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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엔 절멸 예상되는 죽백란

대한인 2015. 12. 27. 07:50

10년 후엔 절멸 예상되는 죽백란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64

 

앞으로 100년 이내에 멸종될 확률이 매우 높은 식물을 학술적으로 멸종위기종이라고 한다. 이들 중에는 100년 후에 극소수가 살아남을 것이라 예상되는 것들도 포함되지만, 몇몇 식물들은 100년 후에 완전히 절멸, 즉 멸종 확률이 100퍼센트인 것들도 있다. 제주도 한라산 남쪽 상록수림에 살고 있는 상록성 난초인 죽백란은 100년이 아니라 향후 10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멸종위기 1급 식물이다.

 

 

죽백란은 1980년 초에 우리나라 자생식물 가운데 늦게 발견된 여러해살이풀로 관상가치가 높기 때문에 불법으로 채취되어 심각한 멸종위기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환경부가 1998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지만, 멸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 현진오

죽백란은 1980년 초에 우리나라 자생식물 가운데 늦게 발견된 여러해살이풀로 관상가치가 높기 때문에 불법으로 채취되어 심각한 멸종위기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환경부가 1998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지만, 멸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 현진오

 

 

환경부는 야생생물보호법에 의해 우리나라 생물 가운데 멸종위기에 놓인 243종을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이들 중 식물은 77종인데,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것이 9종이고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이 68종이다.

1급 멸종위기식물에는 광릉요강꽃, 나도풍란, 만년콩, 섬개야광나무, 암매, 죽백란, 털복주머니란(털개불알꽃), 풍란, 한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에 난초가 6종이나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개체수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꽃을 보기 위기 마구잡이로 채취되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법정보호종들에 대해 연구한 김철수박사의 2006년 논문에 따르면 죽백란은 제주도 서귀포 일대의 상록수림 단 2곳에 16개체만이 살고 있다. 1980년대 초에 발견될 만큼 애초부터 개체수가 매우 적었던 죽백란은 수집광들의 표적이 되어 대부분 채취되고 말았다. 환경부가 1998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에 나섰지만 이미 때를 놓친 셈이다.

죽백란은 일본에서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취약종(vulnerable, VU)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남쪽의 큐슈 오키나와현부터 북쪽의 혼슈 가나가와현에 걸쳐 약 50개체군, 900여 개체가 생육하고 있다. 일본 학자들은 매년 평균 30%씩 감소해 100년 후에 멸종될 확률은 95%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서 감소되는 원인으로는 불법 채취 50%, 산림파괴 30% 등의 순으로 꼽힌다.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타이완, 네팔,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부탄,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파푸아뉴기니 등 아열대 및 난대 아시아에 분포하는 남방계 식물이다. 중국에는 광둥성, 광시성, 구이저우성, 쓰촨성, 윤난성, 저장성, 티베트, 푸젠성, 하이난성, 후난성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야생 상태에서는 절멸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지만, 증식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자생지외 보전에는 문제가 없다. 조직배양을 통한 대량증식 기술이 개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포기나누기 방식으로도 증식이 가능하다.  ⓒ 현진오

야생 상태에서는 절멸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지만, 증식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자생지외 보전에는 문제가 없다. 조직배양을 통한 대량증식 기술이 개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포기나누기 방식으로도 증식이 가능하다. ⓒ 현진오

 

 

여름에 꽃 피는 상록성 난초

죽백란(Cymbidium lancifolium Hook., 난초과)은 여러해살이풀로 뿌리는 흰색이고 굵다. 위구경은 원통형이고 비늘 모양의 잎집이 있다. 상록성 잎은 길이 6-15cm, 너비 2-4cm의 긴 타원형으로 1-3장이 난다. 잎 끝은 뾰족하고 밑부분은 잎자루처럼 된다. 꽃줄기는 길이 7-20cm이다. 꽃은 7-8월에 꽃줄기 끝의 총상꽃차례에 2-6개씩 피며, 보통 연한 풀빛이 도는 흰색이지만 변이가 심하다. 꽃받침 3장은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지만, 곁꽃잎은 조금 달라서 긴 타원형이고 가운데에 자주색 선이 있다. 입술꽃잎은 흰 바탕에 자줏빛 갈색반점이 있다. 열매는 긴 타원형의 삭과이다.

