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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열대에 온 바닷가의 토종 무궁화, 황근

대한인 2015. 12. 22. 08:15

아열대에 온 바닷가의 토종 무궁화, 황근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22)

 

바닷가는 이용가치가 높기 때문에 훼손압력 또한 높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숲을 이루는 깊은 산골짜기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개발 바람을 더욱 쉽게 탄다. 하지만 바닷가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독특한 환경에 적응해 온 식물들이 살고 있다.

이런 식물들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각종 해안 개발 때문에 생육지 자체가 파괴되어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남부지방의 바닷가에서 여름철에 꽃을 피우는 황근은 멸종위기에 놓인 대표적인 바닷가 나무이다.

바닷가는 사시사철 끊임없이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항상 땅이 메말라 있는 열악한 환경을 가진 곳이다. 이처럼 소금기가 많고 건조한 환경은 생물들이 살아가기에 어려운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바닷가에도 수많은 식물이 적응하여 살고 있으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이런 식물들은 어떻게 소금기 많고 수분은 적은 바닷가에서 살 수 있을까? 바닷가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이곳 식물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특수하게 적응해 왔다. 자신의 세포 속에 소금기가 많이 축적되어도 살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은 그런 적응의 결과다. 세포 속에 소금기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물을 쉽게 흡수할 수도 있는데, 세포 안의 삼투압 값이 높아서 세포 밖에서 물을 잘 받아들일 수 있다. 퉁퉁마디, 칠면초, 나문재 등이 이런 생태적 습성을 잘 보여주는 식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을 ‘염생식물’이라 한다.

▲ 노란무궁화라고도 부르는 황근은 무궁화속(屬) 식물 중에서 우리나라 유일의 자생 수종이다. 무궁화나 부용처럼 수술들이 하나로 뭉쳐진 덩이수술을 가진 꽃을 피운다. ⓒ현진오


통통한 잎과 줄기를 가진 것도 바닷가 식물이 보여주는 특징이다. 땅채송화, 퉁퉁마디, 낚시돌풀, 번행초, 갯개미자리, 선인장 등이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퉁퉁마디는 줄기 마디가 불룩불룩 튀어나와서 우리말 이름을 얻은 식물로서 잎이 비늘 모양으로 퇴화해 버린 특징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바닷가에 자라는 ‘다육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육식물처럼 잎이 퉁퉁하기까지는 않더라도 많은 바닷가 식물들은 잎이 두꺼운 특징을 보인다. 이런 식물로는 해국, 참골무꽃, 갯메꽃, 모래지치, 갯기름나물, 섬현삼 등이 있다. 또한, 바닷가에는 윤기가 나는 잎을 가진 식물도 많다. 통보리, 갯메꽃, 갯까치수영, 갯강활 등이 그것이다.

절멸 위기로 내몰리는 바닷가 식물들

나무들 가운데도 바닷가에 잘 적응해 사는 것들이 있다. 곰솔이라고 부르는 해송도 이런 식물 가운데 하나다. 소나무보다 잎이 더 두껍고 윤기가 나는데, 소금기 많은 해풍에 잘 견딘다.

▲ 가을에 익는 열매 안에는 여러 개의 씨가 들어 있다. 제주도 한라수목원 같은 환경부 지정 서식지외보전기관에서는 씨를 파종하거나 꺾꽂이하여 증식된 개체들을 키우고 있다. ⓒ현진오

 

돌가시나무나 순비기나무는 바닷가에서 낮게 몸을 낮추어 자라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거센 바람을 이겨낼 수 있다. 줄기 곳곳에서 모래땅 속으로 뿌리를 뻗어 내리는 순비기나무는 해안사구의 모래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막아주기도 한다. 팥꽃나무, 보리밥나무, 산황나무, 장구밤나무처럼 염생식물이나 다육식물 같은 특별한 적응기작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유독 바닷가를 좋아하는 나무들도 있다.

바닷가에 사는 식물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절멸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울릉도 바닷가에 사는 섬현삼은 해안도로 때문에 살 곳을 잃어가고 있고, 전국의 바닷가에 자라는 초종용은 생육지 자체가 파괴되어 사라지고 있다. 갯방풍, 갯기름나물은 나물과 약초로 채취되어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풀꽃들뿐만 아니라 바닷가에 사는 나무들도 멸종위기에 놓인 것이 있는데, 박달목서, 갯대추나무, 황근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바닷가에만 자라는 갯대추나무는 해안 개발로 인해 자생지가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박달목서는 제주도와 거문도의 바닷가에 자라고 있지만, 바닷가에만 자라지 않고 바다 근처의 산지에도 자라므로 진정한 바닷가 식물이라 할 수 없다.

무궁화 종류들 가운데 유일한 토종 식물

황근(Hibiscus hamabo Siebold & Zucc., 아욱과)은 ‘노란(黃) 꽃이 피는 무궁화(槿)’라는 뜻을 가진 나무다. 무궁화를 비롯한 닥풀, 수박풀, 부용 등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무궁화속(屬) 식물은 모두 외래종이므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유일무이한 무궁화속 식물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와 전라남도 소안도, 나로도 해안에서만 자라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2~4m로 낮게 자라는 떨기나무지만 일본 큐슈 등지에서는 키가 7~8m까지 자란다.

▲ 나로도 바닷가의 황근 자생지. 제주도 해안, 소안도와 함께 몇 안 되는 자생지 중의 하나이며, 분포의 가장 북쪽 한계선에 자리 잡아 학술적 가치가 크다. 종 자체를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현진오


어린 가지와 잎 뒷면에 누런색 털이 많은데, 현미경으로 보면 별 모양으로 생겼다. 지름 5~8cm의 꽃이 6~8월에 연한 노란색으로 핀다. 목포 등 남부지방에서 월동이 잘되므로 정원수나 가로수로 심어도 좋은 나무다. 일본에서 발견하여 1841년에 신종으로 기록된 식물이며, 세계적으로는 일본 보닌제도 및 류큐제도, 중국 저장성 등지의 바닷가에 분포한다. 인도와 하와이에서는 도입하여 키우기도 한다.

산지보다 바닷가 땅은 이용가치가 높기 때문에 파헤쳐져 자연성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 살고 있는 해변식물들은 훼손압력이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바닷가 전체를 개발하지 말자는 주문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므로, 개발할 곳과 보전할 곳을 잘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전할 곳을 선정할 때는 그곳에 사는 해변식물도 중요하게 여겨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