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귀순 이유는 '북한 정권에 대한 염증'…
"이런 국가를 어떻게 대외에 홍보하란 말인가?" 마중가(중국 전문가) 귀순한 북한 주영(駐英) 공사 태영호(太永浩)는 자신의 귀순 이유를 1) 북한정권에 대한 염증(厭症), 아무나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명제(命題)가 아니다. 이를테면 절대 다수의 탈북민(脫北民)들은 이런 말을 할 줄 모른다. 왜냐면 한평생 북한에서 살던 사람은 아예 ‘자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겉으로는 북한 체제의 홍보대사였고 형상대언인 (形象代言人)(image spokesman) 이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끊임 없이 남한의 사회제도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고 종국에는 남한을 동경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양봉음위(陽奉陰違:앞에선 순종, 속으론 딴마음)의 삶을 살아야 했고 매일 매일 위심적(違心的: 겉과 속이 다른)인 말만 하고 살아야 했다. ' 양봉음위(陽奉陰違)'는 김정은이 자기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가장 중요한 죄명(罪名)이다. 그렇다면 태영호(太永浩)가 남한의 무엇을 어떻게 동경(憧憬)'했을까? 다수결(一人一票, 直選制, 多數決)의 원칙하에 선출한다. 그러므로 남한의 대통령은 합헌성(constitutionality)이 있고 정통성(the legitimacy)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어떤가? 김일성의 남근(男根)이 김정일을 선거했고 김정일의 생식기(生殖器)가 김정은을 '추대'했다. 썩어빠진 봉건 세습정권을 만들어 놓고 한다는 소리가 '백두혈통(白頭血統)'이란다. '혈통론(血統論)'은 가장 우매(愚昧)하고 가장 전(前)근대적인인종론 (人種論)인데태영호(太永浩)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혈통론(血統論)을 홍보(弘報)해야 했으니 오죽 고통스러웠을까? 백두산을 오른 적도 없고 만주의 길림 흑룡강 일대에서 마적들 따라 다니다가 1940년 소련 하바롭스크 근교의 브야츠크(김정일 탄생지)로 건너가 장장 5년 동안 허송세월 하다가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건너온 녀석인데 백두혈통(白頭血統)?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은 기독교도인데 그럼 김일성은 '예수혈통'인가?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는 제주(濟州) 출신 재일교포인데 '한라혈통(漢拏血統)' 아니면 '후지혈통(富士血統)'이 아닌가? 그렇다면 김정은은 잡종견(雜種犬)이 아닌가? 유학생들을 보았을 터이고 또 수 많은 한국 관광객들도 보았을 것이다. 더욱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자유자재로 영국을 여행하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그들과의 접촉을 통해 그는 보통 한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각종 자유에 대해 인지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다른 곳을 다녀 오려면 여행증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전기가 없어서 함경도에서 평양 가는데 기차로 일주일이나 걸린다. 이것이 무슨 국가인가? 이런 국가를 어떻게 대외에 홍보하란 말인가? 현지에서 지켜보았다. 대한민국이 총 204개 참가국 중에서 종합순위 제 5위 한 것을 감명 깊게 보았을 것이고 한일 축구에서 한국이 2:0으로 보기 좋게 일본을 이기는 것도 보았을 것이다. 열심히 경기하고 자유 자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며 북한 선수들의 경직되고 움츠러든 '촌닭'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태영호(太永浩)는 어떻게 이런 북한을 위해 홍보할 수 있을까? 북한은 종합순위 20위를 했으니 그래도 North Korea is Best Korea (아들 금혁이의 게임 아이디)라고 홍보하겠는가? 한 순간도 놓지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의 영국에서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더욱이 호스 가드(Horse Guards) 광장에서 공식 환영식을 마친 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그 남편 에든버러 공작과 함께 백마 6마리가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검궁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평양에 있는 그 ' 불세출(不世出)'의, '천세출(千歲出)'의 '강철의 백두 영장(英將)'이 생각났을 것이다. 꿀꿀 돼지처럼 비대(肥大)한 30대 김정은이 돼지 우리에서 촌보난행(寸步難行)하는 그 모습이 생각나서 무척 역겨웠을 것이다. 가장 위대한 제도라고 홍보하는 사람인데 자신들은 너무 궁핍하여 런던의 탈북자들이 보내주는 쌀포대와 라면상자를 받아 먹어야 했고 탈북자들이 북한 대사관을 한 '구걸관'으로 야유(揶揄)해도 눈 질끈 감고 감내해야 하는 처지였다. 것이 아니라외화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인형 장사, 콩나물 장사, 중고품 장사,밀수 담배, 밀수 양주 장사를 하고 심지어 마약 장사, 코뿔소뿔 장사를 하고 있으니 태영호(太永浩)는 북한 사회 제도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홍보하란 말인가? 삼성 현대 엘지의 거대 광고 간판들을 볼 수 있다. 온 세상 사람이 한국차를 타고 전 제계가 한국 핸드폰을 쓴다. 그런데 북한의 노무 파견과 해외 식당운영의 수입은 조족지혈(鳥足之血)에불과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북한 경제는 으레 남한보다 발전되었어야 할 텐데 지금 북한의 경제체는 남한의 20분의 1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천문학 숫자의 자금을 살인 무기인탕진하고 있으니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규탄을 받고 있지 않는가? 홍보하여야 했으니 태영호(太永浩)는 양봉음위(陽奉陰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위심적(違心的)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憧憬'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감정이 아니다. 이 감정은 金正恩 세습 부패 정권에대한 혐오감이 날이 갈수록 누적되고 남한의 발전상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짐에 따라 자연이 이루어진 감정이다. 아련한그리움이기도 하다. 남한으로 귀순한 태영호(太永浩) 공사는 이제 여생(餘生)을 김부자(金父子) 세습 정권을 무너뜨리고 2500만 북한 동포를 살인마의 소굴에서 하루빨리 해방하는 성스런 싸움에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