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너무 믿지 마라’ 식중독균
안종주의 사이언스 푸드(21)
인간이 음식, 즉 식품을 먹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소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세균 등 미생물도 생존과 번식을 위해 식품이 필요하다. 사람과 쥐가 서로의 생존을 위해 곡식을 지키고 훔쳐 먹듯이, 다시 말해 수비와 공격을 하듯이 미생물들도 사람이 먹을 식품을 끊임없이 공략한다.
식품의 맛과 신선도 뿐만 아니라 식품에 달라붙어 있는 미생물의 종류가 어떤 놈이냐,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그 식품은 사람의 사랑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된다. 식품에 미생물이 다량 번식하면 인간은 눈으로 또는 미생물이 낸 냄새로 이를 알아차리고 먹지 않는다.
미생물들은 대체적으로 상온에서 잘 자란다. 상온에 음식을 두면 미생물의 번식 속도가 워낙 빨라 때론 하루 이틀 만에 음식이 상할 수도 있다. 영리한 인간은 냉장고란 편리한 식품저장고를 만들어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해 음식물이 쉬 상하는 것을 막고 식중독을 예방하고 있다.
미생물에는 별의 별 놈들이 많다
미생물의 특성을 미생물학자나 식품 전문가처럼 잘 모르는 일반인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미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 이들은 냉장 또는 냉동 상태에서는 미생물이 죽거나 자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냉장·냉동식품에 대해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구 생명의 효시이자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며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미생물에는 별의 별 놈들이 많다. 기인열전을 보면 참 인간 가운데는 별의 별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미생물에 견주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물이 펄펄 끓는 온도에서도 자라는 놈이 있고 중금속 범벅인 곳에서도 자라는 놈이 있다. 방사능물질 속에서도 자라는 놈들도 있다. 그리고 엄청나게 차가운 곳을 좋아하는 놈들도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아이나 병원 환자가 숨졌다는 냉동식품 식중독 사건이 가끔 뉴스에 보도된다. 국제우주정거장과 미국 대통령의 별장에도 납품하면서 쌓아온 108년 전통의 블루벨사가 만들어 캔자스 주의 한 병원에서 입원 환자들에게 제공한 아이스크림을 먹은 환자 5명 가운데 3명이 리스테리아 균에 감염돼 숨졌다는 뉴스를 우리 언론도 외신을 인용해 최근 보도한 적이 있다.
영하의 온도와 섭씨 4도에서도 증식 가능한 리스테리아균
미국에서는 지난해에도 통사과에 캐러멜을 입힌 간식 ‘캐러멜 사과’를 먹고 35명이 리스테리아 균에 감염돼 7명이 숨졌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1,600명 정도가 리스테리아에 감염되며 식중독 사망 원인 가운데 3번째로 꼽힌다. 식중독하면 노로 바이러스와 황색포도상구균, 살모넬라, 보툴리누스, 비브리오 등이 익숙한 사람들은 뜻밖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리스테리아균은 대표적인 식중독균이다. 섭씨 30~37도에서 가장 잘 자라지만 영하의 온도와 섭씨 4도 정도의 냉장 온도에서도 증식이 가능한 냉온성 세균이다. 리스테리아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냉동식품 뿐 아니라 육류와 어패류, 유가공품, 채소 등에 있다가 사람을 노린다. 리스테리아균에 오염된 육류, 치즈, 생우유 등과 잘 씻지 않은 채소를 먹거나, 이 균에 오염된 생고기를 요리할 때 사용한 칼, 도마 등을 매개로 리스테리아균에 감염될 수 있다. 리스테리아 균이 살균하지 않은 생우유, 치즈, 고기 등에 많은 까닭은 이 균이 동물에게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리스테리아균에 감염되면 고열과 두통, 구토, 경련, 목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에는 임신 여성이 유산할 수도 있고 뇌수막염, 패혈증 등이 올 수도 있다. 건강한 일반 성인은 설혹 리스테리아가 몸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위나 장에서 염증을 유발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큰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한 환자나 영유아, 고령자, 임산부들은 감염되면 치사율이 매우 높아 주의해야 한다.
리스테리아균 속(屬, Genus)은 6종이 있다. 이 중 리스테리아 모노사이토제네스(Listeria monocytogenes)만이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킨다. 이 세균이 사람을 감염시킨다는 것은 90년 전에 알려졌다. 1924년 머레이(Murray)라는 학자가 자신이 키우던 토끼 새끼 6마리가 갑자기 모두 죽자 그 원인을 이 균으로 밝혀내고 1926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졌다. 하지만 이 균이 인간에게 치명적 식중독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1981년이 되어서야 알려졌다. 영국 노바스코샤 주 핼리팩스(Halifax)에서 41명이 집단적으로 감염돼 18명이 숨졌다. 희생자는 대부분 임산부와 신생아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처음으로 식품에서 발견됐다. 외국에서 잇따라 리스테리아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고 냉장·냉동 시스템이 발달로 냉동식품을 즐겨 먹는 인구가 크게 늘면서 이 식중독이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조사를 벌인 결과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과 같은 집단 리스테리아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도 꾸준히 리스테리아균이 식품에서 검출되고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 무더위에 리스테리아가 겁나서 아이스크림을 포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이상 맛있는 고기와 치즈를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이 남아 있다면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안내하는 다음 주의사항을 읽고 실천하라.
1. 모든 과일과 야채를 철저하게 씻어라. 멜론과 오이 등은 브러시 같은 것으로 빡빡 문질러라. 그리고 깨끗한 천이나 종이타월로 말려라.
2. 생고기, 가금류와 야채 그리고 조리 식품과 즉석 식품은 분리하라.
3. 날 것을 취급한 후에는 손, 칼, 조리대, 도마 등을 세척하라.
4. 냉장고에 들어 있던 핫도그, 생고기, 생가금류에서 나온 즙을 깨끗이 제거한다.
5, 냉장고 벽과 선반을 청소하고, 고기와 가금류를 철저하게 요리하며 저온 살균하지 않은 우유는 마시거나 요리하지 말라.
- 안종주 과학저술가
- 저작권자 2016.07.2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