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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 사는 아열대성 비자란

대한인 2016. 1. 6. 08:20

한라산에 사는 아열대성 비자란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67

 

비자란은 아열대성 상록 난초로서 우리나라에는 한라산 남쪽 자락까지만 올라와 자란다. 큰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 붙어서 살며, 크게 자라더라도 잎 크기가 4cm 이하, 줄기 길이가 10cm 이하인 소형 난초지만 봄철이면 앙증맞게 예쁜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낸다. 원래부터 숫자가 적던 이 작은 착생난초는 불법채취 때문에 절멸 상태에 놓여 있다. 환경부가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10종류의 착생(着生)난초 중에서 풍란, 나도풍란, 석곡 등 3종은 비교적 크기가 큰 난초이다. 석곡은 높이 25cm에 이르며, 나도풍란은 잎 길이가 15cm 정도로서 대형 잎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큰 꽃들이 모여서 풍성한 꽃차례를 이룬다. 풍란 또한 잎과 꽃이 대형이어서 눈에 잘 띈다. 지네발란은 잎과 꽃 하나하나는 작은 편이지만 여러 개체가 큰 덩어리를 이루어 자라므로 자생지를 찾아가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비자란

비자란은 제주도 남쪽 계곡의 숲 속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남방계 소형 난초이다. 불법채취로 인해 20여 년 사이에 개체수가 급속도로 감소해 지금은 단 한 곳의 자생지만이 확인되고 있다. 환경부가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 현진오

 

 

이들을 제외한 금자란, 비자란, 차걸이난, 콩짜개란, 탐라란, 혹난초 등 6종류의 착생난초들은 크기가 매우 작은 소형 난초로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잎의 길이가 1-3cm이고, 줄기의 길이가 잘 자란 경우라도 10cm 이하이다. 잎 길이가 10cm에 이르는 탐라란이라 하더라도 줄기가 5cm 정도여서 전체적으로 작게 보인다. 이들 소형난초들은, 돌이나 나무 가리지 않고 붙어사는 풍란, 나도풍란, 석곡, 지네발난 등과는 달리, 모두 나무에 붙어사는데 가느다란 가지에 붙어사는 경우가 많아서 발견하기가 더욱 어렵다.

작지만 아름다운 꽃 피우는 남방계 착생난초

비자란은 우리나라 10종류의 착생난초 가운데 차걸이난, 탐라란과 함께 제주도에서만 자란다. 우리나라 착생난초들은 모두 아열대 지방에 분포의 중심을 둔 상록성 식물들인데, 이들 3종류의 착생난초는 한반도에서 제주도가 분포의 북방 한계선인 것이다.

비자란(Thrixspermum japonicum (Miq.) Rchb. f. 난초과)은 계곡 주변의 상록수림에 자라는 오래된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 붙어사는 상록성 여러해살이풀이다. 공기 중에 나출되어 있는 뿌리가 줄기 뒷부분으로부터 나와 나무껍질에 붙으므로 식물체는 몸을 내밀 듯이 아래를 향해 매달려 있다. 줄기는 아래를 향해 자라며, 길이 2-10cm로 묵은 잎들에 싸여 있다. 잎은 좌우 두 줄로 어긋나며, 길이 2-4cm, 너비 4-5mm로 긴 타원형 또는 피침형이고 끝이 조금 뾰족하다.

꽃은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에 연한 노란색으로 2-3일 동안 피며, 2-5개가 잎겨드랑이에서 나와 아래를 향해 달리고, 지름 1cm쯤이다. 꽃대는 2-4cm이며 가늘고, 꽃자루는 5-10mm이다. 입술꽃잎은 얕게 3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삭과이며, 거꾸로 선 달걀형이고 짧은 대가 있다.

 

 

꽃은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에 가느다란 꽃대 끝에 2-5개씩 아래를 향해 피며 연한 노란색, 지름 1cm 쯤이다.  ⓒ 현진오

꽃은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에 가느다란 꽃대 끝에 2-5개씩 아래를 향해 피며 연한 노란색, 지름 1cm 쯤이다. ⓒ 현진오

 

 

불법채취 때문에 절멸 직전의 상태

비자란이라는 우리말이름은 ‘카야 난’이라는 일본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서 ‘카야’는 비자(榧子)의 일본어이다. 일본이름은 잎이 두 줄로 붙은 모습이 비자나무의 잎을 닮아서 붙여졌다. 제주도에서 발견되어 제주난초라고도 하는데, 남해도에서는 금자란을 비자란이라고도 하는 것을 감안하여 헷갈리지 않도록 제주난초라 부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비자란의 학명은 1866년 독일 식물학자 미켈(F. A. W. Miquel, 1811-1871)이 일본산 식물로 처음 발표하였으며(Sarcochilus japonicus Miq.), 10여 년 후인 1878년에 라이헨바흐(H. G. Reichenbach, 1824-1889)가 현재의 비자란속(Thrixspermum)으로 옮겼다. 비자란속(屬)은 동남아, 호주, 뉴질랜드에 자라는 150여 종의 상록 소형 난초들로 이루어져 있다.

비자란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타이완, 일본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남쪽 사면의 해발 200-400m 계곡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된다. 중국에는 후베이성, 후난성, 구이저우성, 쓰촨성, 윈난성, 광둥성, 푸젠성 등지에 자란다. 타이완에는 북부 지역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는 혼슈의 아와테현 남쪽부터 시코쿠, 큐슈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널리 흔하게 생육한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 우리나라 제주도는 분포의 가장자리에 해당한다.

 

 

오래된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 붙어사는 상록성 착생난초이다. 상록수뿐만 아니라 소나무 같은 침엽수에도 착생하여 자라는데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렵다.  ⓒ 현진오

오래된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 붙어사는 상록성 착생난초이다. 상록수뿐만 아니라 소나무 같은 침엽수에도 착생하여 자라는데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발견하기 어렵다. ⓒ 현진오

 

2011년부터 비자란 복원을 위해 노력해 온 국립수목원이 인공증식에 성공해 2015년에는 제주도에 대체 자생지를 조성하기도 했으나, 멸종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알려져 있는 단 한 곳의 자생지인 서귀포시 자생지를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한 보호지역으로 시급히 지정할 필요가 있으며, 무분별한 출입과 불법채취를 막을 수 있는 보호시설을 당장에라도 설치해야 우리나라에서 이 난초의 멸종을 막을 수 있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6.01.0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