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맥만 유지하는 화석식물 ‘솔잎난’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47
난초가 아니라 양치식물이면서 난초라는 이름이 붙은 솔잎난은 데본기와 실루리아기에 번성했던 원시 양치식물이다. 열대와 아열대에서는 흔하게 자라는 상록성 식물이지만 분포의 북방한계선에 해당하는 한반도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몇몇 곳에서만 아주 드물게 자란다. 개체군 수가 원래부터 적을 뿐만 아니라 몇몇 개체군은 심각한 위협 상태에 놓여 있어 1989년부터 환경부가 법정보호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솔잎난은 난초가 아니다.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생기지 않는 하등한 식물, 양치식물이다. 난초가 아닌 데도 불구하고 이름에는 난초를 뜻하는 한자말 ‘난(蘭)’이 붙어 있다. ‘솔잎’이라는 우리말과 한자말 ‘난’이 붙어 이루어졌으니, 우리말 표기는 솔잎란이 아니라 솔잎난이 맞다. 하지만 많은 도감들에서 솔잎란이라고 잘못 쓰고 있다.
우리말이름 솔잎난은 한자이름 송엽란(松葉蘭)에서 온 것이며, 이 송엽란은 중국이름 ‘송예란(松叶兰)’에서 온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에서는 송예란보다 ‘송예주에(松叶蕨, 솔잎을 닮은 고사리라는 뜻임)’를 정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족을 붙이지면, 국립국어원의《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한자말 난(蘭)을 표기하는 규칙(난이 다른 말의 뒤에 붙을 경우 앞 말이 한자어일 때는 란, 우리말일 때는 난으로 표기함)을 무시하고 송엽란이 아니라 ‘송엽난’을 표준말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국립국어원은 누리집의 답변을 통해 식물전문가가 감수한 용어라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으나, 과명(科名)의 사이시옷 쓰기를 고유명사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생물학자들의 주장을 줄곧 무시해 온 것이 국립국어원의 그간 태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남해안이 분포의 북방한계선인 아열대성 양치식물
솔잎난(Psilotum nudum (L.) P. Beauv.; 솔잎난과)은 열매 및 아열대성 상록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키가 10-30cm로 작게 자라지만 열대에서는 80cm까지 자라기도 한다. 줄기는 연한 녹색으로 밑에서부터 계속해서 Y자 형태로 갈라지며, 전체가 빗자루 모양이다. 줄기에는 작은 돌기 같은 잎이 어긋나게 붙어 있다. 지름 2mm쯤의 둥근 포자낭이 잎겨드랑이에 달리는데 3칸으로 되어 있다. 포자낭은 처음에는 녹색이지만 익으면 노란색이 되며, 3갈래로 갈라져서 많은 포자가 방출된다.
솔잎난속(屬)에는 솔잎난을 포함해 2종만이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데, 데본기와 실루리아기에는 매우 왕성하게 자라던 식물무리이다. 이 속의 식물들은 이처럼 오랜 기간 지구에서 생존한 셈인데, 원시적인 관속식물로서 화석식물의 일종이다. 두 종 가운데 한 종인 솔잎난은 북반구와 남반구의 열대와 아열대에 널리 분포하며, 북반구에서는 일본과 우리나라까지 북쪽으로 분포 영역을 확장해서 자란다. 다른 한 종(P. complanatum Sw.)은 말레이반도, 호주 남부, 피지제도, 멕시코, 남미 등지에 분포하는데 최근에 중국 남부에서도 발견되었다.
솔잎난은 열대지역에서는 나무에 붙어서 사는 착생식물이지만, 우리나라 같은 온대지역에서는 바위틈에 자라는 게 보통이다. 열대와 난대에서는 온실 잡초로 자랄 정도로 매우 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수직 절벽의 틈에서 자라고 있는데, 유일하게 서귀포시의 한 개체군만이 나무에 착생하고 있으며, 강정마을의 강정천에는 하천 바닥의 바위틈에도 자라고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남해안은 솔잎난 분포의 북방한계선에 해당하는데 천지연, 천제연, 돈네코계곡, 무수천, 삼방산, 강정천 등 제주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자생 사실이 알려져 왔고, 최근에는 전라남도 해안과 산지에서도 발견되었다. 근래에 발견된 제주시 김녕 개체군은 바닷가에서 자라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았지만, 발견된 지 몇 년 만에 불법 채취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하천에 수평으로 놓인 바위틈에서 생육하는 강정천 개체군도 수직 절벽의 다른 자생지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독특한 개체군인데, 해마다 세력이 약해지고 있다. 전라남도에서 최근 발견되어, 그동안 제주도를 분포의 북방 한계선으로 생각해 오던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개체군도 애초부터 개체수가 그리 풍부하지 않은 데다가 방문객도 많아져서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989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
솔잎난은 개체군 수가 적고 불법 채취에 의해 멸종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야생생물보호법에 의해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환경부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멸종위기종을 지정해 보호하기 시작한 1989년에 특정야생식물로 지정된 이래 지금까지 계속 법정보호종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솔잎난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큰 위협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방증한다.
최근 들어 솔잎난은 나무나 바위에 착생하는 관엽식물로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모래에 부식토와 물이끼를 섞어 물이 잘 빠지게 만든 화분에도 심어기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여러 원예품종이 개발되어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항균 물질을 추출할 수 있는 자원식물로도 평가되는데,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전통적으로 벌레 물렸을 때, 두드러기, 열병, 폐렴 등에 약재로 이용해 왔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02.1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