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에 피신한 구름병아리난초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59
지리산 능선 산행 때에 바위 어우러진 초원에서 만나곤 했던 구름병아리난초를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능선의 작은 풀밭들이 숲으로 변해서 생육 환경이 달라진 까닭도 있지만 불법 채취와 인간 간섭이 심해진 것이 더 큰 이유다. 생육지를 가만히 두기만 하면, 씨에서 새싹이 돋아나서 많은 개체가 보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런 관리가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사람 접근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자생지 보호시설 설치가 이 법정 보호종 보전의 핵심방안이다.
세계적으로는 흔한 식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되어 가는 식물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식물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멸종되더라도 지구적인 관점에서는 멸종이 아니므로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될 것인가? 아니면 우리나라 생물다양성 감소로 이어지므로 적극적으로 보전해야 할 것인가?
남쪽에 고향을 둔 남방계 식물 중에서 우리나라가 분포의 북방 한계선에 해당하는 식물들, 그리고 북쪽에서 내려와 분포 남방 한계선에서 자라는 북방계 식물들이 이런 고민의 대상이다. 북방계 식물 중에는 갯봄맞이, 갯활량나물, 기생꽃, 날개하늘나리, 넓은잎제비꽃, 닻꽃, 분홍바늘꽃, 선제비꽃, 손바닥난초, 암매, 왕제비꽃, 장백제비꽃, 조름나물, 좀미역고사리 등이 이런 범주에 든다. 이들 대다수를 국가가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관리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우리 정부는 다른 나라에 흔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위협 받고 있는 식물이라면 이를 보전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빙하기 때에 남하했다가 높은 산에 피신해 살아가고 있는 구름병아리난초도 세계적으로는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호하지 않으면 멸종될 가능성이 높은 식물로서 환경부가 2012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널리 분포하는 소형 난초
구름병아리난초(Neottianthe cucullata (L.) Schltr., 난초과)는 산나사난초, 구름병아리란, 타래난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높은 산의 숲 바닥 또는 바위에 쌓인 흙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10-25cm이다. 땅 속에 둥근 덩이뿌리와 함께 육질의 수염뿌리가 있다. 꽃줄기는 가늘고 곧게 서고, 포잎이 3-5장 달린다. 잎은 2장이지만 3장인 경우도 가끔 있으며, 타원형 또는 피침형으로 길이 2-5cm, 너비 1-2cm이다. 꽃은 7-9월에 꽃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를 이루어 한쪽으로 치우쳐서 피며, 4-22개가 달린다. 분홍색이지만 드물게 흰색 꽃이 피기도 하며, 꽃받침과 곁꽃잎이 붙어서 너비 3-5mm의 덮개를 형성한다. 입술꽃잎은 크게 3갈래로 갈라지는데, 흰색 바탕에 분홍 반점이 있으며, 표면에 돌기가 있다. 꽃뿔은 앞쪽으로 굽으며, 길이 3-6mm로서 꽃받침이나 곁꽃잎보다 길다.
구름병아리난초는 1753년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C. Linnaeus, 1707-1778)가 난초속(Orchis)의 식물로 처음 발표했으며(Orchis cucullata L.), 1817년에는 독일 식물학자 라이헨바흐(H. G. L. Reichenbach, 1793-1879)가 손바닥난초속(Gymnadenia)으로 속을 옮겼다(Gymnadenia cucullata (L.) Rich.). 한편, 독일 난초학자 슐러히터(F. R. R. Schlechter, 1872-1925)는 1919년 현재 쓰이고 있는 학명인 Neottianthe cucullata (L.) Schltr.라는 신조합명을 제시했는데, Neottianthe속(구름병아리난초속)은 1828년 라이헨바흐가 도마뱀난초속(Himantoglossum)의 아속(亞屬)으로 제시했던 Neottianthe아속을 속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구름병아리난초의 분포를 보면, 세계적으로는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의 동유럽 지역부터 네팔, 부탄, 인도 북부, 중국을 거쳐 사할린 등 극동 러시아, 몽골, 일본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이처럼 널리 분포하다 보니 형태 변이가 많이 나타나서 그동안 여러 변종과 품종들이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종으로 발표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 대부분을 구름병아리난초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중국, 부탄, 인도, 네팔에 분포하는 칼시콜라(Neottianthe cucullata var. calcicola (W. W. Smith) Soó)만을 변종으로 인정하는 경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잎에 점무늬가 있는 점박이구름병아리난초가 변종으로 발표된 바 있지만 좋은 변종으로 인정하는 학자가 거의 없다.
자생지 출입을 막아야 보전 가능
북방계식물인 구름병아리난초는 한반도에서는 북부지방의 높은 산에 주로 분포하며, 남한에서는 석개재, 함백산 등 강원도의 몇몇 고산, 그리고 강원도이남에서는 가야산, 덕유산, 신불산, 지리산의 정상 근처에만 자라고 있다. 남부지방 지리산부터 강원도 함백산까지 비교적 넓은 지역에 분포하지만 자생지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이고, 개체수도 많지 않다. 이처럼 개체군 및 개체수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높은 관상 가치로 인한 불법채취 압력이 높고, 자생지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동호인들에 의한 훼손도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개체수가 나날이 감소하고 있다.
자생지에서 어린 개체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환경조건만 맞는다면 비교적 발아가 잘되는 난초로 여겨진다. 이러한 사실은 자생지가 몇 곳에 불과하더라도 이들 자생지를 잘 관리한다면 개체수 감소를 막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생육지 환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관리기법이 도입된 자생지가 한 곳도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08.18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