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 서거 30주년, 역사적 再評價 메모
1. 박정희는 민주주의 건설자이다. 북한노동당 정권과 남한의 守舊세력을 상대로 국가를 근대화하고 민주주의를 키우고 자본주의 체제를 싸워서 지켜낸 진정한 민주투사이다.
2. 박정희는 애국자이고 열린 국가주의자였다. 민주주의를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본 이다.
국가와 民主의 가치가 충돌하면 國益을 선택한다. 이게 右派정신이다.
-김대중은 國益과 私益이 충돌할 때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國益을 희생시켰다. 가짜
민주주의자이다. 일본인 납치범(신광수)을 일본이 아니라 북한으로 보낸 가짜 인권운동가 였다.
-박정희는 國權이 있어야 人權이 유지된다고 봤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인권 신장이라고 생각하였다.
-박정희는 군사문화를 건설과 개방, 근대화로 연결시켜 승화시킨 尙武정신의 수호자였다.
3. 박정희는 진정한 여성해방운동가였다. 여성을 농촌에서 도시로, 집안에서 일터로, 그리고 새마을 지도자로 만들었다. 한국의 고달픈 여성들에게 부엌 개량으로 건강을, 연료 개량으로 가스 중독으로부터의 해방을 선물한 사람이다.
4. 박정희는 최고의 知性人이고 교양인이었다. 知行合一을 이룬 사람이다.
5. 박정희는 고독하였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박정희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여 비난만 하였다.
그는 지식인을 설득하지 못하였다. 유신체제에 참여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썼다. 함병춘 같은 소수 先覺者들의 참여가 있었을 뿐이다. 어용지식인과 반발지식인만 발호할 뿐, 생산적, 건설적 지식인의 참여가 적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는 권력을 잡았으나 고향에서 핍박 받은 先知者이다.
6. 박정희를 死後에 살려 낸 것은 생활인이었다. 학자들이 뒤늦게, 좌익들은 요사이 무슨 대단한 발견이나 한 것처럼, 그의 위대성에 놀란다.
7. 박정희는 大戰略家였다. 自助정신-自立경제-自主국방 건설의 3自 전략을 기초로 하여 先경제건설-後민주 및 後통일 정책을 폈다.
8. 그는 역사와 전통의 힘을 믿는 溫故知新의 보수적 개혁파였다.
9. 관중-등소평-이광요와 맥을 같이 하는 동양적 실용주의자였다.
10. 그는 자주적 관점을 안보뿐 아니라 경제개발계획과 민족문화 진흥 등 每事에 투영하는 진정한 주체사상 실천가였다. 김일성은 가짜 주체사상가이고 실상은 사대주의자이다.
11. 그는 정신력과 말의 힘을 믿는 이였다.
12. 그는 말년에 부인을 잃고, 측근 관리에 실패하였다.
13. 그는 전임자와 후임자를 잘 둔 이다. 자신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세력화엔 실패하였다.
14. 그는 민족사의 10大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김춘추, 김유신, 문무왕, 이승만, 박정희, 왕건,이성계, 이순신, 세종대왕 등. 20세기 세계 10대 지도자의 班列에 들 사람이다.
15. 그는 회고록을 경멸하였다. 대한민국이 자신의 기록이고 회고록이라고 보았다.
16. 그는 이승만과 함께 생산과 건설, 그리고 진정한 진보세력의 챔피언이었다. 김대중, 노무현은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깽판, 건달, 위선, 반역, 守舊세력으로 한 묶음이 될지 모른다.
17. 朴正熙를 읽고 전하는 것은 開發年代의 傳說과 神話를 가꾸는 일이다. 다행히 많은 분들(오원철, 김정렴, 고병우, 서영택, 남덕우)이 회고록을 썼다. 박정희 관련 책들을 학교, 도서관 등에 보내서 미래 세대가 읽게 해야 한다. 박정희의 傳說 속에 溫故知新 할 유산들이 많다.
18. 박정희가 남긴 遺産-열린 자주, 전통의 발전적 수용, 실용정신, 군사문화의 생산적 이용,국가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 시스템 관리-등을 건설적으로, 비판적으로 계승하면 자유 통일과 一流국가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