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피는 진귀한 난초, 한란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65
멸종위기에 놓인 종들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 환경부는 멸종위기야생생물, 해양수산부는 보호대상해양생물, 산림청은 희귀식물을 각각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제주도 남쪽 상록수림에 드물게 자라는 한란은 문화재청의 유일한 식물종 천연기념물이자 환경부의 멸종위기야생식물 I급, 그리고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식물이다. 이처럼 여러 부처가 보호종으로 지정은 했지만 자생지 내 개체가 워낙 적고 채취 압력이 높기 때문에 멸종위기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재보호법은 멸종위기에 놓인 여러 생물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한다. 종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들도 있는데, 동물은 장수하늘소, 무태장어, 크낙새, 따오기, 두루미, 산양, 수달 등 60여 종이 지정되어 있고, 식물은 한란 단 한 종이 지정되어 있다. 멸종위기 생물들을 보호하는 또 다른 법률인 야생생물보호법이 지정한 9종의 멸종위기야생식물 I급 가운데 한란이 포함된다.
문화재보호법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이나 야생생물보호법 주무관청인 환경부가 모두 법률로서 한란을 보호하고 있는 것인 만큼, 이 식물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1967년 일찌감치 한란을 천연기념물 제191호로 지정하였다. 식물과 관련해서는 노거수, 수림지, 자생북한지 등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관례에서 보면 한란이라는 종 자체를 지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이후에도 이런 사례는 다시 찾아 볼 수 없다. 2002년에는 서귀포시 상효동의 한란 자생지도 천연기념물 제432호로 추가 지정함으로써 종은 물론이고 그 종이 생육지까지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특별한 사례가 되었다.
종과 자생지를 각각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
한란(Cymbidium karan Makino, 난초과)은 제주도 남쪽의 상록수림 속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굵은 뿌리줄기가 옆으로 길게 뻗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싹이 발달하기도 한다. 잎은 뿌리에서 3-5장이 모여서 나며, 선형으로 길이 30-70cm, 너비 1.0-1.5cm,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몸은 어두운 녹색이며 광택이 난다.
꽃은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피며, 뿌리에서 나온 길이 25-60cm의 꽃줄기에 5-12개의 꽃이 총상꽃차례를 이룬다. 꽃향기가 매우 좋으며, 꽃 색깔은 녹색, 자주색, 붉은색 계열로 나눌 수 있는데 매우 다양하다. 꽃받침잎은 3장이며 벌어지고 길이 3.0-4.5cm의 넓은 선형이다. 꽃잎은 모양이 같은 2장의 곁꽃잎, 곁꽃잎과 모양이 완전히 다른 1장의 입술꽃잎으로 이루어진다. 곁꽃잎은 피침상 선형으로 길이 2-4cm, 너비 0.5cm쯤이며, 육질의 입술꽃잎은 길이 1.5-3.0cm, 자주색 반점이 있다. 열매는 길이 4-5cm의 삭과이다.
한란을 신종으로 발표한 사람은 일본 식물학자 마키노(T. Makino, 牧野富太郞, 1862-1957)로서 그는 도쿄 코이시카와식물원에 재배되고 있는 일본산 한란을 보고 1902년에 신종으로 기록하였다. 재배 개체를 보고 신종을 발표하였다는 것은 일본에도 개체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재배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본적색목록 위급종(CR, Critically Endangered)으로 10개체 미만으로 이루어진 군락 10개만이 혼슈의 시즈오카현, 와카야마현, 시코쿠의 고치현, 도쿠시마현, 큐슈의 가고시마현, 구마모토현, 오키나와현 등지에 현존하고 있을 뿐이다.
한란의 국내 분포에 대해서는 제주도 본섬뿐만 아니라 추자도, 그리고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섬에도 자란다는 말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제주도에도 예부터 흔하게 발견된 것은 아닌 듯한데, 일제 강점기나 해방 전까지 이루어진 식물조사 연구에서 한란이 보고된 바가 없는 것을 보면 과거에도 희귀하여 잘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일본의 난초 연구가 고하라에이치로(小原榮次郞)는 화보집에서 1937년 제주도에 한란과 소란(Cymbidium ensifolium (L.) Sw.)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기록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의 학술 기록으로는 1964년 제주도 향토식물연구가 부종휴(夫宗休)의 보고를 꼽을 수 있다.
제주도에 한란이 자생한다는 사실은 유추할 수 있는 조선시대 기록도 있는데, 1775년 영조 때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신경준(申景濬)의 유고집 『여암유고』에 “우리나라에는 제주에만 유일하게 혜(동양란 중에서 일경다화 난초를 혜(蕙), 일경일화 난초를 난(蘭)이라고 한다)가 있다(我國 濟州獨有蕙)”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근래에 제주도에서 일경다화(一莖多花)의 또 다른 난초인 소란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란이 상대적으로 더 많으므로 신경준의 ‘혜’는 한란을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멸종위기의 가장 큰 이유는 관상용 불법 채취
한란은 제주도에서도 한라산 남쪽에만 자생하는데, 서귀포시 도순천, 영천천, 돈네코 지역에 많다. 해발 100-700m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자생지 대부분은 계곡의 수림지대 가장자리 부분이다. 200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자생지에는 현재 50개 이상의 성숙한 개체가 보호되고 있다. 문화재청과 서귀포시가 10여 년 이상 연구와 보호시설 설치에 많은 공을 들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채취 압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종자 번식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며, 생육 또한 매우 더디기 때문에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면 십중팔구 멸종되었을 것이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적으로는 일본 남부, 중국 남부,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중국에는 광둥성, 광시성, 구이저우성, 쓰촨성, 안후이성, 윈난성, 장시성, 저장성, 푸젠성 북부, 티베트 남동부, 하이난성, 후난성 등의 넓은 지역에 걸쳐 생육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 피는 난초라 하여 이름 붙여진 한란(寒蘭)은 꽃이 피는 시기가 이채로운 뿐만 아니라 잎과 꽃의 청초하고 우아한 모습이 아름답고, 꽃에서 은은한 향기까지 나기 때문에 동양란 중 가장 진귀한 식물로 사랑을 받아 왔다. 이런 점은 한란을 멸종위기로 내몬 이유가 되기도 했는데, 멸종위기의 가장 큰 요인은 관상용 불법 채취이기 때문이다.
기내종자발아법과 근경 또는 생장점을 이용한 조직배양법이 개발되면서부터 한란 대량 증식이 가능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자연산’ 한란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에 자생 개체가 발견되는 족족 무차별 채취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근래에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난 노루가 뜯어먹는 것도 한란의 정상적인 생육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12.0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