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롯한 1970년대 대한민국의 지식인, 대학생 상당수는
박정희 대통령에 반대했다.
특히 당시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내가 이제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40년 전의 내가 틀렸고 지금의 내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군사독재라는 과(過)와 더불어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지금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마침 내년이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
그 중심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그 업적에 대한 재조명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되짚어 봐야 할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과연 무엇이 있을까?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먼저,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강력한 리더십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두고 세계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기도 하지만,
필자는 결코 우연히 일어난 기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과 혜안,
그리고 강력한 열정과 추진력으로 국민들의 역량을
한 데 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국가경제발전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협소한 국토, 빈약한 자원, 기술 등 공업화에 불리한 여러 악조건들을
제1~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수립, 실천으로 극복했다.
수출지향적 공업화와 공업단지조성,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통해
철강, 자동차, 조선, 기계, 전자, 석유화학 공업을 일으켜 세웠다.
국내외 온갖 회의적인 시각과 반대여론, 자금과 기술 도입의 어려움
속에서도 포항종합제철과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온 국민과 함께
이뤄냈다.
두 번째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일깨운 새마을운동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4월22일,
농촌의 현대화를 위해 새마을운동을 주창했다.
1971년 정부주도로 시작하여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정신으로 삼아,
단순한 정부지원이 아닌주민 스스로 참여하는 운동으로 발전시켜갔다.
특히, 성과가 좋은 마을에는 필요 물품을 우선 지원하는 `신상필벌
(信賞必罰)` 방식을 도입해 각 마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이 덕분에 1974년부터는 전 국토 구석구석이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통일벼 보급과 같은 농업기술 발전으로 농가 소득을 증가시켜,
쌀 자급자족이 이뤄졌다
.
이때 정부와 국민이 했던 노력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며, 최근에는 국제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지구촌 빈곤 퇴치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개발협력 모델로서 재조명되고 있다.
마지막은, 먼 미래를 내다본 산림녹화와 자연보호운동이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우리나라 국토는 대부분이 황폐화 돼 있었다.
물 저장고 역할을 해줄 나무가 없다보니 홍수도 잦고 가뭄도 심했다
1962~2010년까지 우리나라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산림 면적이 171만ha에 이른다.
이중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심은 나무가
전체 임목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덕분에 지금도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산림녹화의
성공모델로 꼽히고 있다.
구미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자연보호운동을 추진한 것도 이 시기이다.
이 외에도 의료보험제도 도입, 국민의무교육 시행,
국민복지연금법 제정 등 오늘날 우리 삶과 직결된
수많은 제도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손을 거쳤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현재의 잣대로 그때를
평가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무조건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독재는 분명한 과(過)이고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낳았다.
그렇지만, 누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 답은 역시, 박정희 대통령을 제대로 평가하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그 시작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