특산식물, 깔끔좁쌀풀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12)
한라산 아고산대초원 고지대에 사는 깔끔좁쌀풀은 한해살이풀인데 개체수가 많지 않아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산식물이므로 한라산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멸종하게 될 운명을 타고났지만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되지도 않은 채 불투명한 미래를 살고 있다.
식물의 보고라 일컬어지는 제주도와 한라산에는 대략 1천800종의 식물들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70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서울 근교 산에 비할 바 못 되며, 지리산의 1천300여 종, 설악산의 1천여 종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다. 이는 또 남북한을 합한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절반에 이르는 숫자이기도 하다.
자라는 식물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식물들의 귀중함에서 있어서도 비길 곳이 없다. 한반도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열대식물이 저지대에 자라는가 하면, 한라산 정상부의 고산초원에는 남한에서는 볼 수 없는 고산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또 이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제주도에만 자라는 특산식물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희귀식물의 보고 한라산 아고산대초원
여느 산들과 다른 한라산의 모습은 해발 1천200m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아고산대초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초원지대에는 키 낮은 풀과 나무들로만 이루어진 식생이 발달하여, 남한의 고만고만한 산들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풍광을 연출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산식물을 길러낸다. 이곳의 고산식물들 중 많은 것이 세계적으로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한라산 고산초원이야말로 제주도의 식물다양성과 특이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한라산 고산초원에 자라는 고산식물로는 게박쥐나물, 구름떡쑥, 금방망이, 눈향나무, 두메대극, 들쭉나무, 산솜방망이, 설앵초, 손바닥난초, 시로미, 암매, 흰그늘용담, 흰땃딸기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희귀식물들로서, 남한 다른 곳에서는 자라지 않거나 자라더라도 숫자가 매우 적은 것들이다. 이들 중에서 손바닥난초, 암매 등은 환경부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 자라는 특산식물로는 눈갯쑥부쟁이, 제주달구지풀, 제주양지꽃, 제주조릿대, 제주황기, 좀민들레, 좀향유, 한라개승마, 한라고들빼기, 한라꽃장포, 한라솜다리, 한라장구채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세계에서는 오직 한라산에만 분포하는 고유종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특별히 보호해야 할 것들이다. 한라솜다리는 환경부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들 특산종 모두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정한 국제 기준에 의하면 멸종위기식물에 속한다.
한라산 특산 가을꽃 깔끔좁쌀풀
한라산 특산식물 가운데 하나인 깔끔좁쌀풀(Euphrasia coreana W. Becker, 현삼과)은 참으로 흥미로운 식물로 꼽을 만하다. 우리나라에 사는 산좁쌀풀속 식물들이 대부분 희거나 연한 노랑색 꽃을 피우는 데 비해 짙은 자줏빛 꽃을 피우는 것부터가 범상치 않다. 또한, 한해살이풀이라는 점도 특이한데, 생육 여건이 나쁜 고산지대에서 어렵게 싹을 틔운 후에 한 해만 살고 마는 식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키가 5~10cm로 매우 작을 뿐만 아니라, 늦여름부터 피는 꽃도 매우 작은데 화관의 길이가 5~6mm에 불과하다. 잎겨드랑이에서 약 1mm 길이의 짧은 꽃자루가 나오고 그 끝에 자줏빛 꽃이 한 송이씩 핀다.
깔끔좁쌀풀은 한해살이풀이기 때문에 씨를 만들지 못하거나 씨가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이듬해 싹을 틔우지 못하면 멸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라산에서 한 해 관찰되는 숫자는 수백 포기에 불과하며, 고산지대에 사는 식물이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에 매우 취약한 식물로 꼽히기도 한다.
이렇듯 멸종하기 쉬운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라산에서 멸종한다면,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특산식물이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셈이므로 보전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megalamen@daum.net
- 저작권자 2013.09.03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