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를 빼닮은 꽃 해오라비난초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73
산 속 습지에서 피어나는 해오라비난초의 새하얀 꽃은 날아오르는 백로의 모습을 꼭 닮았다.
백로의 일종인 해오라기에서 우리말이름이 유래하였는데, 이 식물이 자생하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백로와 관련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지만, 그동안 아름다운 꽃 때문에 불법채취가 성행해온 데다 자생지도 몇 곳 되지 않아서 오래지 않아 멸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해오라비난초(Pecteilis radiata (Thunb.) Raf., 난초과)는 습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는 땅속에 곧게 들어간 줄기에서 나며, 땅속의 줄기 끝에는 둥근 덩이줄기가 있다. 땅속의 줄기 마디에서 나온 기는줄기 끝에 달린 작은 덩이줄기로는 무성번식을 한다. 땅 위의 줄기는 높이 15-40cm이다. 잎은 3-6장이 어긋나게 달리며, 넓은 선형으로 길이 5-10cm, 너비 3-6mm, 밑부분이 줄기를 감싼다.
꽃은 7-8월에 줄기 끝에서 1-3개씩 흰색으로 피며, 길이 3cm쯤이다. 꽃받침 3장은 모두 녹색이다. 곁꽃잎은 2장이며 마름모꼴로 길이 1cm쯤이다. 입술꽃잎은 길이 7-10mm, 너비 10-15mm로 크며, 3갈래로 갈라지는데 양쪽 갈래의 가장자리가 가늘게 갈라져서 술처럼 된다. 꽃뿔은 아래쪽으로 처지며, 길이 2-4cm로서 씨방보다 길다. 열매는 삭과이며 먼지처럼 작은 씨가 많이 들어 있다.
새 ‘백로’를 닮은 입술꽃잎
해오라비라난초라는 우리말이름에 대해서는 얘깃거리가 많다. 먼저, 입술꽃잎의 모양이 새를 닮은 데서 이 이름이 유래한 것은 확실한데, 해오라비라는 새는 없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해오라기라는 새의 경상도 방언이 해오라비라고 되어 있다는 것을 보면, 해오라비난초라는 이름은 해오라기라는 새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분명한 듯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맞춤법에 맞추어 해오라기난초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해오라기 새를 아는 사람들은 해오라비난초의 입술꽃잎은 색깔이나 모양에서 해오라기를 전혀 닮지 않았고, 오히려 백로를 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백로를 닮은 데서 유래한 이름은 일본과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루란(鹭兰)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사기소(サギソウ, 鷺草)라고 하는데 ‘루’와 ‘사기’는 모두 같은 한자를 쓰며, 백로를 이르는 말이다.
해오라비난초라는 우리말이름은 1969년 고 이창복교수가 붙인 것이다. 하지만, 이 이름은 1937년 박만규 등을 저자로 하여 조선박물연구회에서 펴낸 「조선식물향명집」에 나오는 ‘해오래비난초’를 순화한 것에 불과하다.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확인할 길은 없지만, ‘해오래비난초’는 일본이름 ‘사기소’를 번역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식물명집인 이 책의 많은 식물명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일본이나 중국이름을 차용하여 우리말이름을 지었다 하여 반드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데, 식물의 특징을 반영하는 이름인 경우가 그렇다. 잎이 매우 큰 특징을 중요시해서 각 나라 말로 잎이 크다는 뜻이 들어간 국명을 짓는다면, 다른 나라 이름을 따라서 지었더라도 나무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 번역을 하여 지으면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일본이름을 잘못 번역하여 붙인 처녀치마 같은 우리말이름이 이에 해당한다.
학명의 경우에도 학명을 구성하는 종소명(種小名)에 종의 특성을 나타내는 라틴어 형용사가 들어 있다. 해오라비난초의 학명에 포함된 종소명 ‘라디아타(radiata)’는 방사상이라는 뜻의 라틴어로서 입술꽃잎의 양쪽 가장자리가 가늘게 갈라진 모양을 나타낸 것이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모두 멸종위기
해오라비난초는 스웨덴의 박물학자 툰베르그(C. P. Thunberg, 1743-1826)가 일본에서 채집한 표본을 근거로 하여 1794년 신종으로 기록했다. 린네의 제자이기도 한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의사로서 1775년부터 이듬해까지 일본에 기거하면서 일본 식물들은 수집했으며, 서양에 최초로 일본 식물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일본식물지」(1784)를 남겼다.
툰베르그는 당시에 해오라비난초를 오르키스(Orchis)속 식물로 발표하였다.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하베나리아속(Habenaria), 제비난초속, 헤미하베나리아(Hemihabenaria)속 등으로 소속이 옮겨졌다. 이처럼 해오라비난초가 소속되는 속(屬)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는 해오라비난초의 특징이 다른 난초들과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터키 출신 박물학자로서 미국에서 연구한 라피네스크(C. S. Rafinesque, 1783-1840)가 1837년에 주장한 펙티리스(Pecteilis)속에 속하는 식물로 받아들이는 추세이다.
과거에 해오라비난초가 속했던 하베나리아속(해오라비난초속이라 불렸지만 해오라비난초가 다른 속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더 이상 이 국명을 사용할 수 없음)에는 우리나라에 잠자리난초, 개잠자리난초, 제주방울난, 방울난초, 그리고 2010년에 경상남도에서 발견된 큰해오라비난초 등 5종이 있다.
우리나라 펙티리스속 식물로는 해오라비난초만이 있는데, 우리말이름이 비슷한 큰해오라비난초는 이 속에 속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는 6종 정도가 알려져 있고,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만 사는데, 중국에는 해오라비난초를 포함하여 3종이 분포한다. 이 속은 꽃가루덩이를 곤충에 잘 붙게 하는 끈끈한 부분인 점착체가 밖으로 나출되지 않고, 암술머리부리의 끝에 있는 관 모양의 주름 속에 숨겨져 있는 특징으로 하베나리아속과 구분된다.
해오라비난초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에만 살고 있다. 극동 러시아에 있다는 문헌도 있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 북부지방에서 발견되지 않고, 중국 동북지방에도 없으며, 일본에는 혼슈까지만 나올 뿐 홋카이도에 없는 것으로 보아, 연해주 등 러시아 극동지방에 분포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에서는 단 한 곳의 자생지만이 알려진 아주 희귀한 식물인데, 허난(河南)성 서부의 롼촨현 라오쥔산(老君山) 해발 1500m 초지에서만 생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발견된 일본에 가장 많은 개체가 자라고 있다.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전역에 널리 분포하는데, 이와테현과 아키타현 이남의 혼슈 전 지역, 시코쿠 및 큐슈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2000년 기준으로 30여 개 현에서 168개 개체군이 확인되었으며, 개체수는 2만 여 개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감소율이 60%로 매우 높아서 100년 내에 멸종할 확률은 99% 이상으로 여겨지고 있어, 일본적색목록에서는 멸종위기종에 속하는 취약종(VU)으로 판정하고 있다. 일본에서 개체수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가장 큰 원인은 원예용으로 채취되는 것이며, 습지개발과 농지나 택지 조성 등도 주요 위협요인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강원도, 경상남북도에 최대 200개체 정도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과거에 관상용으로 무분별하게 채취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훼손 압력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환경부가 1993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다가 완전히 멸종한 것으로 여겨 1998년에 보호종에서 해제되었다. 하지만 이후 몇몇 곳에서 자생지가 추가로 발견됨으로써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다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다른 기사 보기
- 저작권자 2016.04.1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