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말띠’는 양력일까 음력일까
달력에 숨은 태양과 달의 원리 (3)
2014년 ‘청말띠’의 해가 밝았다. 말띠 중에서도 특히나 활기차고 지혜롭다는 청말띠는 ‘여자의 성격이 드세고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을 낳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청말띠에 태어난 여성 위인을 예로 들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동양에서 사용되는 ‘띠’는 총 12가지의 동물을 정해두고 해마다 하나씩 대입하는 방법이다. 이를 ‘12지(支)’ 또는 ‘12지지(地支)라 한다. 자(子)에서 시작해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순서로 이어진다.
고대 중국에서 체계화된 12간지는 년, 월, 일을 구분하기 위해 60진법을 도입한 데서 시작되었다. 12지를 하나의 축으로 여기는 방식 이외에 또 다른 10개의 요소를 합친 ‘10간(干)’ 또는 ‘10천간(天干)’이 있다. 갑(甲)에서 시작해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로 이어진다. 이 두 가지를 합쳐 ‘10간 12지’라 부른다.
10간과 12지 합친 동양의 60간지 계산법
천간과 지지를 두 축으로 놓고 한 글자씩 따서 이어붙이면 ‘간지(干支)’가 된다. 첫 글자인 ‘갑’과 ‘자’를 합치면 첫 번째 간지인 ‘갑자’가 생긴다. 이후 두 번째 글자인 ‘을’과 ‘축’을 붙여 ‘을축’을 만들고, 세 번째 글자인 ‘병’과 ‘인’을 붙여 ‘병인’을 조합한다.
이런 식으로 정묘, 무진, 기사, 경오, 신미, 임신, 계유까지 10개의 간지를 만든 후에는 다시 10간의 첫 번째 글자인 ‘갑’과 지지의 ‘유’ 다음에 나오는 ‘술’을 붙여 ‘갑술’을 이어붙인다. 이렇게 해서 조합을 구성하면 10과 12의 최소공배수가 60이므로 갑자부터 계해까지 총 60개의 간지가 만들어진다.
60간지를 한 해에 하나씩 붙이면 연도를 따지기 편하다. 지난해가 갑자년이었다면 올해는 을축년이고 내년은 병인년이 된다. “무슨 해에 태어났는가” 하는 질문에 “무신년 생이오” 하면 자기보다 몇 살 위인지 또는 아래인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6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연도를 따질 때는 계산이 쉽지 않다. 임진왜란은 임진년에 발생했지만 그 임진년이 1532년인지 1592년인지 1652년인지 금세 알 수가 없다.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는 서양의 연도 계산법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음력 체계에서 간지는 년뿐만 아니라 월, 일, 시에도 붙인다. 갑자가 60지지의 출발점이므로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이 있었을 것이다. 제주도 무속 전통에서 불리던 서사무가 ‘본풀이’ 중 ‘천지왕 본풀이’에는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이 열리고 을축년 을축월 을축일 을축시에 땅이 열려 만물이 생겼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사주’라 불리는 운세 계산법도 60간지를 년월일시에 적용해 연주, 월주, 일주, 시주를 만든 것이다. 주마다 두 글자의 간지가 붙으므로 총 여덟 글자가 되어 ‘팔자’라 불린다. ‘사주팔자’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사주에서는 60간지를 년과 일에 적용하고 월과 시는 12개로 나누어 적용한다. 그 결과 50만 가지가 넘는 생년월일시가 산출된다. 여기에 남녀를 구분하고 환경에 따른 영향력을 덧붙이면 각 개인의 운세가 겹치는 일이 드물어 고유성을 지닌다.
60간지를 이용해 동물 띠에 색깔까지 부여해
그런데 아시아의 국가들은 12지지마다 동물의 속성을 부여하는 전통이 있다. 동쪽으로는 일본부터 서쪽으로는 베트남과 인도를 지나 아라비아에서도 열두 동물을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1천년의 은나라 때부터 사용되었다 하지만 문헌에는 기원후의 후한 때에 최초로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는 쥐, 축은 소, 인은 호랑이, 묘는 토끼, 진은 용, 사는 뱀, 오는 말, 미는 양, 신은 원숭이, 유는 닭, 술은 개, 해는 돼지를 대입한다. 12지지를 연도에 대입하고 동물을 부여한 것이 우리가 말하는 ‘띠’다.
