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돌밭 좋아하는 세뿔투구꽃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60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은 한반도 내에서 넓은 지역에 걸쳐 자라는 것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좁은 지역에만 자란다. 변산바람꽃이나 모데미풀은 제주도부터 중부지방까지 자라서 분포역이 비교적 넓은 특산종에 해당하며, 한라솜다리와 깔끔좁쌀풀은 한라산 백록담 일대, 섬노루귀와 섬시호는 울릉도에만 자라서 매우 좁은 지역에만 분포한다.
세뿔투구꽃은 경북, 경남, 전남에 걸쳐 비교적 널리 생육하는 특산식물이지만, 산지에 매우 드물게 자라고 채취 압력도 높기 때문에 환경부가 1993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식물은 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려 살 것 같지만, 어떤 식물들은 특별한 환경만을 선호한다. 염분이 있는 바닷가에서만 살 수 있는 염요구성 염생식물이나 석회암 바위틈에만 뿌리를 내리는 호석회식물들이 극단적인 예에 해당한다. 산지 숲 속에 사는 식물들 중에도 특별한 생육 환경에서만 자라는 것들이 있는데, 토심이 깊고 양분이 좋은 흙을 좋아하는 것, 척박한 토양에 사는 것, 작은 돌과 흙이 섞인 지역에만 사는 것 등이 있다.
돌과 흙이 섞인 전석지(轉石地)에 사는 식물 중에 변산바람꽃이라는 특산식물은 흙과 자갈이 적당히 섞여 있는 곳에서 살고, 세뿔투구꽃은 잔자갈보다는 조금 더 큰 돌들이 함께 있는 환경을 좋아한다.
지리산 대원사계곡에서 처음 발견된 특산식물
세뿔투구꽃은 특수한 생육 환경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분포하는 지역도 그리 넓지 않아서 만나기 어려운 식물이다. 세계적으로 한반도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이므로 세계적인 분포지역도 매우 좁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어디에 사는지에 대한 정보가 이 식물의 학명에 반영되어 있는데, 학명의 종소명 ‘austrokoreense’ 남쪽을 뜻하는 라틴어 ‘austro’와 우리나라를 뜻하는 ‘koreense’가 합성된 것으로 ‘한반도 남쪽의’ 또는 ‘한반도 남쪽에서 자라는’이라는 뜻이다. 학명의 뜻만 새겨보아도 한반도 남쪽에만 분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셈인데, 분포의 최남단은 경남 남해도이고 최북단이자 최동단은 경북 봉화 청량산이다.
북단과 남단 사이에 놓인 자생지로 경북 영양, 구미, 대구광역시, 경남 거창, 고성, 마산, 산청, 창녕, 하동, 함안, 함양, 합천, 전남 광양 등의 시군을 꼽을 수 있다. 합천 가야산과 거창 덕유산의 자생지는 최근에 발견되었다. 이들 자생지 중에서 대구와 봉화에 가장 많은 개체들이 자라고 있는데, 대구광역시에는 여러 곳에 산발적으로 무리지어 자라고 있으며, 봉화 청량산 일대에서도 큰 무리로 번성하고 있다.
세뿔투구꽃이 처음 발견된 곳은 경남 산청군 지리산 대원사 부근이다. 지리산 식물 조사에 참여했던 일본 큐수대학의 이소미네(T. Isomine, 五十嶺藤司)가 1933년 6월 19일 대원사 부근 해발 400m 지점에서 채집한 표본을 교토대학 교수인 코이즈미(G. Koidzumi, 小泉源一, 1833-1953)에게 보냈고, 코이즈미는 이 표본을 근거로 하여 1934년 세뿔투구꽃을 신종으로 발표하였다. 이 표본은 현재 교토대학 식물표본관에 보관되어 있다.
코이즈미는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1919년부터 교토대학 식물분류학 실험실을 연 인물로 1944년 퇴임할 때까지 많은 논문을 냈다. 방학을 이용하여 1932년, 1933년, 1935년에는 제주도, 금강산, 광릉, 북한산, 관악산, 남산, 내장산, 지리산, 묘향산, 개마고원, 가야산, 금정산 등 한반도 전역에서 2,200여 점의 식물표본을 수집하기도 했다.
꽃잎 아닌 꽃받침이 투구 모양 꽃을 형성
세뿔투구꽃(Aconitum austrokoreense Koidz., 미나리아재비과)은 해발 180-650m의 숲 속 돌이 많은 지역에 주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비스듬히 서서 자라며 보통 60-80cm이지만 잘 자라면 100cm에 이르고, 가지는 갈라지지 않는다. 잎은 줄기에 어긋나게 붙으며, 줄기 아래쪽 몇 장은 둥글고, 그 위쪽 것들은 3갈래 또는 5갈래로 얕게 갈라져서 삼각형 내지 오각형으로 된다. 갈래조각의 끝은 뾰족하다. 줄기 위쪽으로 갈수록 삼각형 잎이 되며, 이 잎의 모양이 세 개의 뿔처럼 보이는 데서 우리말 이름이 유래했다. 다른 우리말 이름으로는 꽃 색깔에서 유래한 담색바꽃, 미색바꽃, 자생지인 구미 금오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오돌또기, 금오오돌또기, 금오돌쩌귀 등이 있다.
꽃은 8-9월에 피고, 투구 모양이며, 하늘색 또는 노란빛을 띤 자주색이지만 드물게 흰색도 있다.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 피거나 짧은 총상꽃차례를 이루어 2-3개씩 핀다. 5장의 꽃받침잎이 꽃잎처럼 보이며, 꽃잎은 꽃받침 속에서 꿀샘으로 된다. 위쪽 꽃받침잎은 투구 모양으로 앞쪽에 부리가 있고, 옆쪽 꽃받침잎은 둥글고, 아래쪽 꽃받침잎은 긴 타원형이다. 꽃뿔은 길이 1cm 정도이며 관처럼 생겼다. 수술은 많고 암술은 3-4개이다. 열매는 골돌과이며, 3-4개씩 달리고 11월에 익는다.
세뿔투구꽃에 대한 학명은 Aconitum racemulosum Franch. var. austrokoreense (Koidz.) 이영노 교수(Y. N. Lee)가 1996년에 제안했다. 세뿔투구꽃을 중국에 자라는 투구꽃 일종의 변종으로 처리한 것인데, 이 학명을 제안한 고 이영노 교수는 중국에 자라는 투구꽃과 비슷한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의 그 종(Aconitum racemulosum Franch.)은 중국 구이저우 성, 후베이 성 서부, 쓰촨 성, 윈난 성 북동부의 해발 1600-2800m 고산에 자라는 식물로 세뿔투구꽃과는 완전히 다른 식물로서 관련이 없는 듯하고, 세뿔투구꽃은 투구꽃속(屬)에서 다른 종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아주 좋은 종이라고 생각된다.
세뿔투구꽃이 소속되는 투구꽃속은 북쪽이 고향인 북방계열이다. 북방계열 식물이 한반도 끝자락에서 종분화를 통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세뿔투구꽃은 한라산과 남해안에 자라는 특산식물 한라투구꽃과 함께 세계에 내놓아 자랑할 만한 우리 꽃이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08.2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