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 대표 명당으로 알려진 ‘십승지 마을’이 한데 모여 ‘한국 천하명당의 열 군데 곳간 십승지’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매일신문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다.(본지 2014년 12월 23일 자 12면 보도) ‘십승지’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예언서 ‘정감록’에 기록된 ‘전쟁이 일어나도 굶주림과 재앙 없이 안전하게 피란할 수 있는 10곳’을 말한다. 경북 지역에는 4곳의 마을이 십승지로 언급돼 있는데, 영주시 풍기읍, 예천군 금당실마을,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 상주시 우복동 마을이 그곳들이다. 이 중 기자는 경북 북부지역의 세 곳인 예천, 영주, 봉화의 십승지 마을을 찾아봤다. 지도 상에는 세 마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는데, 역시 길지는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각 마을과 마을 사이는 자동차로 최소 30분 이상을 달려야 할 정도로 태백산과 소백산 자락 사이 깊이깊이 숨어 있었다. 이토록 가기 힘든 그 마을들은 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정감록은 그곳을 살기 좋다고 했는지 궁금했다.
◆예천 금당실마을 #꽃잎에 둘러싸인 듯한 지세…구제역도 피해간 명당 #조선 말 명성황후 행궁 터 전설 예천 금당실마을은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이상을 달려 예천IC에 도착해 거기서 또 30분 이상 꼬불꼬불한 지방도를 타고 들어가야 나오는 마을이다. 자동차로 왔다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금당실송림’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마을을 둘러보는 것이 좀 더 편하다. 금당실송림은 예전부터 금당실마을 사람들이 풍수적으로 약한 지세의 기를 북돋우고, 겨울철 찬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숲이다. 금당실송림 입구 주차장 뒤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봉우리까지 약 10~15분을 걸어 올라가면 ‘오미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그곳에서 마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을 앞뒤로 둘러쳐진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은 집들이 마치 꽃잎 사이에 싸인 암술과 수술 무리 같다. 이런 마을 풍경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이곳이 명당임을 증명하는 사례가 최근에 하나 있었는데, 2010년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구제역 사태 때 이곳의 가축은 구제역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오미정에서 내려와 마을을 둘러보면서 발견한 특징은 ‘돌담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돌담이 많은 이유는 이 마을의 고택이 잘 보존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때 명성황후의 행궁 터로 쓰려고 했다는 전설 때문이다. 실제로 명성황후의 측근이라 불리던 당시 법부대신 이유인 대감이 이곳에 99칸짜리 기와집을 지으면서 그 전설이 나왔는데, 이유인 대감 사후 기와집은 폐허가 돼 지금은 돌담 일부만 남았다.
◆영주 풍기읍 금계리 #소백산 자락 풍기 인삼 원조 #정감록 천하명당 꼽혀 영주시 풍기읍 일대는 십승지 중 첫 번째로 언급되는 곳이다. 풍기읍 일대는 소백산이 감싸 안은 명당 중의 명당이지만, 정감록을 해석하는 사람들은 금계1리와 백1리 희여골 일대를 십승지의 중심 마을로 보고 있다. 이곳은 은근히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소백산 등산을 위해 삼가 매표소로 향하는 길목에 있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시골마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경북항공고등학교에서 금계중학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을 입구가 나온다. 인삼을 쪼는 닭 두 마리 그림과 한자로 ‘鄭鑑錄第一勝地 豊基人蔘始培地’(정감록제일승지 풍기인삼시배지)라고 적힌 큰 비석이 이 마을이 십승지임을 알려준다. 이 마을을 한 번에 둘러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마을 입구에서 안내하고 있는 ‘풍기인삼개삼터길’을 따라가면 된다. 이 마을은 1542년 당시 풍기군수이자 소수서원 설립자인 주세붕 선생이 이곳에 인삼을 심도록 장려해, 풍기 인삼을 처음으로 생산한 곳이다. 군데군데 보이는 인삼밭과 사과 과수원을 구경하면서 마을을 빙 둘러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풍기읍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 나타난다. 소백산 자락 아래 모여 있는 민가의 모습이 그렇게 평온해 보일 수 없다.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는 개삼터 전망대까지 둘러보는 데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봉화 춘양 도심리 #첩첩 산줄기 인심은 푸근 #부근에 조선왕조실록 사고 터 영주 시내에서 운곡천 물줄기를 따라 1시간을 달리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산골마을 한 곳이 나온다. 바로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와 도심리다. 태백산과 청량산이 숨기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이 정감록에서 지목한 명당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한 마을주민은 “남들이 보기에 살기 좋다고 하니 좋은 줄은 아는데, 그렇게까지 명당인 줄은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위쪽으로 올라가 마을을 살펴봤다. 겹겹이 싸인 태백산 산줄기 아래 드문드문 집들이 박혀 있었다. 왠지 저 산 아래 집들 중에 도를 닦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다른 십승지 마을과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집에 대문이 없거나 있어도 활짝 열려 있다는 점이다. 이 마을은 특별히 구경할 만한 장소가 있거나 걸을 만한 길이 있지는 않다. 마을 근처에 ‘각화사’라는 작은 절이 있고, 그 뒤쪽으로 넘어가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태백산사고 터가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을에서 추실령 방면으로 가는 길에는 현재 백두대간 수목원이 조성 중이다. 수목원 조성이 완료되면 수목원 탐방과 함께 조용히 마을을 둘러보며 마음을 정화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Tip=십승지마을 탐방 시 주의할 점=세 마을 모두 주민들이 생업에 종사하는 삶의 터전이다. 통영 동피랑처럼 주거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 탓에 생활이 방해받는 지경에 이르는 일부 관광지들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떻게 마을 탐방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마을 근처 관광지를 둘러보다 여유가 된다면 들르되, 주민들의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