勤務(근무) 하는 뻐쓰 案內孃(안내양)들을 위하여 따뜻하고 品位(품위)있는 防寒(방한)
코드와 바지를 製造(제조)하여주시고 特(특)히 바지는 貴社(귀사)
에서 無料(무료)로 膳賜(선사)까지 하여 주셔서 感謝不已(감사불이)하는 바입니다.
못하고 職業戰線(직업전선)에 나와서 고된 일을 하면서
國民(국민)들에게 奉仕(봉사)하고있는 이들 少女(소녀)들에게 조고마한 선물 하나씩을 보내어 그들의 勞苦(로고)를 慰勞(위로)!
하고 激勵(격려)할까 하는 뜻에서 貴社(귀사)에게 付託(부탁)을 하였든 것인데 貴下(귀하)께서
그 趣旨(취지)를 忖度(촌탁)하시고 誠心(성심)껏 協調(협조)하여 주신 데 대하여 眞心 (진심)
으로 感謝(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보다 더 誠實(성실)한 마음가짐으로 自己(자기)들이 맡은 일에 誠心誠意(성심성의) 熱心(열심)
히 일을 하리라고 믿습니 다.
(기원)합 니다.
오래 놓아 두면 손수 젓가락을 저어 주면서 마시라고 권유했다.
기억에 남아 있다.
등을 긁을 수 있는 '효자손'이 있었다.
가려운 등을 긁어줄 수 있는 사람의 손이 없었기때문이었다.
역할은 했지만 잠자리에서 등을 긁어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나무로 된 효자 손이
침대를 지켰던 것이다.
감돌았다.
있었다.
운동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도 그의 외로움을 해소시키진 못했다.
장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영도자였다. 혁명 이후 20년간 자신의 혁명
목표를 세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이제 그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믿고, 독재자로 불리면서 지켜온 권좌에서 물러설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집무실을 정리하러
들어갔을 때 벽에 걸린 달력은 10월 26일에 정지되어 있었다.하루에 한 장씩 뜯겨지던 달력이 그렇게 멈춰 있는 것을 보고, 청와대 식구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달력을 아주 소중한 유품중에 하나로 보관하고
있다. 인간 박정희 ! 대통령의 역사는 그 날 그! 렇게 멈추었지만 영원히 잊혀질
수 없는 까닭에서다.
이라는 기사에 자세히 나와있다. 그 기사에서 朴(박)대통령의 술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
수록해본다.
내용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6시에 식당으로 올라갔다.
목을 쏙 내밀고 살피곤 했다. 그때 막걸리통이 있으면 아주 질색을 했다. ... 어쩌다가
가뭄에 콩 나듯이 시버스 리걸이 나오는데 그것만 보면 우리는 얼굴이 환해져서 조그맣게
소리쳤다. '됐다!'
집어 먹었고 김을 밥숟갈에 척 붙여서 먹었으며 닭고기를 먹을 때도 손을 잡고 먹음직
스럽게 뜯어 먹었다고 한다.
송장군이 없어서, 참모장인 박정희 장군을 대신 만났다. 박장군은 Y씨를 맞아 '먼길에
오셨으니 그냥 갈 수 있느냐'면서 중국집에 가서 술대접을 했다. 둘은 배갈을 먹기 시작
했다. 둘은 누가 술이 더 센가 시합을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빈병을 나란히 눕혀가면서
마셔댔다.
세운 최고기록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런하게 다시 놓았다. 이렇게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게 버릇처럼 돼 있었다. 그렇
지만
술자리에선 참석한 사람들을 아주 편안하게 해줬다.타서 '막사이'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를 불렀다.>
와 함께 좋아하던 시버스 리걸이었다.
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면서 둘러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갠 뒤에 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심장마사지도 다시 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이야기했다.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줄 몰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헤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넥타이 핀, 헤진 혁대'를 차고 있었다. 그의 집무실과 침실 화장실 물통에는 벽돌 한 장씩
들어 있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의 집무실에는 선풍기와 파리채가 있었다. 기름 절약을
위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사용을 통제했던 그는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면서 더위를
견뎠다. 벌레가 들어오면 파리채로 잡았다.
