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처럼 작은 북방계 나무, 홍월귤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17)
설악산은 남한에서 북방계 식물이 가장 많이 자라는 곳이다. 위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고도도 높고 바위가 발달한 능선이 많아서 북방계 식물들이 터를 잡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북방계 식물 가운데 가는다리장구채, 난장이붓꽃, 노랑만병초, 눈잣나무, 만주송이풀, 바람꽃, 배암나무, 비늘석송, 숲개별꽃, 이노리나무, 장백제비꽃, 홍월귤 등은 분포의 남방한계선이 되므로 학술적인 의의가 더 크다. 설악산의 북방계 식물 대부분은 보호의 손길을 기다리는 멸종위기식물들이며, 이 중에서 노랑만병초와 홍월귤은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몇 해 전 설악산 정상 부근에서 노랑만병초가 발견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설악산에 생육한다는 기록만 있을 뿐, 국내에서 채집된 표본조차 없는 이 식물의 발견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여러 해 동안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던 보전생물학자들이나 정책당국자들도 안도의 숨을 쉬었다. 노랑만병초는 백두산 수목한계선 위쪽에서 무리를 지어 자라는 대표적인 북방계 식물로서 설악산은 분포의 남방한계선에 해당한다.
설악산에는 노랑만병초 같은 북방계 식물들이 대거 자라고 있다. 이 산에 유독 많은 북방계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이유는 지리·지형적 요인들이 큰 몫을 담당한다. 북위 38도 이북에 위치하여 위도가 높은 지역이고, 높이 1천708미터에 이르는 대청봉을 비롯하여 높은 봉우리들이 고산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점 등이 북방계 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다.
게다가 한반도 산줄기의 뼈대이자 남북 식물의 이동통로 역할을 하는 백두대간을 이루며 솟은 산이므로 북쪽 식물들이 남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기에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고지대 능선에 바위지대가 발달해 있는 점도 북방계 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한낮의 강한 햇볕,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 건조 등으로 상징되는 고산의 바위지대가 북방계 식물들이 생육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설악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북방계 식물은 홍월귤 등 10여 종류
설악산에 살고 있는 북방계 식물은 100여 종류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설악산보다 남쪽의 산에까지 내려가 자라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설악산이 분포의 남방한계선이 되는 것들도 있다.
댕댕이나무, 두루미꽃, 솔나리, 땃두릅나무, 만병초, 산마늘, 솔체꽃, 산쥐손이, 홍괴불나무, 꽃개회나무, 부게꽃나무, 사스래나무, 분비나무, 왜솜다리 등의 북방계 식물은 설악산뿐만 아니라 남한의 여러 곳에서 살고 있어 분포지역이 비교적 넓은 종류들이다. 분홍바늘꽃, 닻꽃, 좀미역고사리, 큰잎쓴풀, 월귤, 눈향나무, 한계령풀, 등대시호, 들쭉나무, 두메오리나무, 눈측백, 기생꽃, 애기사철란, 이삭단엽란, 덩굴용담, 날개하늘나리 등은 설악산에 자라는 북방계 식물로서 설악산 남쪽의 몇몇 곳에서만 자라고 있다.
이들 가운데 월귤, 흰인가목, 큰잎쓴풀처럼 설악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오다 최근에 더욱 남쪽의 지역에서도 발견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한라산에 자라는 들쭉나무, 울릉도에 자라는 두메오리나무, 홍천에서 발견된 월귤, 경기도 연천에서 확인된 흰인가목처럼 설악산 외에는 오직 한 곳에서만 자라는 것들도 있다.
몇몇 북방계 식물은 오직 설악산까지만 내려와 자란다. 가는다리장구채, 난장이붓꽃, 노랑만병초, 눈잣나무, 만주송이풀, 바람꽃, 배암나무, 비늘석송, 숲개별꽃, 이노리나무, 장백제비꽃, 홍월귤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앞으로 설악산 이남지역에서도 발견될지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오직 설악산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가는다리장구채, 만주송이풀, 바람꽃, 배암나무, 이노리나무 등은 설악산 내에서의 분포 범위가 비교적 넓은 편이고, 나머지 종들은 생육지가 한두 곳밖에 되지 않는다.
설악산까지만 내려와 자라는 북방계 식물들 가운데 나무는 노랑만병초, 눈잣나무, 배암나무, 이노리나무, 홍월귤 등인데, 노랑만병초와 홍월귤은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두 나무 모두 설악산에서도 단 한 곳씩의 자생지만이 알려져 있다.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된 풀처럼 작은 나무
홍월귤(Arctous ruber(Rehder & E. H. Wilson) Nakai, 진달래과)은 키가 10cm쯤에 불과하지만 풀이 아니라 나무이다. 풀처럼 작은 나무인 셈인데, 길이 5cm에 이르는 도란형 잎이 무성하게 돋는 시기에는 나무가 아니라 풀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백두산에서는 해발 2천m 이상의 수목한계선 위쪽 고산툰드라 지역에서 풀들에 섞여 자라는 모습을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과거 빙하기 때 남하했던 잔존 개체군이 설악산 꼭대기 부근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설악산 개체군은 생육범위가 좁고 개체수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절멸할 위험성이 높다. 더욱이 개체군 자체가 탐방로에 의해 양쪽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생존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또한 꽃은 피지만 열매가 맺는 개체가 관찰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땅속줄기에서 새싹이 생기는 무성생식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의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적인 북방계 식물들로 꼽히기도 하므로, 이래저래 남한에서는 절멸의 길로 접어든 식물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다른 기사 보기megalamen@daum.net
- 저작권자 2013.11.1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