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과 함께 사라지는 수생식물, 순채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58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순채는 전국에 흔하게 자라던 수생식물이다.
예부터 우무 질에 둘러싸인 채 돋아나는 어린잎을 이용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고, 약재로도 이용했다. 하지만 순채가 자라던 연못이 이런저런 이유로 개발되면서 자생지가 급속도로 줄어들어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현대에서도 여전히 식재료, 건강식품, 약용식물, 원예식물로서 인기가 높으므로 자생지 보전과 함께 인공증식된 개체들을 이용한 자원화도 필요하다.
곡식을 재배할 수 없고 집을 지을 수도 없는, 크고 작은 연못들이 근대화 물결을 타고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식수 공급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생활용수, 농업용수를 얻는 수원지로서 역할을 하던 마을 주변의 크고 작은 연못들을 전국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상수도가 보급되고 농사용 관개시설이 정비되면서 연못의 효용가치는 떨어지게 되었고, 이 ‘쓸모없는 땅’은 매립되어 다른 용도로 전용되기 일쑤였다. 연못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연못에 살던 많은 물풀들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연못에서 멸종되어 가는 물풀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순채(Brasenia schreberi J. F. Gmel., 어항마름과)를 꼽을 수 있다. 과거에는 수련과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항마름과로 구분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물 흐름이 없는 연못에서 자라는 물풀이다. 나물로 먹기 위해 재배하기도 했던 만큼 전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식물이지만 연못이 매립되면서 급격히 사라져 지금은 자생지가 몇 곳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개화 이틀 동안 하루는 암꽃, 하루는 수꽃
순채는 줄기가 물속에서 길게 자라 100cm에 이른다. 새싹은 물속에서 우무 질에 싸여서 나오는데, 어린잎을 데쳐서 나물로 먹는다. 다 자란 잎은 물 위에 뜨고, 타원형으로 길이 8-12cm, 너비 4-6cm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는 잎몸 아래쪽에 방패 모양으로 붙어 있고 길이가 다양하다.
꽃은 이르면 5월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6월 중하순이 절정기이며, 늦은 것은 7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잎겨드랑이에서 난 긴 꽃자루가 물 위로 올라와 그 끝에 짙은 보라색 꽃이 한 송이씩 핀다. 지름 2cm쯤이며, 꽃잎과 꽃받침잎이 각각 3장씩인데 서로 비슷하여 6장의 꽃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꽃받침잎은 꽃잎 바깥쪽에 붙으며, 길이가 꽃잎보다 조금 짧아 구분할 수 있다. 꽃 중앙에 있는 암술은 6-18개이고, 꽃잎과 암술 사이에는 수술이 붙는데 그 수가 많다.
꽃은 이틀 동안 피는데 오전에 꽃자루가 물 위로 올라와서 피고, 늦은 오후가 되면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음날 아침 다시 꽃자루가 올라온다. 첫날은 암꽃만 성숙한 상태이고, 다음날은 수꽃만 성숙한 상태로 피는데, 이는 자기꽃가루받이를 막기 위한 수단이다. 첫날보다 둘쨋날 꽃자루기 더욱 길게 올라오는 것도 독특한 생태인데, 바람에 의한 꽃가루받이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전국의 오래 된 연못에서 드물게 자란다. 예부터 나물로 먹었기 때문에 더러는 재배하기도 한듯한데, 재배하던 것이 야생상태로 퍼진 경우도 있다. 강원도 고성이나 충북 제천의 군락은 재배하던 것이 야생화 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몇몇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순채는 모두 오래 전에 도입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분포를 볼 때 우리나라에 자생적으로 분포할 가능성은 높다.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서는 작은 연못을 가득 메운 채 자라고 있는 모습을 드물게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동아시아를 비롯해서 인도, 호주, 서아프리카, 북미 등에 널리 분포한다.
재배 확대 전망 속에 제도정비 시급
순채라는 이름은 한자이름 순(蓴; 순채 순)에서 유래했는데, 나물로 먹기 때문에 ‘순나물’이라 불렀고 이를 다시 한자로 순채(蓴菜)라고 불렀다. 수채(水菜)나 결분초(缺盆草)라 하기도 했는데, 이런 한자이름들은 한약재 이름에서 온 것들로서 그만큼 한약재로 널리 이용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재도 건위, 이뇨, 지혈, 진통, 해독, 해열 등에 약재로 사용된다.
순나물이라 불렸던 만큼 예부터 나물로서 많이 이용되었는데, 어린순을 된장에 무쳐 먹기도 하고, 잎을 데쳐서 쌈을 싸 먹기도 했다. 이밖에도 국거리, 물김치, 죽, 민물매운탕, 차 등을 만들어 먹었다. 식재료로 많이 이용하였기 때문에 전통가옥의 연못에는 어김없이 순채를 재배하였고, 마을의 연못에도 순채를 심어 키웠다. 한때는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 등 일부 지역에서 대량으로 재배하기도 했다.
현재 시중에서는 일본산 순채가 수입되어 팔리고 있고, 중국산도 수입되고 있다. 일본산의 경우 1.5리터병에 물과 함께 담긴 어린잎을 1만원 정도에 팔고 있다. 국내에서 아직까지 대량 재배하는 곳은 없지만 소규모로 재배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고, 소비 증가와 함께 앞으로 재배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배가 확대될 경우, 자생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므로 자생지를 잘 구분하여 보전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가능하다면 재배하는 순채는 원산지가 확실한 것을 대상으로 하면 좋은데, 재배 자체가 일종의 자생지외 보전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산지가 다른 개체들을 함께 재배하지 않음으로써 유전자가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가이드라인을 포함하여,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식물들을 재배, 판매하는 것에 대한 제도를 정비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08.0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