! !에서 공수해온 아이스크림,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폴레옹 코냑, 비행기로 매일 날라오는
수단 수박, 이탈리아 요리사를 초빙하여 만든 피자를 즐긴다.
권한대행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영전에 바칠 때 국립 교향악단이 연주한 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이 장엄한 곡은 니체가 쓴 같은 이름의 책 서문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곡처럼
박정희는 토종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초인(짜라투스트라)처럼 살다가 영웅에 어울리는
최후를 남기면서
사라져갔다.삼켜 버리려면 모름지기 바다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
영웅이란 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고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며 새로운 시대를 빚어
내는 용광로이다. 그는 시대 정신을 반영하고 그 시대의 요구를 담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사람이다. 영웅은 보통 난세에 나타나서 불꽃처럼 살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하여 후세에 오래오래 계속되는
논쟁점을 남긴다. 바다처럼 청탁을 함께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라는 화폭에 큰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박정희는 김일성과 차원을 달리하는 인간
이다. 김일성은 권력으로 부패했으나 박정희는 권력을 쥐고도 끝까지 맑은 혼을 유지
하였다.
한 구절은
2등 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네 손이 밉 더라'였다.'가난은 나의 스승이고 군림 사회와 특권 계층을 증오하는 것은 나의 생리'라면서 '서민
속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그리하여 그서민의 인정 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한다'
고 했다.
쏠 때, 그리고 차지철이 실내 화장실로 달아날 때, 이어서 김재규가 일어서서 4∼5초쯤
주저 하다가,
박정희의 가슴을 향하여 발사할 때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이는 곁에 있었던 두여인 심수봉과 신재순의 일치된 증언이다.
괜찮아"라 고 했다. 두 여인이 "각하 진짜 괜찮습니까"라고 했을 때 그는 또다시 "난괜찮아"
라고 했다. 이 순간 그는 관통상으로 인해 등에서는 선혈을 콸 콸 쏟고 있었다. 세계의
암살사를 다 뒤져도 이런 초인적인 장면을 발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다.
앞 모습은 꾸밀 수가 있지만 뒷모습은 꾸밀 수가 없다. 뒷모습이야말로 그 인간의 참 얼굴일
것이다. 총알이 허파를 꿰뚫고 지나간 뒤에도 "난 괜찮아"라는 말을 한 그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우리가 본 그의 뒷 모습이었다.
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리라. 그는 어머니가 임신 했을 때 지워버리려고 그렇게 애썼던
생명이었다. 44세에 며느리를 둘이나 둔 어머니는 박정희를 임신하자 간장을 두 사발이나
마시고 기절해 보기도
하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 상처를 내보기도 했다. !그리하여 '태어나서는 안 될 생명'이 태어났고 이 인물에 의하여 이 나라가 천지개벽의
변화를 겪었으니 운명적이란 말로써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사람이다.
받았으나 그의 인간됨을 아낀 많은 사람들의 운동에 의해서 생환했다. 그때 동거하던 이
모 여인은 가출하여 그를 버렸고 피난 중 부산의 어느 술집에서 이상한 관계로 재회했다.
에서 겪었던, 비참함을 하나의 거대한 응어리로 만들어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사람
이기도 하다. 이 응어리를 개인적 차원에서 해소하려 하지 않고 민족적 차원에서 풀어간
점에서 그가 혁명가임을 확인하게 했
다. 이 응어리는 그의 동력원이었다.그는 경제 개
발을 통해서 물질적인 기반을 확보한 다음,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스스로결정할 수 있는 자주국가의 건설을 최종목표로 설정했던 것이다.
육영수와 선을 보러갈 때는 가슴이 떨려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간 사람이 총구 앞에서는
태산처럼 의연했다. 그의 집무실은 서재로 불렸다. 그는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유교적
교양인이기도 했다.
되었던
이 정신력을 간과하고는 박정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말년의 박정희는아내를 잃은 허전함으로 해서 내면이 해이 해 졌다. 그를 둘러싼 권력의 갑옷은 차지철
경호실장의 월권에 의해서 경직되어 갔다.
하여금 영웅으로 죽게만든 김재규는 저승에서 박정희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지
누가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