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명소로 떠나는 여행 .7] 보현천변
‘수락리 주상절리’
옛길 보현천 물속으로 사라진 곳에…사각·오각·육각 돌기둥 숲 울창하다
무인기 드론으로 촬영한 수락리 주상절리. 사각·오각·육각형 모양의 돌기둥이 무성한 숲을 헤치고 길게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
수락리 주상절리는 수락2교에서 동쪽 산자락, 보현천변에 펼쳐져 있다. 수락리 주상절리는 일반적인 주상절리와는 달리, 화산 폭발시 고온의 화산재가 흘러내리면서 굳은 응회암으로 국내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지질이다. |
백두산 천지의 한가운데에 조각배를 띄우고 누우면 어떤 기분일까. 청송 현서면의 수락리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천지는 화산의 분출로 만들어진 함몰 칼데라다. 지금 서있는 이곳이 바로 그곳과 같다. 너무 크고 또 너무 오래되어서 한번에, 단숨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오래전인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칼데라, 그 안. 한때 뜨겁게 흔들렸고, 천천히 냉정과 고요로 돌아오는 동안 깊게 주름진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다. 조각배를 탄 듯 짜릿하다.
#1. 수락리 보현천변의 돌기둥들
맑은 보현천(普賢川)이 북쪽으로 흐른다. 좁은 길과 수수한 마을과 작은 밭들은 이 맑은 천과 얼마나 다붓한지. 갈천(葛川)마을을 지나 수락리(水洛里)에 들어서자 길은 서서히 하늘로 날아올라 허공을 가르며 뻗어 나간다. 천(川)과 옛길이 저 아래로 함께 멀어진다.
‘조선지지자료’에 보현천은 수락리 수락천(水洛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갈천에서 발원하여 안덕면에서 길안천과 합류해 낙동강으로 가는 여정에서 ‘시냇물이 폭포처럼 흐른다’는 수락리는 중요한 땅이었던 모양이다.
화산재가 굳어서 형성된 용결응회암
주상절리 중에서 드물게 생기는 형태
중생대 백악기 형성된 칼데라 중심에
풍화·침식 겪고 무성한 숲 사이 ‘우뚝’
길의 양쪽으로 500m에서 800m 고도의 높은 산들이 능선으로 이어진다. 산 중턱에는 이따금 세밀하게 주름진 바위가 무성한 숲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락2교에 다다르자 보현천은 까마득한 아래에 있었고 옛길은 물속으로 사라져갔다. 그 가장자리에는 사각, 오각, 육각형 등의 돌기둥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수락리 주상절리다. 몇 마리 두루미들은 주변을 서성이며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다각형의 기둥 암벽을 주상절리라 한다. 일반적으로 주상절리는 용암과 같은 뜨거운 화산암이 식을 때 수축에 의해 발달할 수 있다. 그러나 수락리 주상절리의 바위는 화산재가 굳어서 된 응회암이라 한다. 그중에서도 화산 폭발 시 고온의 화산재가 흘러내리면서 쌓인 회류 응회암이며, 매우 높은 온도의 화산재가 함께 들러붙고 변형되고 뭉쳐져서 만들어진 용결응회암이다. 이러한 응회암 주상절리는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라 한다.
#2. 화산재로 만들어진 주상절리
수락리 주상절리를 이루는 응회암은 화산 폭발에 의해 방출된 크고 작은 암편 중에서도 대부분 직경 4㎜ 이하인 화산회가 가장 풍부하다. 눈에 보일 정도의 크기를 가지는 결정은 적은 편이지만, 그중에서 사장석 반정(斑晶)이 제일 많고 석영 반정도 소량 포함되어 있다. 물에 뜰 만큼 가벼워 부석이라 불리는 유리질의 경석은 들러붙어 뭉쳐지는 동안 납작해져서 피아메라 불리는 팬케이크 모양의 담회색 엽리로 나타나는데, 너무 강하게 압착되어 쉽게 보이지는 않는다.