‘자’가 들어가는 해는 모두 쥐띠라 부른다. 갑자, 을자, 병자, 정자, 무자, 기자, 경자, 신자, 임자, 계자 등 10가지의 해가 모두 쥐띠다. 올해는 ‘갑오년’이므로 12지지 중 ‘오’가 들어가 말띠의 해다.
그러나 10천간에 따라 띠 동물에 색깔을 입히기도 한다. 10천간을 2개씩 나누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로 이루어진 ‘오행’을 적용한 방식이다. 갑과 을은 오행 중 청색(목), 병과 정은 홍색(화), 무와 기는 황색(토), 경과 신은 백색(금), 임과 계는 흑색(수)이 부여된다.
이 두 가지 계산법을 한데 적용하면 갑오년은 갑의 청색과 오의 말띠가 합쳐져 ‘청말띠’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는 계사년이었으니 계의 흑색과 사의 뱀띠를 합쳐 ‘흑뱀띠’로 불렸다. 내년은 을미년이며 을의 청색과 미의 양띠가 만나 ‘청양띠’가 된다.
실제로 푸른색 말이나 양은 없지만 색깔과 동물의 상징을 결합시켜 그 해에 태어난 사람의 성격을 따지기도 한다. 청은 활기차다는 뜻이라서 여성에게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청말띠에 태어난 여성은 팔자가 드세거나 성격이 사납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해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성격을 지녔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또한 12지지에 해당하는 동물은 나라마다 다르다. 베트남에서는 토끼 대신 고양이를 사용하고, 태국에서는 돼지의 자리에 코끼리를 놓는다. 동물의 특징으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면 토끼 띠의 해에 태어난 우리나라 사람과 베트남 사람의 성격도 다르게 봐야 할까.
음력도 양력도 아닌 계산법을 적용하는 띠
게다가 띠는 음력도 양력도 아니다. 60간지의 연도를 따르기 때문에 음력으로 계산하는 것 같지만 음력으로 1월 1일이 되는 설날에 새로운 띠가 시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력 1월 1일에 새 띠가 시작되지도 않는다. 언제부턴가 신정이 되면 뉴스에서도 “말띠 해가 밝았다”, “호랑이의 해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높다”는 식으로 띠를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양력 새해와 함께 새 띠가 시작하지 않는다.
사주학에서는 24절기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입춘’에 새로운 띠를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반영한 계산법이므로 양력으로 봐야 하겠지만 계산법을 보면 분명히 결론을 내리기도 힘들다. 양력과 음력의 차이 때문에 어떤 해에는 설날이 입춘보다 빠르고 다른 해에는 더 뒤에 오기도 한다.
설날이 입춘보다 먼저 온다면 60간지의 연도는 이미 바뀌었지만 띠는 아직 변하지 못하고 양력 2월 초의 입춘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설날이 입춘보다 늦다면 아직 60간지의 연도가 바뀌지 않았어도 새 띠를 부여한다.
올해 갑오년의 설날은 1월 31일이었고 입춘은 2월 4일이었다. 1월 30일은 계사년이었으므로 뱀띠이고 1월 31일은 갑오년이니 말띠라고 따져서는 안 된다. 입춘이 다가오지 않았으니 2월 3일까지는 해는 갑오년이지만 띠는 아직 뱀띠다. 양력도 음력도 아닌 묘한 계산법이다.
일부에서는 입춘이 아닌 ‘동지’를 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4절기 중 동지가 들어 있는 달을 그 해의 첫 달로 보는 고대 중국의 태양태음력 방식을 따른 것이다. 양력이 아닌 음력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12지는 음력의 60간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띠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TV에서는 올해처럼 양력 1월 1일이 되면 양띠 해를 축하할 것이다. 설날이 양력 2월 19일이라서 2월 4일 입춘보다 느리므로 2월에는 설날이 되기 전부터 띠가 양띠로 바뀐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동지에 바뀌므로 올해 12월 22일부터 이미 양띠가 시작되는 것일까. 풍습과 과학의 간격은 달력으로도 메꾸기 어렵다. (계속)
- 임동욱 객원기자im.dong.uk@gmail.com
- 저작권자 2014.02.2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