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중북부만 사는 왕제비꽃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66
키가 크게 자라서 우리말 이름이 붙은 왕제비꽃은 세계적으로 분포 지역이 매우 좁은 식물이다. 우리나라 중부 이북 지역과 중국 지린성 및 랴오닝성 일부 지역에만 산다. 중국에는 흔치 않은 식물이므로 세계 대부분의 개체들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셈인데, 이 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라 할 수 있다. 환경부가 1989년부터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50여 종류의 제비꽃들이 살고 있다. 속(屬) 이름이자 과(科) 이름이 된 제비꽃을 비롯하여 고깔제비꽃, 금강제비꽃, 긴잎제비꽃, 낚시제비꽃, 남산제비꽃, 노랑제비꽃, 둥근털제비꽃, 뫼제비꽃, 알록제비꽃, 왜제비꽃, 장백제비꽃, 태백제비꽃, 콩제비꽃, 호제비꽃, 흰젖제비꽃 등이 있다.
북한에만 살아서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갑산제비꽃, 털노랑제비꽃도 있으며, 예전에 기록은 되었지만 지금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여뀌잎제비꽃도 있다. 멸종위기에 놓여서 환경부가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제비꽃들도 있는데 넓은잎제비꽃, 선제비꽃, 왕제비꽃 등이 그것이다.
왕제비꽃(Viola websteri Hemsl. ex F. B. Forbes & Hemsl., 제비꽃과)은 숲 속이나 숲 가장자리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추서서 40-60cm로 높게 자라며,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며, 잎자루가 매우 짧다. 잎몸은 긴 타원형으로 길이 8-12cm, 너비 2-3cm, 양 끝이 좁아진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발달하는데, 이 특징에 의해 일본에 분포하는 여뀌잎제비꽃(Viola thibaudieri Franch. & Sav.)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1897년 일본에 나는 식물로 처음 발표된 여뀌잎제비꽃은 우리나라 식물 목록에도 들어 있지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어 우리나라에는 없는 식물로 여겨진다.
졸방제비꽃과 혼동하기 쉽지만 잎의 큰 톱니로 구분
줄기 아래쪽에는 잎이 거의 달리지 않고 턱잎만 달린다. 줄기 위쪽에 달리는 턱잎은 좁은 삼각형으로 길이 2.5-3.5cm, 너비 0.4-1cm이다. 꽃은 4-5월에 잎겨드랑이 또는 줄기 끝에서 난 꽃자루에 1개씩 달리며, 흰색이다. 꽃받침잎은 5장이며, 길이 5-6mm이다. 꽃잎은 길이 12-13mm이고, 곁꽃잎 안쪽에 털이 나지 않는다. 꽃뿔(거, 距)은 길이 2-4mm이다. 열매는 삭과이다.
왕제비꽃과 비슷한 식물로는 여뀌잎제비꽃 외에도 선제비꽃(Viola raddeana Regel)이 있고, 식물동호인들은 졸방제비꽃(Viola acuminata Ledeb.)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선제비꽃이나 졸방제비꽃은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기는 하지만 왕제비꽃에 비해 훨씬 덜 발달한다.
또한, 선제비꽃은 습지에 살며 잎 모양도 가늘고 길므로 구분된다. 졸방제비꽃은 전체적으로 크기가 보다 작고, 줄기에 잎이 상대적으로 더 촘촘하게 붙으며, 잎 모양이 난형으로서 아래쪽이 더 넓으므로 다르다.
왕제비꽃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활동하던 영국 선교사에 의해 처음으로 채집되었다. 중국 요녕성의 항구도시인 영구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던 선교사 제임스 웹스터(James Webster)가 첫 채집자인데, 랴오닝성에서 1885년 5월에 처음으로 채집했다.
그 해 10월에 영국 왕립큐식물원의 존 스미스(John Smith, 1798-1888)에게 보낸 300여 점의 표본들 중에 왕제비꽃 표본이 들어 있었고, 이 표본을 근거로 윌리암 헴슬리(W. B. Hemsley, 1843-1924)가 1886년 신종으로 발표하였다. 이 때 사용한 웹스터의 정기준표본은 현재 영국 왕립큐식물원에 보관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한반도와 만주 일부 지역에만 생육
왕제비꽃은 세계적으로 매우 좁은 분포역을 가진 식물일 뿐만 아니라 그 분포역의 대부분은 한반도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 랴오닝성, 지린성에만 자생지가 있으며, 개체수도 많지 않은 이 식물의 최대 생육지가 한반도라는 것인데, 이는 최근 필자에 이루어진 중국 동북3성을 포함한 분포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중국의 최신 식물 문헌에는 길림성 동부지역에 사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중국의 식물 관련 국가 웹사이트에도 사진과 표본이 한 장도 올라와 있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식물이다.
중국에서는 길림성 동부지역을 포함하더라도 요녕성 동남부부터 길림성 동부에서 걸친 좁은 지역에만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1885년 웹스터의 정기준표본은 랴오닝성 센양(심양)부터 압록강 사이에서 채집된 것으로서, 필자는 이 지역에서는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투현에서 생육을 확인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발 200-900m의 산지 숲 속에 사는데, 습기가 비교적 많은 계곡 주변, 산사면 등에 생육한다. 양평 등 경기도 동부지역과 정선, 홍천 등 강원도 서부지역에 가장 많은 개체가 산다. 남쪽으로는 단양, 충주, 보은까지 분포한다.
경기도 가평군, 남양주시, 안성시, 양평군, 연천군, 강원도 강릉시, 삼척시, 영월군, 정선군, 평창군, 홍천군, 횡성군, 충청북도 단양군, 보은군, 제천시, 충주시 등지에 자생지가 있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 동부지역의 어느 곳 등 몇몇 자생지는 심각한 위협 상태에 놓여 있다.
세계적으로 매우 좁은 지역에서만 생육하는 왕제비꽃은 남한에서 20여 곳의 자생지만이 알려져 있고, 개체수는 최대 1,000여 개체에 불과하다. 개체군 보호를 위해 보호펜스 등 보호시설 설치가 필요하지만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래 전에 설치된 홍천 자생지의 보호시설이 유일한데, 절반 이상의 자생지에 보호시설을 시급히 설치해야 이 식물을 보전할 수 있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5.12.1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