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명소로 떠나는 여행 .19] 파천 구상화강암
청송호 남서쪽 끝자락 물밑엔 생물처럼 자라는 ‘거북돌’ 있다
드론으로 촬영한 청송호.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구상화강암이 관찰되는 호수로,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산이 고요한 풍경을 연출한다. |
파천 구상화강암은 청송호의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구상화강암은 갈수기 때는 물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평소에는 물 속에 잠겨있다. |
청송에서 관찰되는 구상화강암. 파천면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파천 구상화강암이라 부른다. 돌이 돌 속에 들어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는 돌이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서 돌이 자라난 독특한 지질이다. |
바위 속에 공이 박혀 있는 듯하다. 어느 선수가 투구 연습을 했나? 공은 원형 그대로거나 타원형이거나 또는 불규칙한 모양이어서 온갖 변화구의 연습장 같다. 용의 여의주 같기도 하다. 혹은 고대 생물의 알인가? 그예 바짝 들여다보면 동공이 열린 눈동자 같기도 하다. 공은 돌이다. 돌이 돌 속에 있다. 이것은 박힌 것이 아니라 자라난 것이라 한다. 돌이 돌 속에서 돌과 함께 자라났다는 기묘한 이야기가 청송 파천면에 전해진다.
수몰된 파천 신흥리의 구상화강암
1.2㎥ 바위에 화강암이 공이처럼 돋아
석영·장석·흑운모·각섬석 등으로 구성
핵 중심으로 광물결정이 붙어 반복성장
양파 속 같은 특이한 암석 구조 나타내
전세계 통틀어 100여군데 정도만 발견
#1. 물에 잠긴 마을, 물가에 드러난 귀한 돌
파천면은 청송읍의 서쪽, 해발 300m 이상의 산들로 채워진 땅이다. 면의 한가운데를 용전천이 관통한다. 오래전 천의 이름은 파천(巴川) 혹은 파질천(巴叱川)이었다. 물줄기가 뱀처럼 굽어 흐른다는 의미다. 땅의 이름은 물의 이름에서 왔다. 천의 이름이 뱀에서 용으로 거창해진 것 외에 큰 변화는 없다. 여전히 발 디디는 곳은 골짜기고, 눈 닿는 곳은 고개다.
파천면의 남쪽에 신흥리 마을이 있다. 안덕면의 노래산 줄기가 슬그머니 손을 뻗고, 파천면의 서쪽에 솟은 사일산 자락이 응답하듯 손 내밀어 형성된 골짜기다. 새로운 마을이라 신흥리라 했지만 마을이 생긴 것은 50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마을은 없다. 대신 커다란 호수 청송호가 들어차 있다. 2007년 청송양수발전소가 준공되면서 두 개의 호수가 형성되었는데, 하나는 노래산 정상부에 있는 상부댐 노래호, 하부댐이 바로 청송호다.
청송호의 남서쪽 뾰족한 끝자락에 아주 진귀한 바위가 있다. 바위 속에 공이 들어박힌 것 같은 모습의 돌. 얼핏 보면 몸에 멋대로 자라난 혹처럼 보이기도 한다. 커다란 바위에 공이 혹은 혹이 마구 돋아 있다. 이것이 화강암이라 한다. 흔하고 익숙하게 알고 있는 화강암의 모습이 아니다. 정말이냐고 믿을 수 없다고 해도, 분명 화강암이라 한다. 이 같은 공모양의 조직이 돌연변이처럼 형성되어 있는 화강암을 구상(球狀)화강암이라 한다.
구상화강암은 굳어질 때 구체의 중심부에 어떤 핵을 중심으로 종류가 다른 광물이 침전되어 동심원상 구조가 여러 개 형성된 화강암을 말한다. 광물들은 핵에서 외부를 향해 층상으로 배열되어 구나 타원체를 이루고, 광물마다 성격이 달라 어두운 층과 밝은 층이 교호되어 나타난다. 구상화강암은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100여 군데 정도 알려져 있고, 그 산출이 드물고 희귀해 오래전부터 지질학적으로 귀하게 여겨져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암석의 조성이 약간씩 다른 구상화강암이 여럿 발견되었다. 옛날 조선시대에 이 같은 돌을 본 사람들은 거북 등 같다고 해서 ‘거북돌’이라 불렀다 한다. 청송의 구상화강암은 2015년을 전후해 세상에 알려졌다.
#2. 양파처럼 자라난 돌
청송 땅의 가장 아래에는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이 깔려 있다. 이후 트라이아스기에 들어 지구 내부의 화강암질 마그마가 변성암층을 관입했다. 약 2억3천만 년 전에서 1억8천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 결과로 청송 화강암이 만들어졌다. 청송 화강암은 청송 중부를 중심으로 북서 방향으로 연장되어 나타나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소규모다. 청송호 남서부의 구상화강암은 그러한 청송 화강암의 또 다른 얼굴이다. 파천면에서 발견되었다고 해서 파천 구상화강암이라 부른다.
