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바위틈에 자라는 분홍장구채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70
생물 멸종을 막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철새처럼 여러 나라에 걸쳐 분포하여 국제적인 보호 노력이 필요한 멸종위기종이 있는가 하면, 국지적인 분포로 인해 분포하는 국가가 멸종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생물들도 있다. 특산종들은 후자에 해당하는데, 우리나라 특산식물 400여 종류가 지구상에서 멸종하지 않도록 하는 보전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셈이다.
강원도 영월에서부터 북쪽으로 압록강까지 분포하는 분홍장구채는 압록강 유역의 중국 땅에도 생육하고 있어서 한국특산식물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상황으로 볼 때 특산식물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가 보호해야만 하는 멸종위기종이다.
러시아의 젊은 식물학자 코마로프박사(Komarov V. L., 1869-1945)가 이끄는 식물탐사대는 1897년 5월부터 9월까지 한반도 북부지역을 답사하며 많은 식물표본을 수집했다. 탐사대는 7월 15일 압록강 절벽에서 처음 보는 새로운 식물을 발견했는데, 기존에 알려져 있던 유사 종들과는 잎 모양이 다르고 꽃이 달린 모양도 달랐다. 같은 해 8월 10일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함경도 장진강에서도 이 식물을 다시 발견하여 채집했다.
탐사 후 레닌그라드(상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코마로프박사는 1901년 <만주와 한반도 북쪽의 식물상>이라는 논문을 통해 압록강과 장진강의 그 식물을 분홍장구채(Silene capitata Kom.)라는 신종으로 발표했다. 채집 당시부터 눈여겨보았던 여러 개의 꽃들이 머리 모양으로 붙어 있는 독특한 특징을 학명에 반영하여 ‘카피타타(capitata)’라는 종소명(種小名)을 붙였다. 당시에 채집한 분홍장구채 표본들은 현재 영국자연사박물관, 뉴욕식물원표본관, 영국왕립큐식물원표본관 등지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코마로프박사는 분홍장구채를 발표한 논문에서 다른 여러 신종들도 발표하였는데, 같은 속의 끈끈이장구채(S. koreana Kom.)도 함경남도 삼수와 갑산에서 채집한 표본을 근거로 해서 이때 신종으로 발표되었다.
압록강에서 1897년 처음 발견
분홍장구채(석죽과)는 한반도 중부 이북의 습기가 있는 바위틈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탄강처럼 큰 강의 절벽에도 자라지만 작은 계곡 주변의 절벽에도 자란다. 도로공사를 하며 새로 생긴 절개지 암벽에도 곧잘 들어와 산다. 줄기는 밑에서부터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비스듬히 누워서 자라고, 길이 30-45cm이다. 줄기 마디 부분이 굵어지며, 줄기 겉에는 연한 털이 많다. 잎은 마주나며, 넓은 난형, 양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잎 양면에 털이 난다. 잎자루는 없거나 매우 짧다.
꽃은 7월부터 9월에 걸쳐 피는데 남한의 자생지에서는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분홍색 또는 분홍색이 도는 보라색이며, 줄기와 가지 끝에 머리 모양의 취산꽃차례로 피며, 몇 개 또는 수십 개가 달린다. 꽃받침통은 종 모양이다. 꽃잎은 길이 1cm쯤이며, 5장이고, 끝이 가늘고 길게 2갈래로 갈라진다. 수술은 10개이며, 암술은 1개, 암술대는 3갈래이다. 열매는 삭과이다.
양지에서 자랄 때와 음지에서 자랄 때의 모습이 매우 다른 식물로, 양지에서 자라면 잎이 작고 촘촘하게 나며, 꽃차례당 꽃 수가 많고, 줄기가 굵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홍장구채의 다른 우리말이름으로는 애기대나물, 구슬꽃대나물 등이 있다. ‘대나물’이 붙은 것은 대나물속이라는 속명(屬名)에서 온 것이며, 애기대나물의 ‘애기’는 대나물에 비해서 작은 데서 유래했다. 구슬꽃대나물의 ‘구슬꽃’은 여러 개의 꽃들이 머리 모양으로 달려서 둥근 구슬을 연상케 하는 데서 붙여졌다. 짧은 꽃자루를 가진 꽃들이 머리 모양으로 둥글게 모여 달린 특징은 우리나라 장구채속(Melandrium)이나 대나물속(Silene) 식물들 중에서 유일한 것이다.
분홍장구채는 대나물속이 아니라 장구채속 식물로 보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멜란드리움 카피타툼(Melandrium capitatum (Kom.) ex Mori)이라는 학명을 쓴다. 장구채속을 구분하여 나누는 학자들은 씨방이 하나의 칸으로 되어 있는 점, 열매 끝의 갈래 수가 암술대 수의 배수인 특징을 들어 대나물속이나 동자꽃속(Lychnis)과 분리하여 장구채속을 두기도 하지만, 현재는 두 속을 대나물속으로 통합하여 보는 견해가 많다.
대나물속과 장구채속을 나눌 경우에도 분홍장구채는 두 속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어느 한 속에 소속시키기가 쉽지 않다. 즉, 씨방은 장구채속, 꽃은 대나물속의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어느 속에 소속시킬 것인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대립해 왔다.
분포지역 좁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분홍장구채는 세계적으로 한반도에만 분포하는 식물이다. 영문판 <중국식물지>에 중국 분포에 대한 언급은 되어 있지만, 분포지가 길림성 압록강으로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압록강 이외의 중국 지역에는 분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 외의 많은 중국 식물도감에는 분홍장구채가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다. 또한, 디지털화 되어 있는 중국의 표본 데이터를 기준으로 볼 때, 중국 식물표본관에 보관된 표본이 검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는 오로지 압록강 일대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반도에서는 압록강에서 처음 채집된 이후에 함경도 차일봉, 부전고원, 노봉, 관모봉 등 여러 곳에서 채집된 표본이 있고, 황해도 서흥에서도 채집되었다. 남한에서는 고 이창복교수가 1974년 강원도 철원군 한탄강 순담계곡에서 처음 채집했으며, 이후 경기도 연천, 강원도 양구, 영월, 화천, 홍천 등지에서도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자생지를 종합해 볼 때 분홍장구채는 북쪽 압록강을 경계로 남쪽으로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까지의 한반도 중북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라 해도 될 만한 분포역을 가진 셈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볼 때 매우 협소한 지역에 생육하는 식물에 해당하며, 분포면적과 개체수, 감소 추세 등으로 평가하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세계적색목록의 멸종위기종(CR, EN, VU)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적색목록 취약종(VU)으로 평가된 바 있다.
-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다른 기사 보기
- 저작권자 2016.02.0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