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봉에서 바라본 백운재, 고위산 정상, 태봉, 이무기 능선, 열반재, 황발봉의 수려한 봄 경치. 장익헌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 당나라 악붕귀의 말이 적중한 천룡사 터와 삼층석탑. 장익헌 | 꽃샘추위에 아랑곳없이, 겨우내 언 땅 헤치고 물오른 버들개지 움실움실 눈을 뜬다. 경주 남산으로 향한다. 용장3리(틈수골)에서 와룡사 가는 길, 봄 아지랑이가 시나브로 피어난다. 다시 가파른 길 오르면 해발 300m 고지 약 20만㎡(6만여 평)의 경사진 분지에 천룡사지가 있다. 671년 당나라 사신 악붕귀가 와서 천룡사를 둘러보고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한 후, 신라 말 절이 망하자 신라가 망했다. 고려도 조선도, 다시 세운 절이 망하자 나라가 망했다. 그래서 유명한 절이지만 절집은 없고, 석조 유구와 새로 복원한 천룡사 3층 석탑이 있다. 한때 30년에 해당하는 만일법회가 열린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살구나무 그늘에서 게으른 바람이 쉬어가는 빈 절터만 남아 있다. 두 발을 포근히 적셔주는 산길을 따라 열반재로 간다. 관음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천룡사지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열반재. 태어남도 죽음도, 만남도 헤어짐도 다 피할 수 없는 것, 내 감정에 나타나는 이것을 깨달으면 끝없는 기쁨을 얻는 것을. 마음에 타고 있는 불이 남산바람으로 꺼지는 것 같아 후련하다.가파른 길을 쉬엄쉬엄 올라 고위봉 정상에 닿는다. 경주 남쪽에 있는 고위봉(494m)과 북쪽에 있는 금오봉(468m), 이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를 합쳐 경주 남산이라 부른다. 정상은 사방이 조망되는 뷰포인트(viewpoint)다. 이렇게 화려하고 장엄한 경치를 볼 수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여기서 30분 걸려 칠불암으로 간다. 아름답고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편안한 명당 터에 사방불과 삼존대불을 합친 칠불이 있다. 국보 312호다. 여기에 이렇게 섬세하고 거룩한 부처님을 새겨놓은 신라인들의 열정과 신앙에 그저 감격할 뿐이다. 부처는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이지만 깨달은 사람이다. 사랑을 바라는 마음, 의존하는 마음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마르다. 자기의 갈애와 의존심은 만족을 모른다. 그러므로 착각이 일어난다. 자기 밖에서 구하는 것은 모두 착각이고, 분노가 된다. 분노는 착각이 되고, 착각은 분노가 된다. 윤회다. 어리석음이다. 깨달음은 자신을 보는 것이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이고, 항상 자신의 마음을 보면서 자신을 정화하여 착각을 없애는 것이다. 칠불을 통해 나를 바르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칠불암을 뒤로한다. 칠불암 바로 위에 있는 신선암 마애불도 둘러본다. 칠불암에서 금오산까지는 3㎞, 10여 분 걸으면 길목인 봉화대 능선이다. 봄의 얼굴을 본다. 봄의 구들을 데우는 암릉과 꿀꿀거리며 움트는 나무들의 기지개를 본다. 이영재부터 임도로 가면 삼화령이다. 조금 가면 용장사지 갈림길이 나오지만,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서 금오신화를 지었다는 용장사지 탐방은 후일로 미룬다. 드디어 금오산 정상에 선다. 금오산 정상에서 조망하는 남산과 경주는 천년의 숨결로 요동친다. 조금 더 나아가 상사바위를 돌아간다. 우편함이 있다. 남산사진엽서에 사연을 적으면 남산의 추억을 무료로 배달해 준다. 오늘 감동적인 트레킹을 어떻게 적으면 좋겠는가. 상선암 삼불사 갈림길이 나오고 상선암으로 방향을 잡는다. 상선암에서 내려가는 길, 불상이 여러 곳에 있다.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 선각육존불, 마애관음보살상 등 말 그대로 노천 박물관이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쳐 도를 이루는 순간, 부처님의 성도를 두려워한 마왕 파순이 선정에 든 싯다르타에게 돌을 던졌다. 이 돌은 날아가며 모두 꽃송이로 변해 태자의 주변은 꽃송이로 덮였다. 하나의 촛불을 켜면 어둠이 모두 사라지듯이, 한 사람의 성자가 나타나면 악도 또한 사라진다. 남산은 큰 꽃이고, 큰 촛불이었다. 붉은 소나무, 아름다운 암릉군, 천룡사지, 칠불암, 삼화령, 상사바위, 상선암 그리고 하나하나가 모두 꽃이고 촛불이었던 탑과 석불, 남산 전체는 하나의 큰 꽃이고 큰 촛불이었다. 영원히 지지 않고 꺼지지 않는. 삼릉에 들어서면 싱그러운 솔 향기에 정신이 아득하다. 그 멋진 소나무 숲이 몽환적이다. 삼릉은 신라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능이 모여 있어 삼릉이라 부르고, 그 옆에 제55대 비운의 경애왕릉이 있다. 노천 박물관 남산을 보지 않고 경주를 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용장3리(틈수골)에서 삼릉까지 이렇게 잘 맞는 트레킹 길이 있을까. 마치 내 운동화처럼 내 발에 잘 맞는 길이. 김찬일(대구문학인트레킹회 회장) kc12taegu@hanmail.net ※Tip
*찾아가는길: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3리 또는 용장1리(차도 가에 이정표 있음) *코스: 용장3리(틈수골)-천룡사지-열반재-고위봉-칠불암-이영재-삼화령-금오봉-상선암-삼릉 및 경애왕릉-삼릉 큰 주차장(약 9㎞, 점심시간 포함 6시간) *경주시외버스터미널: 문의 전화 1666-5599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남행 시내버스 타면 용장리 삼릉 갑니다.(버스비 1천500원) *경주의 식당과 숙박업소는 너무 많아 별도 생략함 *인근의 볼거리: 포석정, 나정, 반월성, 첨성대,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 배리 삼존불 등 *경주의 별미: 황남빵과 경주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