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1]
봉화 충재종가 ‘동곳떡’
절편 빚으며 ‘도란도란’… 460여년 가문 화합의 상징
충재종택 사당 전경. 왼쪽이 충재 권벌의 불천위 신위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고, 오른쪽 건물은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공간인 제청이다. 500년 가까이 충재종가의 음식문화를 지켜오고 있는 힘의 산실이라 하겠다. 김봉규기자 |
동곳 모양의 절편과 다양한 웃기떡을 쌓아올려 완성한 동곳떡. <서헌강 제공> |
동곳 모양 절편을 만들고 있는 모습. <서헌강 제공> |
동곳떡을 쌓고 있는 모습. <서헌강 제공> |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2010년 8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시골의 소박한 농촌 마을이 이처럼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세계적 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을의 유·무형 전통문화를 오랜 세월 동안 잘 지켜온 종가들 덕분이었다. 종가문화의 힘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일이다. 이런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후손들이 대를 이어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술과 음식 역시 소중한 문화유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종가의 음식문화에는 다양한 사연과 의미 있는 가르침도 담겨 있다. 영남지역 종가를 중심으로 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 대부분 형성된 종가문화는 봉제사(제사를 지내며 조상을 기리는 일)와 접빈객(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봉제사와 접빈객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성을 다해 마련하는 술과 음식이다. 그리고 제사 중에는 종가의 시조를 기리는 제사가 핵심이다. 종가의 시조는 보통 불천위(不遷位·학덕이나 공적 등이 훌륭해 국가나 유림에서 4대 봉사(奉祀) 후에도 신위를 없애지 않고 영원히 제사를 지내며 기리도록 한 인물의 신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런 불천위 제사는 다른 제사와 달리 후손들에 의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덕분에 수백 년 전의 음식들도 그대로 전해올 수 있었다.
이런 종가의 시조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제사 음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편(떡)과 도적(都炙·물고기, 쇠고기, 닭고기 등을 날고기 상태로 쌓아 올리는 제수)이다. 제수 중에서도 각별히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써서 장만한다.
봉화의 충재종가는 조선 전기 문신인 충재 권벌(1478~1548)을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충재는 기묘·을사사화를 몸소 체험하는 변혁의 시대를 살면서 평생 성리학적 이상 실현이라는 시대정신을 추구한 인물이다.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으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을 보였던 그는 사후에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고 불천위에도 오른, 영남의 대표적 선비였다.
봉화 닭실마을에 종택이 있는 충재종가는 500년 가까이 충재의 가르침과 학덕을 받들며 고유의 종가문화를 지켜오고 있다. 종택은 충재가 생전에 정자인 청암정과 함께 창건했다. 이 충재종가의 불천위 제사(음력 3월) 음식 중 다른 종가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있다. 편이다. 절편을 동곳 모양으로 빚어 쌓아올려 만드는 동곳떡이다.
◆가문 화합의 떡 ‘동곳떡’
동곳떡은 460여년 동안 충재 제사상에 변함없이 오르고 있다. 동곳떡은 보통 제사상에 올리는 시루떡과는 만드는 방법도 다르고 모양도 특이해서 눈길을 끌지만, 가문의 화합을 지켜주는 ‘화합과 조화의 떡’이기도 하다. 동곳떡은 지금도 종택을 중심으로 닭실마을에 집성촌을 이뤄 살고 있는 충재종가 후손들이 함께 모여 만들면서 가문의 화합을 다지게 하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제사상에 오르는 편은 본편과 그 위에 얹는 웃기떡으로 구성되는데, ‘동곳떡’은 본편의 모양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본편은 절편을 잘게 나눠 동곳(상투를 튼 후에 상투가 풀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키기 위해 꽂는 장식) 모양으로 빚은 다음 둥글게 하나씩 쌓아올린다. 높이는 25켜(충재 제사)·23켜(충재 부인 제사)를 쌓았으나 요즘은 음복할 제관이 줄어들어 19켜·17켜 정도 쌓는다.
충재종가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권재정 차종부(36)는 처음 시집와서 이 동곳떡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감탄했다고 한다. 쌓은 모양과 웃기떡의 색깔 등이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며 ‘예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동곳떡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8명의 손길이 필요하다. 쌀가루를 반죽해 잔절편으로 만든 뒤 다시 동곳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쌓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 적어도 8명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각기 노하우가 있는 손길이 필요하다. 높이 쌓기 때문에 반죽이 적당해야 하고, 쌓는 데도 노하우가 필요하다. 현재 동곳떡을 쌓는 일은 그 노하우를 전수(傳受)한 차종부가 담당하고 있다. 재료와 웃기떡을 준비해놓고 동곳 모양을 만들면서 떡을 쌓는 데만 4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동곳 모양의 절편을 다 쌓고 나면 그 위에 11가지의 웃기떡을 한 켜씩 쌓아올려 제사상에 올릴 편을 완성한다. 쑥을 넣은 청절편, 송기를 사용한 송기송편, 콩가루 경단, 콩고물을 넣은 밀비지, 흑임자 경단 등이 웃기떡으로 오른다.
권재정 차종부는 “동곳떡은 혼자서는 만들 수가 없고 여러 사람의 손길과 마음을 모아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장만할 수 없는 제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동곳떡을 만드는 시간은 마을 친척들이 모두 모여 오랜만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주고받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차종부는 “동곳떡은 후손들이 서로 화합하고 조화를 이뤄 화목하게 살아가며 가문을 지켜가도록 하고 있어 ‘화합과 조화의 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용철 차종손(38)도 “동곳떡의 본편은 한 조상을 의미하며, 웃기떡 11가지는 다양한 성향을 지닐 여러 후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는데, 가문의 후손 모두가 동곳떡처럼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라는 의미로 해석한다”고 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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