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원시단계
태초에 빛이 생겨 밝음과 어둠으로 나뉘어졌으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너는 너였고 나는 나였다.
2. 선행조건단계
만원버스에서 발을 밟았을 때 서로 화성과 금성에서 온
사실을 이실직고 하되,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시작해 보겠다는 따위의
허튼 계산은 소설책을 거꾸로 읽어도 좋다는 수작과 같다.
3 도약단계
밟고 지나가면 디딤돌이 되고, 걸려 넘어지면 걸림돌이 된다.
박차고 나아가면 어느새 분홍빛 구름 위를 날고 있다.
4. 성숙단계
허물이 벗겨지고 촉감에 익숙해지며 선택과 집중으로
꽃은 활짝 피어나고 새들은 일제히 날아오른다.
하지만 가끔 날개짓에 일찍 권태를 느끼는 새는
추락하기도 한다.
5. 대중소비단계
나는 새도 둥지는 필요하다.
연착륙이 필요한 시기다.
같은 바이올린 줄에 나란히 묶일 것이다.
너는 가락으로 나는 너의 리듬으로 오랫동안
음악이 연주될 것이다.
- 권순진 시집 / '낙법(落法)'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