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복원된 ‘전주물꼬리풀’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38
전주물꼬리풀은 1912년 전주의 한 습지에서 처음 채집되었으나 습지들이 급속도로 파괴되는 와중에 사라지고 말았다. 전주 일대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절멸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1980년 중반 제주도에서 극적으로 재발견되었다. 2013년 5월 100년 만에, 제주도 유래의 증식 개체들이 전주 지역에 복원되었다.
어떤 식물이 처음으로 발견되어 채집된 지역은 분류학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처음 발견된 식물이 신종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준표본 채집지로서 중요한 것인데, 변산바람꽃이 처음 발견된 변산반도나 한라송이풀이 처음 발견된 한라산이 이런 곳에 해당한다. 두 식물 모두 우리말이름에 채집지 이름이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명에도 변산, 한라산이 각각 들어 있다.
신종이 아니더라도, 외국에만 산다고 알려졌던 식물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장소라면 의미가 크다. 소위 한국 미기록 식물이 처음 발견된 장소가 되는 것인데, 전주물꼬리풀이 처음 발견된 전주가 이 경우이다. 일본에만 분포하는 식물로 알려져 오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주에서 발견되었고, 이 덕분에 우리말이름에 ‘전주’가 붙게 되었다. 전주물꼬리풀은 전주라는 지명이 붙은 몇 안 되는 식물 가운데 하나다. 전주가 붙은 식물이름은 전주물꼬리풀 외에 전주산초, 전주마름 등이 있는데, 전주산초는 민산초나무가 바른 우리말이름이지만 잘 쓰이지 않고 있다.
전주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채집된 이후 절멸
전주물꼬리풀(Dysophylla yatabeana Makino, 꿀풀과)은 1912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주에서 발견되었다.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인 모리 다메조(Tamezo Mori, 森爲三, 1884-1962)가 이 식물을 발견해 표본을 채집하였는데, 정확히 전주 어느 곳인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주물꼬리풀을 기록한 모리는 ‘조선식물명휘’를 발간한 것을 비롯하여 어류, 곤충, 포유류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연구 결과를 남긴 박물학자였다.
전주물꼬리풀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기 전에 일본에서 먼저 발견되어 1898년 일본의 저명한 식물분류학자 마키노 도미타로(Tomitaro Makino, 牧野富太郎, 1862-1957)에 의해 신종으로 발표된 바 있다. 그가 발표한 학명인 ‘디소필라 야타베아나’가 현재 사용되기도 하지만, 다른 속으로 옮겨서 포고스테몬 야타베아누스(Pogostemon yatabeanus (Makino) Press)로 보는 최신 견해도 있다.
전주물꼬리풀이라는 우리말이름은 1969년 고 이창복교수에 의해 붙여졌다. 이 전에도 이 식물에 대한 우리말이름으로 꼬리풀(1949년), 물꼬리풀(1974년) 등이 사용되었지만, 이들 이름은 다른 자생식물의 우리말이름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전주에서 처음 채집된 이후 전주물꼬리풀은 전주는 물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전주 일대는 도시화 바람을 타고 습지들이 대부분 훼손되어 전주물꼬리풀이 생육할 수 있는 장소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식물은 우리나라에서 절멸한 것으로 여겨지다 1980년대 중반 제주도 동부지역에서 가까스로 다시 발견되었다.
환경부는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기 시작했고, 2013년에는 인공 증식된 3000 포기를 전주시에 기증하여 전주시내 오송제에 복원하였다. 전주에서 처음 발견된 후 100여 년 만에 다시 전주에 터를 잡은 셈이다. 복원한 전주물꼬리풀은 지난해부터 일부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고, 올해는 더욱 많은 개체가 꽃을 피워 장관을 연출하였다. 필자도 지난 8월 하순에 이곳을 방문해 생육 상태를 관찰하였는데, 식재한 개체들이 완전히 정착하여 땅속줄기에서 새로운 줄기들이 많이 돋아나 있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분포, 일본에서도 멸종위기
전주물꼬리풀은 햇볕이 잘 드는 습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땅속줄기가 벋으면서 줄기나 땅 위로 나와 곧추선다. 줄기는 높이 40~60cm, 가지가 거의 갈라지지 않는다. 잎은 3-4장이 돌려나며, 길이 3-5cm, 너비 5~7mm로 좁은 피침형이고,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얕은 톱니가 있다. 꽃은 8월 하순부터 피기 시작해 10월까지 볼 수 있으며, 이삭꽃차례에 빽빽하게 달리고, 연보라색이다. 꽃차례는 길이 3~7cm, 너비 1.5cm이다. 꽃받침은 5갈래로 갈라지고 포와 더불어 부드러운 털이 있다. 화관은 4갈래로 갈라진다. 수술은 4개 중 2개가 길며 수술대에 퍼진 긴 털이 있다.
세계적으로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한다. 일본에는 혼슈, 시코쿠, 큐슈에서 발견되는데 멸종위기종의 한 범주인 취약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남부의 안후이성(安徽省), 구이저우성(貴州省), 후난성(湖南省), 저장성(浙江省) 등지의 논이나 습지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물꼬리풀과 비슷한 식물로 물꼬리풀(Dysophylla stellate (Lour.) Benth.)이 있는데, 두 종은 같은 물꼬리풀속(屬)에 속하지만 물꼬리풀은 한해살이풀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물꼬리풀은 땅속줄기가 없고, 잎은 더 가늘고 뒷면이 회색이며, 꽃은 흰빛을 많이 띤다. 이삭꽃차례가 가늘고, 수술대에 잔털만 있고 긴 털이 없는 것도 물꼬리풀의 특징이다. 물꼬리풀은 전주물꼬리풀에 비해서 세계 분포역이 조금 더 넓은데 우리나라, 일본, 중국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비교적 널리 분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지방에도 분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주도에 드물게 발견된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4.10.1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