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해살이 울릉도 특산식물 ‘섬시호’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33
일제 강점기이던 1917년 일본인 학자가 발견해 울릉도 특산종으로 발표한 섬시호는 197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아 지구상에서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2000년에 자생지가 다시 발견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생지에서 싹을 틔우는 개체가 극소수에 불과한 두해살이풀이기 때문에 멸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전문>
환경부는 지난 1989년부터 멸종위기에 놓인 생물들을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기 시작했다. 환경보전법에 의해 특정야생동식물이라는 명칭으로 보호종을 지정하기 시작해 1998년 자연환경보전법에 의한 멸종위기야생동식물 및 보호야생동식물을 분류했다. 2005년부터는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멸종위기야생동식물 I급과 II급, 2012년부터는 야생생물보호법에 의해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과 II급이라는 이름으로 멸종위기 동물과 식물을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현재는 246종이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과 II급으로 나뉘어 지정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I급 9종과 II급 68종의 식물이 포함되어 있다.
환경부가 지정, 관리하는 생물들을 화보집으로 만들어 배포할 때마다 그림으로 대치하던 식물이 섬시호다.
필자도 1998년 한 출판사에서 ‘원색도감 한국의 멸종위기 및 보호야생동식물’을 출간할 때 식물 분야를 담당했는데, 섬시호 사진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 표본사진으로 대신한 적이 있다.
이처럼 환경부가 1993년부터 특정야생동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기 시작하였으나, 그 실체가 오랫동안 확인되지 않던 식물이 바로 섬시호인 것이다.
1917년 발견된 울릉도 특산식물
섬시호는 1917년 일본인 식물분류학자 나카이(T. Nakai, 1882-1952)가 울릉도에서 발견해 신종으로 발표하였다.
세계적으로 울릉도에만 분포하는 울릉도 특산식물이지만 애초부터 개체가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초 도동의 바위지대에서 채집된 표본을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이 식물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표본이 채집되었던 도동 일대는 개발되어 주택들이 들어선 지 오래다.
30여 년 동안 발견되지 않아 멸종된 것으로 여겨지던 섬시호가 재발견된 것은 2000년이다. 이때 필자는 100여 일 동안 울릉도에 머물며 식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현지 주민들과 학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식물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국립수목원 현지 조사 팀의 제보를 받은 것은 그 해 9월경이었다. 몇몇 어린 개체를 발견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촬영해 ‘희귀식물의 보고, 울릉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2001년 1월 방송했다. 이후에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어 현재는 3곳에서 자생이 확인되고 있다.
섬시호(Bupleurum latissimum Nakai, 산형과)는 두해살이풀로 싹을 틔운 첫해에는 뿌리에서 난 잎만이 몇 장 자라다가 이듬해 높이 70~130cm에 달하는 줄기가 나오고 꽃을 피운다. 꽃이 지고 열매가 달리면 뿌리를 포함해 식물체 전체가 죽는다.
첫해에 뿌리에서 돋아난 잎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는데, 이 점은 우리나라에 사는 다른 시호종류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다. 꽃은 5월 말에 줄기 끝부분 잎겨드랑이에서 난 겹산형꽃차례에 여러 개가 달려서 노란색으로 핀다. 5월에 일찍 피는 개화 특성도, 7월에 개화하는 다른 시호종류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열매는 7월에 익는다.
두해살이 습성 때문에 발아 실패하면 멸종
섬시호가 울릉도 특산식물로 어떻게 진화했는지? 어떤 조상종으로부터 분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한반도 내륙에 자라는 등대시호나 개시호와 형태적으로 비슷한 특징들을 가졌지만 이들로부터 기원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
섬시호는 두해살이풀이기 때문에 대를 이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씨에서 발아하는 개체들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자생지에서 관찰한 바로는 싹을 틔우는 개체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흙이 많지 않은 바위지대라는 자생지 특성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씨를 받아서 흙이 많은 환경에 뿌리면 90% 이상 발아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처럼 자생지 밖에서는 증식이 잘 되기 때문에 몇몇 식물원에서는 많은 개체를 확보하고 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종들을 증식, 보전하기 위해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한 이들 식물원들에서 섬시호의 자생지외 보전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울릉도 특산종 섬시호는 자생지에서는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겨우겨우 대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식물이다. 흙이 거의 없는 바위지대에 자리 잡은 자생지를 조금만 파괴하거나 변형하면, 이 식물은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운명이다. 그런 자생지조차 단 세 곳뿐이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4.08.0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