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에서 거제도까지 사는 특산식물, 애기송이풀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21)
애기송이풀은 세계적으로 한반도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개성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경기도, 강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에 이어 최근에는 거제도에서도 발견되어 분포하는 면적이 넓다. 하지만 군락의 숫자는 남한 전체에 10개 남짓할 뿐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자생지가 각종 개발로 훼손되기 쉬운 저지대이기 때문에 보호시설 등 자생지 보호를 위한 조치가 시급히 필요한 실정이다. 지난해에야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추가 지정해 보호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로 볼 때 자생하는 분포역이 넓은 데도 불구하고, 개개의 자생지를 손꼽아 보면 불과 몇 곳에 지나지 않는 식물들이 가끔 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미선나무는 황해도부터 전라북도, 충청북도에 걸쳐 널리 자라지만 개체군은 10여 개에 불과하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광릉요강꽃의 경우에도 강원도, 경기도, 충청북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에 널리 생육하지만, 개체군은 역시 10여 개에 불과하다. 이런 현상을 보이는 식물들은 대개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애기송이풀(Pedicularis ishydoyana Koidz. & Ohwi, 현삼과)도 이런 종류의 식물 가운데 하나다.
애기송이풀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일제 강점기 때 개성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에 근래까지 생육지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식물이지만, 식물 동호인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곳에서 자생지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경기도 연천, 가평, 포천, 강원도 횡성, 충청북도 제천, 괴산, 경상북도 영양, 울진, 경주, 경상남도 거제 등지에서 생육이 확인되고 있는데, 분포지역은 이처럼 상당히 넓지만 개체군 숫자는 10여 개에 불과하다.
애기송이풀은 일본인 식물학자 이시도야 츠토무(石戶谷 勉)가 개성 천마산에서 처음 채집하였고, 이 표본을 근거로 하여 일본인 식물학자 오위(大井次三郞) 등이 1937년에 신종으로 발표하였다. 신종을 발표할 때 사용하였던 기준표본은 도쿄대학 식물표본관에 보관되어 있다. 개성의 천마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천마송이풀이라는 우리말 이름도 갖고 있다.
개성에서 이 식물을 채집해 일본에 보낸 이시도야는 모리(森 爲三), 우에끼(植木秀幹)와 함께 나카이(中井猛之進)의 3대 제자였으며, 조선총독부 산림국 중앙임업시험장에서 특용식물을 연구하다가 경성제대 의학부 약리학교실(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전신) 교수로 옮겨 약용식물을 연구하였다. 250여 종의 한약재를 담은 ‘중국 동북지방의 약초(北支那の藥草)’ 등의 저서를 남겼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분류학자로 일컬어지는 정태현 박사와 함께 식물을 연구하기도 했다. 북한산의 산개나리를 처음 발견하였으며, ‘이시도야제비꽃’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애기송이풀이라는 우리말 이름은 송이풀에 비해 줄기가 작다는 데서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송이풀은 줄기가 있는 식물로 높이 60cm에 이르지만, 애기송이풀은 뚜렷한 줄기가 없이 뿌리에서 잎과 꽃자루가 나온다. 잎은 잎자루 길이 15cm, 잎몸 길이 20~30cm에 이를 정도로 대형이지만 땅바닥에서 옆으로 드리워져 있어 식물체 전체로 보면 작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붉은 보라색으로 피는 꽃 또한 대형이지만 바닥에서 피므로 작아 보인다. 실제로 꽃은 꽃자루 6cm, 꽃부리 길이 3cm에 이르는데 송이풀속(屬) 식물들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은 크기로서 구름송이풀이나 한라송이풀보다 훨씬 크고, 북한에 자라는 큰송이풀에 버금간다. 애기송이풀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잎도 크고 꽃도 큰 식물인 셈이다.
하지만 꽃이나 잎은 매우 연약하다. 꽃은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에 피어, 우리나라 송이풀속의 다른 종이 대부분 여름에 피는 것에 비해 매우 일찍 핀다. 중부지방의 자생지에서 관찰해 보면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붉은빛이 도는 새싹이 돋아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고사리류의 어린잎처럼 보인다.
애기송이풀이라는 우리말 이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49년 정태현 박사 등이 펴낸 ‘조선식물명집’에는 천마송이풀로 기록되었으며, 1956년 정태현박사의 ‘한국식물도감’부터 애기송이풀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따라서 우선권 원칙을 준수한다면(우리말 이름에 대한 우선권 원칙이 정립되지는 않았음) 천마송이풀이라 불러야 한다.
게다가 1956년의 애기송이풀이라는 이름과 연계된 학명 ‘P. songdoensis T. H. Hyun’은 현재 ‘P. ishydoyana Koidz. & Ohwi’의 다른 학명으로 취급되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1999년 북한에서 출판된 ‘증보판 조선식물지’ 6권에는 천마송이풀과 애기송이풀이 따로 등재되어 있는데, ‘P. ishydoyana Koidz. & Ohwi’라는 학명의 우리말 이름은 천마송이풀로 되어 있다.
애기송이풀은 희귀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며, 꽃이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채취될 위험도 높다. 더욱이 자라는 장소 대부분은 민가에서 가까운 저지대이기 때문에 도로 확장, 택지 개발 등에 의해 생육지 자체가 훼손되어 사라질 위험이 매우 높다. 때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2012년부터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함으로써 법적인 보호 장치는 마련되었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다른 기사 보기
- 저작권자 2014.01.0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