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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교란 좋아하는 닻꽃

대한인 2015. 12. 24. 07:09

‘적당한’ 교란 좋아하는 닻꽃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36

 
남한에서 매우 드물게 자라는 닻꽃은 북쪽에 고향을 둔 북방계 식물이다. 여름철 햇볕이 잘 드는 높은 산 풀밭에서 닻 모양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낸다. 하지만, 씨를 맺고 나면 뿌리까지 고사하는 한해살이풀이기 때문에 이듬해 씨에서 싹을 틔우지 못하면 멸종될 가능성이 높다. 예전에 생육하던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서는 이미 발견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
대암산 자생지의 닻꽃 군락. 북방계 고산식물로서 남한에서는 화악산, 대암산 등 중부지방 고산에 자라고 있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서도 기록된 적이 있지만 현재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 현진오

대암산 자생지의 닻꽃 군락. 북방계 고산식물로서 남한에서는 화악산, 대암산 등 중부지방 고산에 자라고 있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서도 기록된 적이 있지만 현재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 현진오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은 씨를 많이 만들고, 만들어진 씨는 발아가 잘되는 특성을 가진 게 대부분이다. 이런 특성은 논과 밭에 나는 일년생 잡초들의 성질이기도 한데, 환경에 잘 적응하고 번식력이 강한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생명력을 가졌다고 하는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 가운데도 멸종위기를 맞고 있는 것들이 있다.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된 것으로 단양쑥부쟁이, 매화마름, 물고사리, 대성쓴풀, 한라송이풀, 닻꽃 등이 있고,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되지 않은 멸종위기종 중에 한라산의 깔끔좁쌀풀, 중부지방의 가는잎향유와 정선황기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해 또는 두해밖에 살지 못하는 이들 멸종위기종들은 가을이나 봄에 씨에서 싹을 틔워서 종족을 보전해야 하는데, 만약 한 해라도 싹틔우기에 실패하면 몇 해 안에 멸종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이들은 논밭 잡초들처럼 생육지가 어느 정도 교란을 받아야 싹을 틔우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깊은 산 속이나 국립공원처럼 보호 받는 지역에서는 생육지 교란이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싹틔우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꽃은 8-9월에 피는데, 배에서 쓰는 닻을 닮았다. 우리말 이름뿐만 아니라 학명의 종소명 ‘코르니쿨라타(corniculata)’도 닻을 닮은 꽃 모양에서 유래했다. ⓒ 현진오

꽃은 8-9월에 피는데, 배에서 쓰는 닻을 닮았다. 우리말 이름뿐만 아니라 학명의 종소명 ‘코르니쿨라타(corniculata)’도 닻을 닮은 꽃 모양에서 유래했다. ⓒ 현진오

 

 

한라산과 지리산에서는 이미 멸종된 듯

한라산 아고산대 초원에 살던 닻꽃은 이곳에 소와 말의 방목이 금지된 이후에 멸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와 말이 풀을 뜯어먹고 땅이 패여 흙이 드러나는 등 간섭과 교란이 있었을 때는 씨가 매년 싹을 틔울 수 있었지만, 방목 금지로 초원에 풀이 가득 들어찬 이후에는 싹 틔울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절멸해버린 한라산 닻꽃의 예는 한해 또는 두해살이 멸종위기종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멸종위기종들은 생육지를 고스란히 보전한다고 해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원도 금대봉에 사는 대성쓴풀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등산로 옆이나 무덤가에 자라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사람에 의한 간섭을 받기 때문에 해를 거듭하며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 사람 출입을 일절 금지시킨다면 오래 가지 않아 절멸될 가능성이 높다.

닻꽃(Halenia corniculata (L.) Cornaz, 용담과)은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로 숲 가장자리나 햇볕이 잘 드는 풀밭에 자란다. 줄기는 높이 10-80cm이며 가지가 갈라지기도 한다. 전체에 털이 없고 능선이 4개 있다. 잎은 마주나며 길이 2-6cm이다. 꽃은 연한 황록색이며, 북부지방에서 6월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남한에서는 8월 중순부터 9월 초순까지 핀다. 화관은 4갈래로 갈라지며, 갈래 아래쪽에 길이 5-7mm의 뿔이 돋아 있는데, 이 모습이 배에서 쓰는 닻 모양을 닮아서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 열매는 익으면 저절로 벌어지는 삭과인데, 작은 씨가 많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북부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남한에는 과거에 기록되었던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고, 현재 경기도 화악산과 강원도 대암산에서만 발견된다. 세계적으로는 러시아, 몽골,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분류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린네가 1753년 쓴풀속에 속하는 종(Swertia corniculata L.)으로 처음 발표한 이래, 1897년에는 스위스 식물학자 코르나즈(Cornaz, C. A. E.)에 의해 닻꽃속에 속하는 식물로 다시 기록되었으며, 현재는 이 학명을 사용한다. 닻꽃속(Halenia)은 1796년 독일 식물학자 보르카우젠(Borkhausen, M. B.)이 린네의 제자인 할레니우스(Halenius, J.)를 기려서 만든 속이다. 닻꽃 학명의 종소명 ‘코르니쿨라타(corniculata)’는 ‘작은 뿔 모양의’라는 뜻으로 닻꽃의 꽃 모양에서 유래하였다.

 

 

닻꽃의 어린 개체.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로 씨가 여문 후에는 뿌리까지 고사하기 때문에 이듬해 싹틔우기에 실패하면 멸종될 가능성이 높다. ⓒ 현진오

닻꽃의 어린 개체.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로 씨가 여문 후에는 뿌리까지 고사하기 때문에 이듬해 싹틔우기에 실패하면 멸종될 가능성이 높다. ⓒ 현진오

 

적당하게 간섭해야 잘 사는 멸종위기종

멸종위기식물 보전과 관련하여 학계와 정부는 멸종위기종의 분포현황을 파악하고 개체수 증가나 감소를 모니터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시급히 보호가 필요한 자생지는 보호시설을 하는 등의 조치도 취하고 있다. 일부 자생지에서는 큰 나무를 제거하는 등의 생육환경 조절을 통한 생육지 관리도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나 동물에 의해 생육지에서 일어나는 적당한 간섭과 교란이 오히려 종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특별한 멸종위기종들에 대한 관심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한해 또는 두해살이 멸종위기 풀들의 발아에 도움이 되는 간섭과 교란을 가능케 하는 ‘적당한 관리’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변 모래톱에 사는 단양쑥부쟁이, 논바닥에 사는 매화마름과 물고사리, 부스러지는 화산흙에 사는 한라송이풀, 높은 산의 임도 가에 사는 닻꽃. 인위적 또는 자연적으로 지속적인 교란이 일어나는 이들의 자생지를 현재처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더도 덜도 아닌 현재만큼만 교란이 일어나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4.09.16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