뜨거운 화산암이 냉각될 때는 표면이 먼저 식으면서 수축이 일어난다. 수축에 의해 틈이 생겨나는데, 수축의 중심점들이 고르게 분포하면 틈들이 서로 만나 육각형의 패턴으로 절리를 만든다. 수락리의 주상절리는 사각형, 오각형, 칠각형 등 다각형의 단면을 나타낸다. 이것은 암석 자체의 성분 차이, 혹은 점성의 차이 등과 같은 불균질성으로 인해 수축의 중심점이 흩어져 육각형 외에 다양한 형태가 함께 나타난 것이라 한다. 수락리의 이 응회암 주상절리는 이곳에 국지적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 화산재는 어디서 왔을까. 화구는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3. 이곳은 백악기 칼데라의 중심
수락리 주상절리에서 남동쪽으로 직선거리 6㎞ 정도에 면봉산(眠峯山)의 1천113m 봉우리가 솟아 있다. 청송의 현서면과 현동면, 포항의 북구 죽장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보현산(普賢山) 등과 함께 태백산맥을 이룬다. 면봉산은 청송의 33개 산 중에서 지질학적으로 독특한 산에 꼽히는데, 중생대 백악기의 폭발적인 화산작용으로 만들어진 칼데라의 잔류 화산체이기 때문이다.
지구 내부의 마그마가 지표를 뚫고 분출하는 출구를 화구라 하고, 그 주위에 화산분출물이 쌓여 화산체를 형성한다. 이후 큰 폭발이 일어나거나 산정부가 함몰되면서 칼데라가 만들어진다. 면봉산의 칼데라는 현동면의 남서부에서 현서면의 남동부에 걸쳐 타원형으로 나타나는데, 대규모 회류응회암의 분출로 형성된 것이라 한다. 이 응회암을 특별히 ‘면봉산응회암’이라 부른다.
면봉산응회암은 칼데라 내부에만 분포되어 있다. 수락리 주상절리는 바로 이 면봉산응회암의 중심부에 자리한다. 주변의 가파른 산들도 면봉산 칼데라에 존재하는 면봉산응회암에 해당되고, 보현천도 이 칼데라 속을 흐른다. 처음의 칼데라 지형은 오랜 세월의 풍화와 침식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화구 역시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락리 주상절리는 화산폭발과 이후의 고요를 촘촘한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
☞ 여행정보
영천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노귀재를 넘으면 청송 현서다. 직진하다 월정교차로에서 우회전해 908번 지방도(성덕댐로)를 따라 가면 사촌, 갈천 지나 수락리다. 수락2교에서 동쪽 산자락을 보면 보현천변에 아름다운 주상절리가 펼쳐져있다. 북쪽으로 2.5㎞ 정도 가면 성덕댐이 웅장한 자태로 자리한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참고= △한국지명유래집 △청송의 향기 △청송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황상구, 2015, 청송국가지질공원 추가지질명소 개발 및 인증조건 보완, 청송군
항일 의병장 임용상 고향…국내 最高 다목적댐 유명
주상절리가 있는 청송 현서면 수락리는 항일 의병장 중호 임용상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1877년 수락리에서 태어난 그는 성품이 온후하고 담력이 컸으며 매우 총명했다고 전한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가산을 써서 국난을 호소하는 격문을 배포했다. 이후 의병을 모아 동해창의군(東海倡義軍)을 조직해 영덕과 강구 등지에서 활동했다. 1907년에는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에 들어가 청송, 영천, 흥해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이후는 전투와 체포와 복역의 반복이었다. 1977년에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58년 82세에 귀천했다. 수락리 마을회관 맞은편에 단 높여 세운 그의 유허비가 남아있다. 치열한 한평생이었으나 나라의 독립을 보았으니, 저 비석도 그리 쓸쓸해 보이지는 않는다. 대구 앞산공원에도 선생의 동상이 있다.
수락리 주상절리에서 보현천을 따라 2.5㎞ 정도 가면 예쁘장한 호수가 펼쳐진다. 성덕호다. 보현산과 면봉산 자락의 계곡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을 모은 호수다. 잔잔한 호수를 내려다보며 성덕댐이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다. 댐 정상의 해발높이는 368.5m. 우리나라 다목적댐 중 가장 높은 곳이 위치한다. 예전에는 수락저수지가 있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를 대규모로 확장해 다목적댐으로 재개발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 과정에서 무계리와 수락리 일부가 물에 잠겼지만, 이제 성덕댐 호수는 가뭄과 홍수를 방지하고,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등 하는 일이 많아졌다. 댐 북쪽에는 성덕 공원이 들어서 있다. 캠핑장과 축구장 등이 꽃사과 나무와 꽃복숭아 숲과 어우러져 있다. 또한 수락리 주상절리 부근에서 성덕 호수에 이르는 4.7㎞의 성덕댐 둘레길도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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