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과 산청서만 자라는 ‘나도승마’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46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30여 만 종의 식물들 중에는 서로 비슷한 종이 없어서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하나의 과(科)나 속(屬)에 한두 종만이 속한다면 그 종은 이 세상 어디에도 비슷한 식물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식물들은 대개 특정한 지역, 좁은 장소에서만 사는데, 세계에 단 두 종밖에 없는 나도승마속은 일본과 우리나라 각각 한 종씩만이 분포한다. 우리나라 특산인 나도승마는 광양과 산청에만 자라는 멸종위기 식물이다.
작은 풀꽃들은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작은 만큼 잎이나 꽃도 대부분은 올망졸망 작다. 이에 비해 키가 크게 자라는 대형 풀꽃들은 꽃이나 잎이 시원스럽게 생겼다. 우리나라 육상식물 가운데 가장 큰 잎을 가진 개병풍은 잎이 지름 1m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고, 꽃차례의 크기도 대형이다. 잘 자라면 키가 1m에 이르는 나도승마도 단풍잎을 닮은 큰 잎을 가진 게 특징이다. 키가 클 뿐만 아니라 잎도 크고 독특한 이 식물을 자생지에서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사는 곳이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도승마(Kirengeshoma koreana Nakai, 수국과)는 전라남도 광양 백운산과 경상남도 산청 웅석봉 골짜기에 매우 드물게 자라는 한국특산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첫 발견 장소인 백운산에만 자라는 것으로 여겨져 오다 최근 지리산 줄기인 웅석봉에서도 발견되었다.
이 식물의 특징을 살펴보면, 줄기는 곧추서며 6각형이고 높이 60-100cm다. 줄기 위쪽으로 갈수록 털이 많다. 잎은 마주나며,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지고, 타원형 또는 원형으로 길이와 너비가 각각 7-15cm,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위로 갈수록 짧아지는데 아래쪽 것은 길이 13-15cm이다. 꽃은 7-8월에 줄기 끝 총상꽃차례에 1-5개씩 달리며, 노란색이다. 꽃받침은 종 모양, 끝이 5갈래로 갈라진다. 꽃잎은 5장, 길이 2-4cm이다. 수술은 15개, 암술대는 3-4개이다. 열매는 삭과이며 둥글고 지름 1cm쯤이다.
1930년대에 광양 백운산에서 처음 발견
백운산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백운승마라고도 한다. 나도승마라는 우리말이름은 전라도에 나는 승마라는 뜻에서 온 것이라는 견해와 승마와 유사하다는 뜻으로 접두사 ‘나도’ 가 붙었다는 설이 있다. 제주도와 거제도에 자라는 왜승마나 일본과 중국에 자라는 개승마와 잎 모양이 조금 비슷한 게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들 왜승마나 개승마는 미나리아재비과 승마속에 속하는 식물로서 나도승마와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나도승마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30년대 초반이다. 첫 발견은 1933년으로 동경제국대학 농학부 조교 이노쿠마(T. Inokuma)가 광양 백운산에서 발견하여 일본에 나는 것과 같은 키렌게쇼마 팔마타(Kirengeshoma palmata Yatabe)로 보고하였다. 이 보고를 접한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T. Nakai, 中井猛之進, 1882-1952)는 일본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간파하고 같은 장소에서 1934년 8월 21일에 이 식물을 다시 채집하였다. 이때 나카이가 직접 채집하지 않고 당시 조선총독부 산림국에 근무하던 정태현박사(1883-1971) 채집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나카이는 이듬해인 1935년 이 표본을 근거로 일본 것과는 다른 한국특산의 신종 나도승마로 학계에 발표하였다. 이때 나카이가 사용한 기준표본은 도쿄대학교 식물표본관에 보관되어 있다.
나카이가 당시에 나도승마가 일본의 유사종과 다른 것으로 제시한 특징은 4각형이 아니라 6각형인 줄기, 자주색 또는 자줏빛이 도는 줄기가 아니라 녹색인 줄기, 2-3배 많은 털, 연한 색 꽃, 적은 수의 꽃, 신장된 암술대 등이다. 근래에 두 종을 같이 재배하여, 나도승마는 일본 종에 비해 조금 더 크게 자라고, 겨울을 잘 견디며, 꽃이 밑으로 덜 처지고 1주일쯤 먼저 개화하는 특성을 보인다는 것도 밝혀졌다.
광양과 산청에만 자라는 멸종위기 특산식물
나도승마와 비슷한 식물은 세계적으로 일본에만 한 종이 있다. 나도승마속에 속하는 식물은 일본과 우리나라에 각각 한 종씩만 사는 것인데, 둘 다 세계적인 희귀식물로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도승마를 1993년 환경처 특정야생식물(한국특산종), 1998년 환경부 보호야생식물로 지정하였고, 2005년부터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유럽의 많은 식물원에 한국산 나도승마가 식재되어 있고, 미국에서는 포기당 12달러 정도에 판매까지 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식재된 개체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희귀하다. 자생지에 1000 개체 이하만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마을 가까운 자생지들이 훼손되어 해마다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국가관리 법정보호식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생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데, 특히 현재 확인되고 있는 광양 백운산과 산청 자생지는 국립공원 등 다른 법률에 의해 식물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보호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02.03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