파천 구상화강암은 중립 내지 조립질의 흑운모 화강암으로 석영, 장석류, 사장석, 흑운모, 각섬석과 그 외 불투명광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드러나 있는 바위의 크기는 1.2㎥다. 그리고 암반에서 떨어져 나간 1㎥ 크기의 전석이 주변에 동그라져 있다. 바위에 형성되어 있는 공의 구경은 작은 것이 3㎝, 큰 것은 14㎝로 다양하다. 그들은 무색과 유색 광물의 함량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을 나타내는데, 대체로 중심부는 석영과 사장석이 우세한 백색 내지 유백색을 띠고, 외부로 갈수록 유색광물의 함량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꽃이 한 알의 씨앗에서 출발하듯, 이들 구상체도 마찬가지다. 먼저 성장된 결정이나 기존 암편이 씨앗, 즉 중심핵이 된다. 이를 중심으로 석영이나 장석과 같은 무색광물들이 성장했다. 그리고 그 둘레에 다시 흑운모와 같은 유색광물이 성장해 띠나 껍데기처럼 둘러쌌다. 이후 다시 무색광물이 같은 방식으로 성장해 구상체를 이루었다. 이러한 반복적인 성장과정은 양파 속과 같은 구조를 나타낸다.
#3. 중생대 초 마그마 전쟁
완전히 구에 가까운 모양도 있고 타원형도 있다. 구상체가 원형에 가까운 공 모양인 것은 핵을 중심으로 결정의 성장 속도가 모든 방향으로 같았기 때문이다. 마그마가 식는 과정에서 성장 속도가 모든 방향으로 동일하려면 핵이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마그마 내부를 이리저리 떠돌아 다녀야 한다. 파천 구상화강암에서 구상체는 원형과 타원형이 모두 나타난다. 하나하나가 눈동자처럼 선명한 것도 있고, 여러 개가 덩어리로 뭉쳐져 나타나는 것도 있다.
중생대 초, 고생대의 땅을 뚫고 나온 마그마는 내적인 전쟁상태였던 것 같다. 여러 핵은 각자의 방식대로 세력을 넓혀나간 듯하다. 정주하여 자라난 것, 유동하며 커진 것, 여러 핵이 연합한 것 등 다양한 모습이다. 마치 인간 시대 이전의 세력 집단인 마그마의 전쟁사 같다. 지질시대의 기록물이니 어찌 귀하지 않을까.
구상화강암에 대한 연구가 미비했던 옛날에는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이 희귀하고 기묘한 돌을 탐낸 일본인들이 트럭으로 실어갔다 하고, 광복 후에는 고위 관리들이 한두 개 가져갔다고도 한다. 지질학자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워한다. 이 귀한 것, 누가 훔쳐 갈까 하고. 파천 구상화강암은 근래에 알려졌고 청송호가 비교적 든든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도 쉬쉬, 우리만 알자.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드론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전임길 객원기자 core8526@naver.com
▨ 참고= △청송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국가지질공원 홈페이지 △한국지형산책 △청송의 향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행정보
청송 읍내에서 영양 안동방향 31번 국도와 연결된 월막교를 건너면 곧바로 청송교차로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청송 양수발전소 표지판을 따라 10㎞ 정도 가면 청송호다. 중간에 덕천민속마을과 송소고택도 지난다. 파천 구상화강암은 청송호의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상부댐의 전망대 입장 시에는 간단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망대·고갯길·신라고분·망향의 공원…
볼거리 풍성한 청송양수발전소
양수발전은 수력발전의 일종이다. 비교적 전력 수요가 적은 심야전력을 이용해 하부저수지의 물을 상부저수지로 끌어올려 저장했다가, 전력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상부저수지의 물을 하부저수지로 낙하시켜 위치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발전 방식이다. 즉 노래산의 상부저수지 노래호에서 하부저수지인 청송호로 물을 떨어뜨려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노래호가 펼쳐져 있는 상부댐에는 청송지역을 시원히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매년 해맞이 행사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청송호가 있는 하부댐에는 지하발전소와 산책로, 홍보관과 망향의 공원, 잔디구장 및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청송호에는 청송군 파천면 신흥2리 15가구 주민의 삶터가 잠겨 있다. 양수발전소 홍보관 뒤쪽에는 고향 잃은 그들을 위한 망향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입구 탑에는 수몰 전 마을 전경 사진과 31가구 이주민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흥리의 신라시대 석곽고분 1기도 이전 복원해 두었다. 상부댐과 하부댐을 잇는 굽이굽이 고갯길이 가을날 그리 좋다고 소문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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