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다 다시 발견된 서울개발나물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69
현재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77종의 식물들 중에서 서울에 생육하는 것은 한 종도 없다. 서울에는 멸종위기식물이 한 종도 살지 않는 셈인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개발 때문에 생육지가 파괴되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식물로는 강나루의 층층둥굴레, 영등포의 매화마름 등과 함께 서울개발나물을 꼽을 수 있다.
서울개발나물은 1902년 서울 청량리에서 처음 발견되어 우리말이름에 ‘서울’이 붙게 된 식물이다. 과거에 청량리를 비롯하여, 태릉, 오류동 등지에서 채집되었는데, 청량리에서 1902년 채집된 채집자 미상의 표본은 강원대학교 표본실에 보관되어 있고, 태릉에서 1940년 장형두에 의해 채집된 표본은 강원대학교 표본실, 오류동 습지에서 1967년 고 이창복교수에 의해 채집된 표본들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 표본관에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농대 임학과의 고 이창복교수는 1967년 7월과 10월에 여러 장의 표본을 서울 오류동에서 채집하였다. 꽃이 피는 7월에 이어 열매가 익는 10월에도 표본을 수집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꽤 관심이 가는 식물이었던 것 같다. 이때 채집된 표본들을 근거로 1969년 <우리나라 식물자원>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서울개발나물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 후에 서울에서 채집된 표본도 없고 기록도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다.
1967년 이후 서울에서 멸종
서울개발나물(Pterygopleurum neurophyllum (Maxim.) Kitag., 산형과)은 중부 이남의 햇볕이 잘 드는 하천가 습지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는 흰색, 육질로 굵어지고 뿌리줄기는 짧다. 줄기는 속이 비어 있으며 능각이 있고 높이 80-180cm,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진다. 뿌리잎은 잎자루가 길고 줄기잎은 어긋나며 잎자루는 짧고 잎집으로 된다. 잎은 2-3회 깃꼴로 갈라지며, 갈래는 선형으로 길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흰색으로 피고 겹우산꽃차례를 이룬다. 꽃줄기에 날개 모양의 주름이 있으며 포잎은 있거나 없다. 꽃자루는 8-10개, 길이 2.5-4.0cm이다. 꽃은 7-8월에 피는데 개화기가 길어서 늦은 것은 9월까지 볼 수 있다. 꽃잎은 5장이며, 흰색 또는 누런빛이 돌고 끝이 오목하게 들어간다. 열매는 분과, 타원형으로 길이 3.5-4.0mm이다.
서울개발나물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873년 러시아 식물학자 막시모비치(C. J. Maximowicz, 1827-1891)가 일본 큐슈의 쿤쇼산(Kundsho-san)에서 채집된 표본을 근거로 하여 신종을 발표하면서였다. 이때에 사용된 학명은 에도스미아속(屬)에 속하였는데(Edosmia neurophylla Maxim.), 일본 식물학자 키타가와(M. Kitagawa, 1910-1995)는 서울개발나물이 산형과(科)의 기존 속들과는 달리 잎의 갈래가 선형이며, 열매 능선이 굵고 예리하다는 등의 특징을 근거로 들어, 1937년 새로운 속인 서울개발나물속(Pterygopleurum)을 만들고 학명을 현재의 것으로 바꾸었다. 이 속에는 세계적으로 서울개발나물 한 종만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울개발나물이 다른 산형과 식물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서울개발나물이라는 우리말이름은 1969년에 이창복교수가 처음 사용한 이름이며, 1970년에 출판된 한국동식물도감 제5권 식물편(목・초본류) 보유편(정태현)에는 지촌인삼, 1974년의 한국쌍자엽식물지(박만규)에는 실바디, 1982년의 한국농식물자원도감(안학수 등)에는 털분지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북한에서는 나도감자가락잎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시급한 보호펜스 설치, 생육지 관리
서울개발나물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과 중국에 분포한다. 중국에는 장쑤성, 저장성, 쓰촨성 등지만 분포하는데, 표본들을 기준으로 하여 볼 때 흔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는 혼슈와 큐슈에 드물게 분포하는데, 큐슈의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혼슈의 치바현, 도치기현 등지에만 현존하고 있을 뿐이고, 동경을 비롯하여 이바라키현, 군마현, 가고시마현 등지에서는 절멸 또는 절멸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습지개발 및 자연천이로 인해 멸종위기를 맞고 있어 일본적색목록 위협종(EN)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현재 10여 개의 개체군에 900개체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서울개발나물은 세계적으로도 분포역이 좁을 뿐만 아니라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과거 생육했던 서울은 세계적으로 볼 때 이 식물 분포의 북방한계선에 해당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크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2011년,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채집된 1967년 이후 40여 년 만에 경남 양산시의 낙동강 배후습지에서 서울개발나물을 재발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세계적인 희귀식물이자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것으로 여겨져 온 식물이 다시 발견된 것으로서 의의가 매우 큰 일이었다. 이 발견은 환경부가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새로 발견된 자생지에는 갈대숲 내부와 가장자리에 40여 개체가 자라고 있다. 하지만, 개간, 풀베기 등 인위적인 간섭으로 인해 심각한 자생지 훼손이 일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이에 의해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갈대, 갈풀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어 언제 절멸할지 모르는 절박한 위기에 놓여 있다.
새로 발견된 자생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호펜스 등의 보호시설 설치가 필요하다. 멸종위기종이 자라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행해지고 있는 풀베기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생체나 종자의 불법채취를 막고, 연구자나 촬영가들에 의한 답압 훼손도 방지하기 위함이다. 환경부와 양산시가 공동으로 시급히 보호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주변의 전체 생태계가 아니라 서울개발나물이라는 멸종위기종의 생육 조건에 맞추어 생육지를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여기에는 갈대 등 경쟁 식물의 제거, 적절한 수분 유지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인공증식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된 개체들을 이용하여 이미 절멸한 서울 지역에 재도입하거나 대체 자생지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단 한 곳 남은 서울개발나물 자생지 보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다른 기사 보기
- 저작권자 2016.01.19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