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채취로 위기에 놓인 가시오갈피나무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37
약효가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채취해 멸종위기에 놓인 식물들이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생물 중에는 백부자, 산작약, 삼백초, 세뿔투구꽃, 연잎꿩의다리 등이 대표적인 약용식물이다. 가시오갈피나무 역시 그런 식물 가운데 하나인데, 북방계여서 애초부터 자생지가 드문 이 식물은 관절염, 신경통, 강정 등에 좋다는 이유로 무차별 채취되어 멸종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온난화에도 약한 북방계 식물이므로 더욱 큰 멸종위험에 직면해 있다.
나무는 풀에 비해 멸종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낮다. 특히 큰키나무는 현재 살아 있는 개체들만 하더라도 오랜 동안 생존할 수 있으므로 어지간해서는 멸종에 이르지 않는 게 보통이다. 떨기나무, 여러해살이풀, 한해살이풀 순으로 멸종위기에 놓일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나무든 풀이든 원래부터 개체수가 적은 것은 멸종 위험이 더 높고, 개체수를 감소시키는 요인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멸종되기 쉽다.
개체수를 감소시켜 멸종위기식물이 되게 하는 요인으로는 불법 채취, 기후 변화, 생육환경 변화, 홍수나 산불 같은 자연재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불법 채취는 개체수를 감소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데, 꽃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채취되기도 하지만 몸에 좋다는 입소문 때문에 채취되어 멸종위기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불법 채취로 멸종위기에 직면한 약용식물
현재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법정보호식물 중에서도 소위 약용식물에 해당하는 백부자, 산작약, 삼백초, 세뿔투구꽃, 연잎꿩의다리 등이 불법 채취에 의해 멸종위기를 맞게 된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들은 약재 또는 건강식품으로 채취되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과거 설악산에서 채취되어 강정제로 팔렸던 연잎꿩의다리는 현재 설악산의 험준한 바위능선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시오갈피나무도 불법 채취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식물인데, 위의 식물들과는 달리 풀이 아니라 나무여서 멸종될 가능성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북방계 식물로서 애초부터 남한에 자라는 숫자가 많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오랜 세월 불법 채취되어 절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앞으로 온난화가 진행되면 더욱 살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북방계 식물의 하나이므로 이 식물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자생지에서 무차별 채취되었는데, 꽃을 피울 정도로 성숙한 나무들은 모두 베어져서 현재는 자생지에서 꽃을 피우는 개체를 찾아보기 아주 어려울 정도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나무가 어느 정도 크게 자라면 베어내고 또 기다렸다가 베어내고 하는 식의 채취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생지에서 뿌리째 뽑아 가기도 하는데, 강원도 깊은 산골에 가면 이렇게 뽑혀와 마당에 심겨진 가시오갈피나무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수요가 많아져서 중국산을 들여다 재배한 것이 시장에 나와 있지만, 아직도 자연산(産)을 선호하는 추세여서 채취 압력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가시오갈피나무(Eleutherococcus senticosus (Rupr. & Maxim.) Maxim., 두릅나무과)는 높이 1-7m로 자라는 떨기나무이다. 어린 가지에 바늘 모양의 가시가 빽빽하게 나는데 긴 것은 1cm에 이르고, 이것에 찔리면 쓰라림이 오래 간다. 잎은 작은 잎 5장으로 된 겹잎이 줄기에 어긋나게 달린다. 어린잎과 줄기를 나물로 먹기도 한다. 꽃은 6-7월에 새로 난 가지 끝에서 우산모양꽃차례를 이루어 핀다. 꽃잎은 5장, 수술 5개이다. 열매는 둥글고, 8-10월에 검게 익으며, 지름 6-8mm이다.
남한에서는 지리산, 주왕산을 남쪽 경계로 하여 소백산을 거쳐 강원도 여러 산에 드물게 자라고 있다. 최근까지 주왕산이 분포의 최남단으로 여겨져 오다 2010년 지리산에서도 분포가 재확인되었다. 지리산에서는 1927년 일본인 학자가 보고한 이후 확인되지 않다가 90여 년 만에 120여 개체가 재발견된 것이었다. 북방계열이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고지대의 풍혈지 또는 계곡 주변의 전석지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다.
동북아시아에만 생육하는 ‘시베리안 진생’
세계적으로 볼 때도 동북아시아에만 한정적으로 자라는 희귀식물이다. 중국의 지린, 허베이, 산시, 내몽골, 헤이룽장, 랴오닝, 러시아의 아무르, 연해주, 사할린, 일본의 홋카이도에 분포하고 있다. 백두산이나 연해주 지역에는 매우 흔하게 자라고 있는데 오갈피나무보다 더욱 흔하다.
동북아시아 특산의 이 식물이 학계에 알려진 것은 러시아 식물학자인 막시모비치(J. C. Maximowicz)가 1855년 아무르강 유역에서 이 식물의 표본을 수집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식물표본관에 가지고 가면서이다. 이듬해 막시모비치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식물원장이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교수인 루프레히트(F. J. Ruprecht)와 함께 이 표본을 근거로 가시오갈피를 신종을 발표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러시아 극동지방의 식물을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신종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막시모비치는 현장에서 많은 표본을 수집한 채집가로도 유명하며, 그의 표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식물표본관에 보관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가시오갈피나무를 자오가(刺五加)라 하여 약재로 사용한다. 인삼보다 더 좋은 약용식물로 알려져 있는데, 뿌리와 껍질을 삶아서 우려낸 물을 협심증, 관절염, 강정제, 신경통, 신경쇠약에 의한 두통, 골다공증, 불면증, 식욕부진, 당뇨 등에 사용한다. 이런 뛰어난 약효는 영어이름인 ‘시베리아 인삼(Siberian ginseng)’에도 담겨 있다.
가시오갈피나무는 세계가 인정한 약용식물로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귀중한 생물자원이다. 하지만, 분포의 남방한계선에 해당하는 우리나라에는 원래부터 자생지가 많지 않았던 북방계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는 이들을 과도하게 채취해 이용함으로써 멸종위기에 놓이게 했다. ‘자연산(産)’을 선호하는 마음을 버려야 가시오갈피나무 같은 멸종위기식물들을 구할 수 있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4.09.3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