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을 주는 동기부여

인간의도리인오대덕목(五大德目)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지키자.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한글 사랑은 애국입니다

조경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

카테고리 없음

분포의 수수께끼 간직한 ‘대성쓴풀’

대한인 2015. 12. 17. 05:36

분포의 수수께끼 간직한 ‘대성쓴풀’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15)

 

식물 한 종의 분포는 기후, 토양 같은 여러 물리적 조건들에 의해 결정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어떤 지역의 환경에 적응하게 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영역을 넓히거나 좁히며 살아간다.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식물은 분포 범위가 넓고, 적응력이 낮은 식물은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서 생육한다. 북한에도 자라지 않는 북방계식물인 대성쓴풀이 강원도 태백에 자라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서 수수께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 1984년 태백에서 처음 발견된 대성쓴풀은 만주 이북에 자라는 북방계식물로서 북한에도 분포하지 않는 희귀식물이다. 꽃은 5~6월에 핀다. 등산로 주변의 양지바른 곳에 자라기 때문에 훼손될 위험이 높다. 환경부가 지난해부터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현진오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분포양상을 보이는 식물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아열대 식물인 박달목서가 거문도에 대량 분포하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위도 상으로 더 남쪽이자 면적이 넓은 제주도에 불과 몇 그루만이 자라는 것에 비해 거문도의 동도와 서도에 많은 개체가 자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처럼 남방계열 식물 가운데도 예상치 못하는 분포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빙하기 잔존 식물들이 보여주는 분포의 수수께끼

하지만, 남한에서 수수께끼 같은 분포양상을 보이는 식물들은 대개 북방계열의 식물들이이다. 한라산 백록담에 자라는 암매도 그런 경우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무로 알려져 있는 이 식물은 북반구의 고위도 지방에 자라는 북방계식물이다.

북한의 어느 곳에서도 자라지 않을 정도로 극지에 가까운 고위도 지방을 고향으로 하는 나무가 백두산 등 북한의 2천 미터급 산들을 제쳐 두고 한라산에만 분포하는 것은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빙하기 때 한반도 여러 곳에 남하해 자라던 암매들이 기온이 올라가면서 모두 쇠퇴하였는데, 유독 한라산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한라산의 암매는 세계적으로 보아도 가장 남쪽에 분포하는 개체군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에 석회암지대에서 발견된 나도여로도 그런 식물이다. 2005년 남한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때,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평안북도와 함경도에 자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북한에서도 식물도감에 그림이나 사진으로 발표된 적이 없을 정도로 드물고, 남한에는 함경북도 관모봉에서 채집된 표본 한 장이 유일하게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세계적으로는 시베리아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만주, 몽골, 일본 등지에도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도범의귀는 남한에서 몇 해 전에야 발견된 북방계식물이다. 잎 크기가 1~2센티미터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꽃이 필 때가 아니면 발견하기 어려운 식물이 한 식물동호인의 눈에 띄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백두산 등 북부지방에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온 식물이 강원도의 한 골짜기에서 자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현장을 조사하고 나서 다시 한 번 생물들이 보여주는 여러 현상은 수학 공식이나 물리 법칙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바 있다.

북한에도 없는 북방계식물 대성쓴풀이 태백에 분포

▲ 10센티미터 내외의 크기로 자란 것도 꽃을 피우지만, 잘 자란 것은 높이 30센티미터에 이른다. 잎과 줄기가 연약하고, 꽃잎, 꽃받침, 수술이 각각 4개씩이다. 꽃잎 아래쪽 양쪽에 꿀샘이 있다. ⓒ현진오

 

대성쓴풀(Anagallidium dichotomum (L.) Griseb., 용담과)의 분포는 더욱 수수께끼 같다. 1984년 강원도 태백시 금대봉에서 이 식물을 처음 발견한 학자는 도대체 무슨 식물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남한이나 북한에서 발행된 도감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미기록 식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주, 몽골,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 자랄 뿐 한반도에서는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식물이었다.

학명은 있으나 우리말 이름이 없었으므로, 처음 발견한 학자에 의해 대성쓴풀이라는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 이 식물을 발견한 학자가 지형도에 봉우리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산의 이름을 금대봉이 아니라 대성산으로 잘못 알았기 때문에 ‘금대쓴풀’이 아니라 ‘대성쓴풀’이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북방계식물이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계곡에서 발견된 점도 흥미로운 일로 여겨진다.

금대봉 계곡에서 자라고 있는 대성쓴풀은 지난해부터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남한에서 발견된 개체군이 고작 2개뿐이고, 그나마 개체의 숫자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생지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등산로 주변이기 때문에 시급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정보호종으로 지정은 하였지만 독특한 생태 습성 때문에 보전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을에 뿌리까지 죽고 이듬해 봄에 씨에서 싹을 틔워 살아가는 한해살이풀이기 때문에, 한해살이 잡초들처럼 어느 정도 훼손된 환경에서 싹을 틔우므로 무작정 자생지를 철저하게 보호한다고 해서 이 종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필자는 현재 남한에 기록되지 않는 북방계식물 두 종을 발견해 관찰하고 있다. 이 식물들 역시 남한에서 산다는 것을 수긍하기 어려운 식물들이다. 두 식물 모두 나무여서 사람들 눈에 띄기 쉬운데도 불구하고 아직껏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필자를 흥분시키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식물의 분포를 밝히는 것도 현장 생물학자들에게 흥미로운 일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