죽백란의 학명은 학자에 따라서 견해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1823년에 발표된 학명인 Cymbidium lancifolium Hook.를 옳은 것으로 본다. 이 학명을 정명(正名)으로 보는 분위기는 세계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1830년 일본 학자가 발표한 Cymbidium nagifolium Masam.를 Cymbidium lancifolium Hook.과는 다른 종으로 인식해 죽백란의 학명으로 전자를 쓰고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나중에 새로운 종으로 발표된 Cymbidium nagifolium Masam.는 꽃받침이 연한 녹백색이고 곁꽃잎과 입술꽃잎은 흰색이며, 꽃받침보다 곁꽃잎 너비가 넓어서 구분된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비교적 널리 분포하는 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서로 다른 종으로 구분할 만한 특징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나 일본에 비해 넓은 지역에 걸쳐 많은 개체가 생육하고 있는 중국의 죽백란 사진들을 인터넷 검색해 보면 꽃 색깔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죽백란과 매우 유사한 녹화죽백란(Cymbidium lancifolium Hook. var. aspidistrifolium (Fukuy.) S. S. Ying)이 우리나라에 분포한다. 1934년 일본에서 처음 발견되어 별개의 종으로 발표된 식물인데, 이후 다른 학자들이 죽백란의 변종으로 처리한 바 있다. 녹화죽백란은 죽백란에 비해 꽃받침 3장과 곁꽃잎 2장이 녹색을 띠어 구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죽백란의 꽃 색깔은 변이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변종으로 나눌만한 특징이 되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죽백란이 여름에 꽃이 피는 것과는 달리 녹화죽백란은 10-12월에 꽃이 피어 뚜렷하게 다른 개화 특성을 보이므로, 이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어쩌면 처음 발견하여 학명을 붙이 학자가 별개의 종으로 본 것처럼, 변종이 아니라 종 수준으로 다른 식물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녹화죽백란의 실체를 인정하여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위급종(critically endangered, CR)으로 보고 있다.

 

 

꽃은 여름철에 뿌리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를 이루어 2-6개씩 핀다. 바깥쪽에 꽃받침 3장이 늘어서고, 안쪽에 꽃잎 3장이 있다. 아래쪽의 입술꽃잎은 난초 특유의 독특한 모양이고, 위쪽의 곁꽃잎 2장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데 같은 모양이다.  ⓒ 현진오

꽃은 여름철에 뿌리에서 나온 꽃줄기 끝에 총상꽃차례를 이루어 2-6개씩 핀다. 바깥쪽에 꽃받침 3장이 늘어서고, 안쪽에 꽃잎 3장이 있다. 아래쪽의 입술꽃잎은 난초 특유의 독특한 모양이고, 위쪽의 곁꽃잎 2장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데 같은 모양이다. ⓒ 현진오

 

죽백란 속하는 보춘화속(屬) 식물 모두 멸종위기

죽백란은 난초과(科) 보춘화속에 속한다. 남방계열 식물로서 세계적으로 70여 종이 있다. 한반도에는 한란, 소란, 대흥란, 죽백란, 녹화죽백란, 보춘화 등 6종류가 주로 남부지방에 자라고 있다. 이들 중에 한란, 대흥란, 죽백란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생물이며, 녹화죽백란은 절멸 상태이다. 근래에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사실이 알려진 소란 역시 개체수가 적은 데가 채취꾼들의 표적이 되어 절멸 상태에 놓여 있다. 춘란이라고 부르는 보춘화가 다른 종들에 비해 분포 범위가 넓고 아직까지는 많은 개체가 남아 있는 상태이지만 이 난초 역시 채취꾼들의 표적이 되고 있어 보호가 필요하다.

대나무 잎을 닮아서 이름 붙여진 죽백란은 국가가 지정한 1급 보호식물이지만 꽃과 잎이 다 아름다워서 관상가치가 매우 높다. 이 때문에 불법 채취가 성행하고, 이로 인해 더욱 더 멸종으로 치닫고 있다. 대량으로 증식하여 보급함으로써 애호가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부가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한 제주도 여미지식물원이 이미 대량증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한편, 죽백란의 형제뻘인 녹화죽백란은 실체를 구명하는 게 급선무이다. 그 결과가 죽백란과 같은 것이라면 현재의 보호종 지정으로 충분하지만, 만약 서로 다른 것이라면 하루빨리 국가보호종으로 지정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죽백란보다 더 급하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11.1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