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자원으로서 가치 높은 ‘아이리스’, 대청부채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23)
관상가치, 원예가치가 높은 야생식물들은 식물사냥꾼들의 수집목표가 된다. 아름다운 꽃이 피는 붓꽃종류들은 난초류, 나리류, 비비추류 등과 함께 식물사냥꾼들의 대표적인 타깃 식물이 되어 왔다.
붓꽃류는 세계적으로 북반구의 온대와 아한대에 150종쯤이 자라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13종이 자라고 있는데 하나같이 관상가치가 높다. 중국과 우리나라 서해안 몇몇 섬에서만 자라는 대청부채는 관상가치와 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지만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대표적인 붓꽃류이다. 환경부는 대청부채를 비롯하여 노랑붓꽃, 솔붓꽃, 제비붓꽃 등 4종의 붓꽃속 식물을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생물을 분류하는 단위 중에서 종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계급을 속(屬)이라 한다. 비슷하게 생긴 형제자매들의 모둠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종의 붓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속을 붓꽃속이라 한다. 이 속에는 남한에 사는 것만 해도 각시붓꽃, 금붓꽃, 꽃창포, 난장이붓꽃, 노랑무늬붓꽃, 노랑붓꽃, 대청부채, 부채붓꽃, 붓꽃, 솔붓꽃, 타래붓꽃, 제비붓꽃 등 12종이 있고, 북부지방에는 만주붓꽃이 자라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150여 종이 포함된다. 영어로는 아이리스(Iris)라고 하는데, 붓꽃 종류를 통칭하는 영어이자 붓꽃속을 이르는 라틴어 속명(屬名)이기도 하다. 붓꽃이라는 우리말 이름은 꽃봉오리의 모양이 글씨를 쓰는 붓 끝을 닮아서 붙여졌다.
붓꽃 종류들은 꽃잎, 꽃받침, 암술대가 꽃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맨 바깥쪽에 3장의 꽃잎이 붙어 있고, 그 안쪽에 3장의 꽃받침이 붙어 있지만, 서로 비슷한 모양이어서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통틀어 화피(花被)라고 부른다. 꽃받침에 해당하는 화피를 외화피 또는 바깥화피라고 하고, 꽃잎에 해당하는 안쪽의 것을 내화피 또는 안쪽화피라고 한다. 외화피가 더욱 크고 화려한 것이 보통인데, 외화피의 중앙부에는 흔히 무늬가 있다. 내화피는 외화피와 번갈아 가며 붙어서, 수직으로 곧게 서 있다.
붓꽃류의 꽃에는 화피와 비슷한 모습을 한 것이 3장 더 있는데, 색깔이 화피처럼 화려하고 크기도 크다. 이것은 암술머리가 3갈래로 갈라진 것으로서 외화피 안쪽에 가까이 붙어서 달려 있다. 이 암술머리 갈래와 외화피 사이에는 틈이 조금 있는데, 그 사이로 꿀벌이 드나들며 꽃가루받이를 시켜준다.
대청부채(Iris dichotoma Pall., 붓꽃과)는 붓꽃속 식물이면서도 꽃창포처럼 붓꽃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청도, 백령도, 함경북도에 자라며, 세계적으로는 만주, 러시아 극동지역, 몽골 등지에 분포한다. 대청부채라는 이름은 대청도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잎이 부챗살처럼 넓게 퍼진다는 데서 유래했다. 북한에서는 참부채붓꽃이라 부른다. 자라는 곳 자체가 적고, 관상가치 때문에 채취될 위험성이 높아 환경부가 오래 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 보호해 왔다.
우리나라 붓꽃속 식물들이 하나의 줄기에 한 개 또는 두 개의 꽃을 피우는 데 비해 대청부채는 여러 개의 꽃을 피운다. 각각의 꽃들은 Y자로 갈라진 꽃대 끝에 달리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학명에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는 뜻의 ‘디코토마(dichotoma)’라는 종소명이 붙어 있다. 8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해 한 달쯤 꽃이 핀다.
대청부채는 생물시계로도 유명하다. 생물이 어떤 행동을 정해진 시간에 반복하는 것을 생물시계라고 하는데, 대청부채는 꽃을 피우고 오므리는 시각이 일정하다. 오전에는 피지 않고 봉오리 상태로 있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그것도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꽃이 활짝 핀다. 얼마나 정확하게 피는지, 정각 3시에 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적도 있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직접 관찰한 바로는 꽃이 지는 시각도 정확하다. 밤 10시가 되면 화피를 비틀어 접고 휴식을 취한다.
이런 특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시기를 달리하여 아침에 자생지를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언제나 봉오리만 보고, 활짝 벌어진 꽃은 볼 수 없었다는 푸념을 하기도 한다. 붓꽃이면서도 다른 붓꽃속 식물들과는 이름은 물론이고 꽃의 숫자, 사는 곳 등이 다른 대청부채는 그 습성 또한 매우 독특한 셈이다.
솔붓꽃, 제비붓꽃, 노랑붓꽃도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
붓꽃종류들은 원예가치가 매우 높은 식물들이다. 외국에는 전 세계의 붓꽃 종류들만을 모아 놓은 식물원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있는 붓꽃 종류들도 하나같이 자원으로서 가치가 높다.
전국에 자라는 각시붓꽃과 금붓꽃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타래붓꽃은 마을 근처에서 발견된다. 난장이붓꽃과 부채붓꽃은 북쪽을 고향으로 둔 북방계식물로서 남한에서는 드물다. 설악산, 향로봉 등에서 발견되는 난장이붓꽃은 높은 산을 좋아하고, 삼척, 강릉, 속초 등지에서 드물게 자라는 부채붓꽃은 습지를 좋아한다. 노랑무늬붓꽃은 오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여겨져 오다 최근에 만주에서도 발견된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2012년까지 환경부가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한 바 있다.
솔붓꽃과 노랑붓꽃은 자라는 지역이 매우 한정되어 있다. 특산식물인 노랑붓꽃은 금붓꽃을 닮았으나 꽃을 항상 두 개씩 피운다. 대구 일대의 저지대에 분포하여 멸종 위험이 매우 큰 솔붓꽃은 2012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다. 제비붓꽃 또한 2012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되었는데, 그동안은 북부지방에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오다 최근에 강원도 동해안 습지와 지리산 고산습지에서 발견되었다.
대청부채를 비롯하여 노랑붓꽃, 솔붓꽃, 제비붓꽃 등 4종류나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되어 있고, 노랑무늬붓꽃, 꽃창포, 난장이붓꽃, 부채붓꽃 등도 자생지역이 좁고 개체수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붓꽃속 식물 대부분이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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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4.02.0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