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곶자왈의 개가시나무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74
식물 이름에는 그 식물이 가진 특징이 반영된 경우가 많다.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되었다하여 제주고사리삼이라 하고, 잎이 넓다하여 넓은잎제비꽃이라 하며, 씹으면 소태처럼 쓰다하여 소태나무라고 한다.
잎과 줄기를 꺾으면 피처럼 붉은 즙이 나오는 피나물, 두 장의 작은 잎이 날개 펼친 나비를 닮은 나비나물, 줄기를 태우면 노란 재가 남는 노린재나무, 잎과 어린 줄기에서 누린내가 나는 누리장나무, 이 식물들의 우리말이름은 모두 그 식물의 특징을 반영하여 우리말이름이 지어졌다.
식물의 특별한 기관 중의 하나인 가시와 관련된 우리말이름들도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잎과 줄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고, 돌가시나무와 용가시나무에도 줄기에 가시가 돋아 있으며, 가시여뀌의 줄기에는 가시가 많다.
하지만, 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등의 이름에는 ‘가시’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 어디에도 가시가 없다. 이 나무들은 모두 남해안과 제주도에 자라는 상록성 참나무들인데, 이들 나무의 이름에 붙은 가시는 놀랍게도 참나무를 뜻하는 일본어 ‘가시(ガシ)’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즉시 우리말로 고쳐야 할 식물 이름인 것이다.
우리말 이름의 ‘가시’는 참나무라는 뜻의 일본어
환경부가 1998년부터 법정보호종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멸종위기식물인 개가시나무도 상록성 참나무의 일종으로 일본어 ‘가시’가 우리말 이름에 들어 있어 유감이다. 이 식물의 우리말 이름에 ‘개’가 붙은 이유도 아리송하기만 하다. 식물의 이름에는 보통 ‘아류’ ‘가짜’ ‘유사한’ ‘나쁜’ 등의 의미로 접두어 ‘개’가 붙는데, 개가시나무에 이 접두어를 붙일 만한 이유가 없다.
약재로 많이 쓰는 참가시나무에 빗대어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개가시나무는 예부터 탄력이 좋아 창, 농기구 등의 자루로 쓰였을 정도로 유용한 식물이어서 이름에 ‘개’를 붙인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대에도 기구재 뿐만 아니라 기계재, 차량재, 선박재, 건축재, 신탄재 등의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자원식물로 여겨지고 있다.
개가시나무의 다른 우리말 이름으로는 돌가시나무, 돌종가시나무, 힌가시나무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먼저 사용된 이름은 정태현의 돌가시나무로 1942년 <조선산림식물도설>에서 처음 제안되었다. 1949에는 정태현, 도봉섭, 심학진의 졸종가시나무가 <조선식물명집>에 등장하며, 같은 해 박만규는 <우리나라 식물명감>에서 힌가시나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개가시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은 1966년 고 이창복교수가 <한국수목도감>에서 처음 제안한 이름이다. 우리말이름에도 학명처럼 먼저 발표된 것을 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을 적용하면 돌가시나무가 타당하다. 하지만 아직 그런 논의는 이루어진 바가 없다. 돌가시나무나 돌종가시나무라는 우리말이름은 돌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습성을 반영한 이름이다.
개가시나무(Quercus gilva Blume, 참나무과)는 저지대 상록활엽수림에 자라는 상록 큰키나무로 잘 자라면 높이 30m, 지름 2m에 이른다. 수피는 흑갈색이고, 어린 가지에는 황갈색 털이 많다. 잎은 어긋나며, 도피침형으로 길이 5-13cm, 너비 1.3-3.0cm이고, 잎몸의 중앙부터 위쪽으로 예리한 톱니가 있다. 잎 앞면은 털이 없고, 뒷면은 황갈색 털로 빽빽하게 덮여 있다.
꽃은 4월에 피며, 수꽃이삭은 길이 5-10cm로 햇가지의 아랫부분에 달리며 밑으로 처진다. 암꽃이삭은 햇가지 위쪽의 잎겨드랑이에 3개씩 달린다. 수꽃의 화피는 5장, 수술은 7-10개이다. 암꽃은 털이 많은 총포에 싸이고, 암술대는 3개이다. 11월경에 익는 열매는 난상 타원형 견과이며, 길이 1-2cm이다. 깍정이에는 포가 합쳐져서 생긴 6-7개의 동심원층이 있다. 우리나라 외에 일본, 중국, 타이완에도 분포한다. 일본과 중국에는 흔하게 자라는데, 일본에서는 혼슈이남, 중국에는 푸젠성, 광둥성, 구이저우성, 후난성, 저장성 등 남부에 널리 분포한다.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등 우리나라에 자라는 다른 상록성 참나무들에 비해서 잎은 도피침형이며, 잎 뒷면에 황갈색 털이 빽빽하게 나고, 잎몸 중앙 이상에 끝이 뾰족한 톱니가 있으므로 구분된다.
개가시나무는 1851년 독일계 네덜란드인 식물학자 블루메(C. L. Blume, 1827–1830)가 일본에서 채집된 표본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종으로 발표하였다. 현재에도 많은 학자들이 블루메와 같이 참나무속(Qurecus)에 속하는 식물로 보지만, 일부 학자들은 열매 깍정이의 포가 융합되어 동심원상으로 배열된 종류들을 참나무속과 달리 보아서 시클로발라놉시스속(Cyclobalanopsis)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대부분의 상록성 참나무들이 포함된다. 이 경우에 가시나무의 학명은 시클로발라놉시스 길바(Cyclobalanopsis gilva (Blume) Oerst.)가 된다.
곶자왈 자생지 보호는 다행이지만 후계목 없어 멸종위기
개가시나무는 전라남도에도 분포한다는 문헌이 있지만 현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제주도에서만 관찰된다. 제주도 해발 100-300m의 중산간 지역에 생육하는데, 이곳은 예부터 말과 소의 방목장으로 이용되어 온 곳이며, 근래 들어서는 골프장, 택지 등으로 개발되어 왔다. 이런 대규모 개발로 인해 많은 개가시나무가 이미 사라졌으며, 남아 있는 개체들은 중산간 지역 중에서도 개발되지 않고 남아 있는 곶자왈 지역에 고립된 채 살고 있다.
2014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정밀조사에서 제주도에 688그루가 생존해 있고, 이 중 680그루는 한경과 안덕 지역 곶자왈에 분포하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제주도에서 발견된 대다수의 개가시나무 개체들이 자라고 있는 곶자왈은 토양이 빈약하고 돌이 많기 때문에 어린 나무들이 발생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또한 많은 개체들은 상록수림 내에서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후계목이 생겨나지 않고, 경쟁에서도 불리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이 지나면 절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곶자왈 보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자생지 자체를 보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장
- 저작권자 2016.04.26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