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들지 않는 라면상자
다음은 어떤 분의 겪은 어려웠던 시절의
따뜻한 손길을 회상한 글을 간추린 것입니다.
나는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으러 헤매다가
작고 허름한 인쇄소 앞에 멈추어 섰다.
˝저 일자리 없을까요?
무슨 일 이라도 좋아요. 아저씨, 일하게 해주세요˝
하며 울먹이며 말을 꺼내었다.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구나.
울지 말고 들어와 보렴.˝
벽에 기름때가 시커멓게 묻고 잘린
종이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인쇄소로 들어갔다.
아저씨는 작은 곤로에 라면을 끄려
내게 먹어라 내밀었다.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 치우자
아저씨는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너, 어디 잘 데는 있니?˝
˝아니요, 놀이터에서도 자고...˝
˝음, 그러면 우리 인쇄소에서 일 해라.
학자금이 모아지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도록 해주마.˝
그 아저씨 덕분에 그 날부터 나는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라면으로 매끼를 때우고
찬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폴을 깔고
자야 했지만 공부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참고 견디었다.
받은 월급은 라면 한 상자를
사는 것 외엔 모두 저금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기 위해 라면 상자에
손을 넣어 두 개의 라면을 확인하고
한 개를 꺼내 먹었다.
다음날 아침 라면 상자에 손을 넣었다.
이상하게도 라면은 여전히 두개이었다.
˝분명히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손에 닿지 않게 숨어 있었나?˝
그러나 다음 번에도 라면은
줄지 않고 두 개 그대로 이었다.
따져보니 스무 개 밖에 안 되는
상자에서 삼십일이 넘게 라면을
꺼내 먹었던 것이다.
다음 날 나는 종일 라면 상자가
있는 쪽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일을 했다.
대강은 짐작되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저녁시간에 김씨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동식아, 요 앞 가게에 좀 갔다올래?˝
나는 밖으로 나갔지만 가게에 가지 않고
유리창 너머로 라면상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슬금슬금 주위를 살피시던 아저씨가
라면 상자 쪽으로 걸어가서는
한 개의 라면을 상자에
집어넣은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흥얼거리며 걸어나오셨다.
그 당시 김씨 아저씨는 어린 남매
넷과 병든 아내와 함께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셨다.
그 날 나는 아저씨의 심부름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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