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에 민감한 습지식물, 독미나리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27
지구온난화에 의해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 식물들이 한반도에서 점차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특히, 북방계 습지식물들은 생육지 파괴 압력도 높기 때문에 더욱 큰 멸종위험에 놓여 있다.
북방계 습지식물 가운데 하나인 독미나리는 남한에서는 연못과 수로에 소수 개체군만이 생육하고 있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식물이다. 이 여러해살이풀은 부채붓꽃, 선제비꽃, 조름나물 등과 함께 기온 상승 및 생육지 파괴에 의해 사라질 대표적인 자생식물로 손꼽힌다.
보전생물학자들은 인간 활동에 의한 식물 멸종의 원인을 생육지 파괴, 단편화, 외래식물 침입, 무분별한 채취, 환경오염, 질병 등 6가지 정도로 꼽는다. 최근에 식물 멸종의 원인으로 더해지는 것이 지구온난화이다.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서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식물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한반도 식물들 중에는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식물들이 쇠퇴할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북방계 습지식물들은 단기간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연못, 늪 같은 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이곳들을 메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습지식물 생육지 파괴가 높은 강도로 진행되고 있고, 이 때문에 많은 습지식물과 수생식물들이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습지 파괴, 온난화로 위기 맞은 북방계 습지식물
우리나라 식물도감에 나와 있는 수생식물인 벌레먹이말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1949년부터 우리나라 식물목록에 등장하고, 낙동강 배후습지에서 채집도 되었지만 그 이후에 이 식물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계적으로도 자생지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자생지 밖에서 증식된 개체들만이 살고 있는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정의 따르면 이러한 ‘자연에서의 멸종’도 멸종의 범주에 들어간다.
일본은 이 식물의 자생지를 천연기념물 지정했지만, 그곳에도 원래 살던 개체들은 이미 절멸하였고, 인공으로 증식하여 재도입한 개체들만이 살고 있을 뿐이다.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만주, 우수리, 아무르, 시베리아 등 동북아시아에 널리 분포했던 식물이므로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북한 지역에 살아 있다면 오죽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벌레먹이말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수생 및 습지식물들이 멸종위기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자생지가 몇 곳 되지 않고, 그 자생지마저 높은 훼손압력에 놓여 있으면서 또 다른 멸종 위협에 맞닥뜨린 식물들이 있다. 개통발, 독미나리, 부채붓꽃, 선제비꽃, 조름나물 등은 습지식물이라는 공통점 외에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 식물이라는 점도 같은데, 이 때문에 온난화라는 새로운 위협 요인에 직면해 있다. 빙하기 때 남하한 후 몇몇 자생지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멸종될 가능성이 높은데, 기온이 다시 더 올라간다면 이들은 머지않아 절멸의 길로 들어설 것이 분명하다.
독미나리(Cicuta virosa L., 산형과)는 대관령과 정선 아우라지 부근에 몇몇 개체만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온 북방계 습지식물이다. 몇 해 전에 강원도 횡성에서 매우 큰 자생지가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전라북도 군산에서도 발견되어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만주나 연해주에서는 논과 밭의 수로나 마을 부근의 습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잘 자라면 높이 150cm까지 자라는 대형 풀이며, 이른 봄에 일찍 싹이 돋아난다. 여름이 되면 겹으로 된 우산모양꽃차례에 흰 꽃이 달린다. 작은 우산모양꽃차례는 20개쯤이며, 둥글고, 지름 2cm쯤이다. 꽃잎은 가운데에 검은 줄이 있고, 끝이 안쪽으로 조금 오므라든다. 암술대는 열매가 익을 때 아래로 구부러진다. 열매는 둥근 달걀 모양이다.
율곡이 어린잎 식용한 기록 남아 있지만 독초
뿌리에는 아주 강한 독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린잎을 나물로 먹었다는 일화가 정선 아우라지 부근 자생지인 동초밭 일대에서 전해 내려온다. 노추산에서 수학하던 율곡선생이 초봄에 미나리처럼 생긴 독미나리를 뜯어다가 나물로 해 먹고 그 풀이 자라는 곳을 동초밭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독미나리와 같은 산형과 식물 중에서 뿌리에는 독이 많지만 어린잎이나 줄기를 나물로 먹는 비슷한 경우가 왜우산풀(누룩치, 누리대), 지리강활 등에서도 알려져 있다. 봄철 어린잎에는 독성분인 이차대사물질이 생성,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온난화에 의해 앞으로 더욱 큰 멸종위기에 놓일 것으로 예상되는 독미나리는 현재에도 생육지 파괴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횡성 자생지는 공업단지로 개발될 뻔하다가 가까스로 파괴를 면했지만, 주변 개발로 인해 원형을 잃어버렸다.
최근에 2만여 개체가 생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나라 최대 군락지로 평가되고 있는 군산 백석제 자생지에는 올해 중으로 전북대학교 군산병원이 착공될 예정이다. 과학체험관 건설로 멸종되어 버린 울진 연호의 멸종위기식물 조름나물 같은 어리석고 슬픈 전철을 되밟을까봐 걱정이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다른 기사 보기
- 저작권자 2014.04.0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