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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영토

대한인 2016. 10. 6. 09:13



발해의 영토




1) 발해사의 전개와 영토확장과정

흔히 한국사에 있어서 최대의 영토를 소유하였던 나라는 발해로 인정된다. 그렇다면 발해의 영토확장과정과 실제 크기를 상정해볼 필요가 있겠다. 발해의 역사전개와 영토확장과정을 살펴보면, 건국 및 발전기는 영토 확장기, 내분기는 영토 위축기, 융성기는 영토 재확장기, 멸망기는 영토 상길로 상정할 수 있다고 한다.

건국 및 발전기는 영토가 가장 급격하게 확장된 시기였다. 구체적인 기록은 없지만 돌궐이 이 당나라 세력을 중간에서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정복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왕 이후 무왕은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고, 이 무렵에 발해 영토의 기본 틀이 만들어졌다. 그는 재위기간 내내 부단히 정복활동을 벌였고, 특히 고구려와 부여의 땅을 상당수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말갈 지역으로도 진출하고 있었는데, 726년의 흑수말갈 공격 사건은 발해가 말갈과 접경하면서 치열한 공방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상경 일대도 이미 발해 영토로 편입되어 있었다. 한편 735년 당나라가 신라에 보낸 칙서를 보면, 이미 이 시기 전에 발해가 한반도 서북쪽인 대동강과 원산면 방면으로도 진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무왕은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하였고, 문왕의 사후 즉위한 문왕도 전반기에 연해주 일대를 편입시킴으로써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복사업을 일단락하였다.

이러한 발해의 영토확장은 8세기 말엽의 내분기로 접어들면서 다소 쇠락하였다. 강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를 보면 “영토가 처음과 같이 되었다”고 함으로써 일부 영토를 상실하였음을 짐작케 해준다. 이것은 9세기에 들어서면 문왕 시대까지 복속하였던 말갈의 일부가 다시 당나라에 복속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후 발해는 10대 선왕 때에 이르러 재차 영토를 확장하였는데, 이전의 내분기에 잠시 이탈하였던 말갈 일부를 완전히 제압함으로써 실지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요동의 남쪽 지역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으로 다시 진출하여 다시 최대 판도의 영토를 이룰 수 있었다. 발해의 영토 확장은 이 시기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되었고 할 수 있다.

이후 멸망기에 이르기까지 영토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1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거란에게 요동의 남쪽을 빼앗기게 되고, 또 발해에 복속하던 여러 국가들이 집단 이탈하면서 차츰 영토를 상실해갔던 것이다.

2) 발해 영토의 넓이에 대한 실질적 이해

이상의 역사적 전개에 따른 영토확장과 기록에 의거하여 발해의 실제 영토가 어느 정도였는지 살펴보자. 우선 『구당성』와 『유취국사』라는 책에는 발해 영역이 사방 2천리에 이른다고 하였고, 『신당서』에는 사방 5천리에 이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방 2천리라고 한다면 고구려의 최대 판도보다 작고, 신라의 최대 판도보다 약간 크게 된다. 그러나 발해 판도는 고구려보다 넓었던 것으로 이해되며, 따라서 발해의 최대 판도는 사방 5천리가 신빙성이 있다. 결국 이렇게 볼 때, 발해는 신라보다 8.3배, 고구려보다 4배 정도 넓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기록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면적을 구체적으로 산출해보자. 발해의 영토는 한반도에 있어서는, 현재의 함경도와 평안도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 연해주 일대는 거의 전부, 혹은 러시아 학자들의 견해를 고려해도 최소한 3분의 1을 차지하였다. 한편 중국 쪽으로는 요녕, 길림, 흑룡강성에 걸쳐 있었다. 요녕은 대략 2분의 1에서 3분의 1, 길림성은 5분의 4, 흑룡강성은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을 토대로 발해 전체 영역을 계산해보면, 최소 496,000 제곱km에서 최대 632,900 제곱km가 된다. 한반도 전체 면적이 221,487 제곱km이므로 발해 영역은 한반도의 2.2배에서 2.8배가 된다. 여기서 발해 영역에 속하는 면적을 뺀 것이 통일신라의 면적이므로, 이렇게 계산해보면 발해는 통일신라의 3.8배에서 4. 9배에 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문헌에 나오는 8배를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면, 실제로는 4배에서 5배 정도가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처럼 문헌기록이 실제보다 약 2배 정도 과장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렇다면 고구려의 경우도 이에 근거하여 상정할 수 있다. 즉 발해는 고구려의 4배가 아니라, 실제로는 2배 정도로 큰 영토를 지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전성기 영토에 대한 연구자들의 견해는 제각기이지만, 대체로 그 면적을 산출해보면 약 35만 제곱km가 된다. 이것을 발해 영토와 비교하면 발해는 고구려 영토의 약 1.5에서 2배 가량 넓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