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재배·판매 막아야 할 ‘지네발난’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40
환경부가 야생생물보호법에 의해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생물 246종은 포획, 채취는 물론이고 허가 없이 사육, 재배, 판매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들 중에는 77종의 멸종위기식물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을 재배, 판매하려면 허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하면 불법적으로 이들 보호종을 키우는 것을 자랑하는 글들을 금방 찾을 수 있고, 불법 판매하는 사이트도 여러 곳이다. 멸종위기생물 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법 재배와 거래를 일삼는 이들도 문제지만 불법 행위를 수수방관하는 당국은 직무유기라밖에 할 수 없다.
식물은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멸종위기에 놓이게 된다. 식물이 생육하고 있는 자생지 자체가 파괴되어 사라지기도 하고, 외래종 침입, 오염, 기후변화에 의해 멸종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어떤 식물들은 과도한 채취 때문에 멸종위기를 맞기도 하는데, 희귀성과 아름다운 꽃 때문에 사람들 관심의 대상이 되는 난초들이 이 부류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 생육하는 100여 종의 난초 대부분은 멸종위기에 놓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히 지네발난 같은 착생난초들은 희귀하고 꽃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돌이나 나무에 붙어사는 특이한 생태적 습성 때문에 불법 채취와 재배, 판매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지네발란 판매’라 치고 검색하면, 이런 불법 재배와 판매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나무나 돌에 부착시킨 상품이 10만원에서 30만원에 거래되고 있으며, 200만원을 호가하는 상품도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금자란, 나도풍란, 비자란, 석곡, 지네발난, 차걸이난, 풍란, 탐라란, 콩짜개난, 혹난초 등 10종의 착생난초 모두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데, 혹난초를 제외한 9종은 모두 환경부가 지정한 법정보호종들이다. 혹난초도 법정보호종으로 당장 지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에 놓여 있다.
인터넷 통한 불법판매 기승, 불법재배도 많아
지네발난(Pelatantheria scolopendrifolia (Makino) Averyanov, 난초과)은 남부지방의 건조하고 양지바른 바위에 붙어 자라는 상록성 여러해살이 난초이다. 줄기는 바위에 기면서 자라는데 줄기 마디에서 뿌리와 잎이 나온다. 꽃은 6-7월에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 피며, 연한 홍색이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바위에 붙어 자라며, 매우 드물게 나무에 붙어 자라기도 한다. 나무줄기 겉에 붙어 자라는 것은 진도와 제주도에서 보고된 바 있는데, 제주도 삼방굴사 앞의 늙은 곰솔에 붙어 자라던 개체들은 2013년 곰솔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음으로써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모습이 지네와 비슷한 데서 지네발난이라는 우리말 이름이 붙었다. 보통 ‘지네발란’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지네발난’이 맞춤법에 맞는 말이다. 학명의 종소명(種小名, species epithet) ‘스코로펜드리폴리우스(scolopendrifolius)’는 지네(scolopendra)와 잎(folios)의 합성어로서 ‘지네를 닮은 잎’이라는 뜻이다.
지네발난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만 자라는 희귀한 식물이다. 중국에서는 안휘성, 복건성 서부, 강소성, 산동성, 사천성 북동부, 절강성 동부 등지에 분포하고, 일본에는 혼슈 간토지방의 서부, 시코쿠, 큐슈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전라남도 해안에 생육하는데, 최근에 나주가 최북단 자생지로 알려졌다.
독특한 특징으로 여러 학명 사용되는 지네발난
지네발난은 1891년 일본의 식물학자 마키노(T. Makino, 牧野富太郞, 1862-1957)가 일본에서 채집된 표본을 근거로 하여 Sarcanthus scolopendrifolius Makino로 처음 발표하였다. 이 학명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부 쓰이고 있고, Sarcanthus속을 Acampe속의 분류학적 이명으로 처리하는 견해를 따라 1972년 신조합명으로 제시된 Cleisostoma scolopendrifolium (Makino) Garay라는 학명도 일부 쓰이고 있다. 마키노가 신종 발표 때에 사용하였던 Sarcanthus속은 영국 식물학자 린들리(J. Lindley, 1799-1865)가 1824년에 발표하였지만, 이후 린들리는 1853년에 Acampe속을 다시 만들었다. 현재는 Sarcanthus속을 분류학적 이명으로 처리하여 인정하지 않는 추세인데, 이 속으로 발표되었던 일부 종들은 Acampe속에 소속시키며, 대부분의 종들은 Cleisostoma속에 소속시킨다. 하지만 1988년의 최신 견해는 지네발난은 이들 두 속보다는 영국 식물학자 리들리(H. N. Ridley, 1855-1956)가 1896년에 설정한 Pelatantheria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 속은 Acampe속과 Cleisostoma속에 비해서 꽃차례가 1cm 이하로서 짧고,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 피거나 총상꽃차례에 2~7개가 달려 그 수가 적으며, 수술과 암술이 합쳐진 꽃술대(column)에 2개의 부속체가 있어서 구분된다. 이 속은 우리나라,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등지에 걸쳐 분포하며, 8~9개의 종으로 이루어진다. Cleisostoma속이나 Acampe속의 난초들은 꽃차례가 크게 발달하여 지네발난을 포함하는 Pelatantheria속 식물들과는 외형적으로 차이가 많다. 결론적으로, 지네발난을 포함하여 조금 특별한 특징을 가진 10종을 따로 구분하는 견해를 따르면 Pelatantheria scolopendrifolia (Makino) Averyanov라는 학명을 쓰는 것이고, 이들을 포함하여 90여 종의 난초들을 하나의 속으로 크게 보는 견해를 따른다면 Cleisostoma scolopendrifolium (Makino) Garay라는 학명을 쓰면 된다. 물론, 분류학적으로 이명 처리된 Sarcanthus속을 고집하여 Sarcanthus scolopendrifolius Makino를 쓸 수도 있지만, 합리적이지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다.
지네발난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사는 10종의 착생난초들은 모두 풍전등화 같은 운명이다. 2012년 환경부가 새로 고시한 멸종위기야생생물 목록에 혹난초를 제외한 이들 착생난초 모두가 포함된 것만 보더라도, 이들이 자생지에서 얼마나 큰 멸종 압력에 놓여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착생난초들은 불법적인 재배와 판매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어, 근절 대책이 시급하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4.11.1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