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8]
성주 사우당 종가 ‘은어국수’
대가천 玉流서 노닐던 은어로 우려낸 육수…향도 맛도 은은
사우당 종가의 내림음식인 은어국수(위쪽). 마을 앞으로 흐르는 대가천에서 잡은 은어를 고아 마련한 육수를 부어 만드는 여름철 별미였다. 아래는 은어를 고아 육수를 마련하는 과정. <사우당 종가 제공> |
지금은 드물게 잡혀
예전보다 더 귀한음식
넉넉한 마음 가득한 종부
손님 위한 연잎차 준비
사우당 효심 본받고자
아이들 예절교육 힘써
성주 윤동마을(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은 성주의 대표적 집성촌 중 하나다. 의성김씨 집성촌인데, 그 중심이 사우당 종택이다. 순천박씨가 먼저 마을을 개척한 이곳에 의성김씨로 처음 자리를 잡아 정착한 인물이 바로 사우당(四友堂) 김관석(1505~42)이다. 김관석의 부인이 순천박씨다.
사우당 종택은 김관석의 후손들이 사우당을 기리기 위해 1794년에 건립한 ‘사우당’ 건물을 중심으로 영모당, 안채, 사랑채, 다도와 예절 등을 위한 공간 등이 금초산(212m) 아래로 펼쳐져 있다.
사우당 종택은 문절공(文節公) 김용초 종택으로도 불린다. 김관석의 5대조인 김용초(1329~1406)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오르고 충청도병마절도사를 지냈으며, 사후에 ‘문절(文節)’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김용초는 만년에 성주군 대가면 안터(內基)마을로 입향했고, 그 후손들이 수륜면 윤동, 대가면 사도실, 초전면 내동, 용암면 마천 등에서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윤동에 자리 잡은 김관석은 김용초 가문의 종손이다. 따라서 사우당 종가는 곧 문절공 종가이기도 하다.
사우당 종택이 있는 윤동마을은 뒤에는 까치산의 맥이 흐르다 맺힌 금초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앞에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이 흐르고 있다.
문절공 21대 종손 김대기씨(73)와 종부 류정숙씨(67)가 종택을 지키는 사우당 종가에는 이런 자연환경이 베푸는 식재료를 활용한 내림음식이 있다. 은어를 이용한 여름 특별 보양식 은어국수다.
◆대가천의 은어로 만들던 별미 국수
대가천(大家川)은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성주군 수륜면을 지나 고령군 운수면에서 회천으로 흘러드는 큰 하천이다. 예전의 대가천은 수량은 항상 넉넉했고, 물도 맑아 그야말로 청류(淸流)요, 옥류(玉流)였다. 그래서 대가천에는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고기가 많았다. 꺽지, 빠가사리, 피리, 모래무지, 쏘가리 등이 늘 노닐었다. 특히 은어가 많아서 주변 마을 사람들의 별미가 되어주었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물이 오염돼 대가천에서 은어가 거의 잡히지 않고 있다.
은어는 맑은 물을 좋아하며,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하천으로 돌아온다. 살에서 수박향이 나는 고급 물고기인 은어는 회나 구이, 매운탕, 튀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다.
이 은어를 푹 고아 걸러낸 육수에 국수를 넣은 은어국수는 사우당 종가의 대표적 별미였다. 11년 전에 93세로 별세한, 류정숙 종부의 시어머니(배학진) 생전에는 은어국수를 자주 해 먹었다. 집안 식구들이나 종가를 찾는 손님을 위해 종종 은어국수를 여름철 별미로 내놓았다.
은어를 잡아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한 뒤 푹 고아 육수를 만든다. 면은 밀가루에다 콩가루를 30% 정도 섞어 마련한다. 건진국수처럼 면은 삶아 건져 바로 찬물에 헹군다. 그리고 건진 면에다 은어육수를 붓고 호박, 계란, 김 등을 얹어 은어국수를 완성한다.
은어 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은어국수는 다른 어탕국수와 달리 비린내가 나지 않고, 육수 빛깔이 은빛이어서 보기에도 고급스럽다.
류정숙 종부도 여러 차례 은어국수를 만들었으나 요즘은 거의 요리하지 않고 있다. 은어를 구하기도 어렵고, 그 과정이 번거로운 데다, 예전과 달리 별미를 대접해야 할 경우도 잘 없기 때문이다.
김관석이 입향한 후 사우당 종가 종부들은 마을 앞을 흐르는 대가천에서 은빛 비늘을 번뜩이는 은어 등 물고기를 잡아 다양한 요리를 해 먹었다. 은어국수는 그 요리 중 하나로 지금의 종부에까지 이어져온 대표적 여름 별미요리이다.
사우당 종가의 다식. |
종가의 음식은 종부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가문의 선조와 관련된 음식은 대대로 제사상에 오르면서 전해 내려오기도 하지만, 종부의 솜씨와 감각에 따라 당대에 맞는 음식이 개발되어 종가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기도 한다.
사우당 종가 류정숙 종부도 시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뿐만 아니라 요즘 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주변의 음식재료를 활용해 개발한 음식을 선보여 왔다. 연잎을 이용한 연잎밥, 연잎수육, 연잎차, 연잎오이냉채 등을 종택을 찾는 이들에게 내놓고 있다. 물론 사람들로부터 별미라는 칭찬을 듣고 있다. 종부는 또한 종택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최소한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대접하기 위해 1년 내내 연잎차가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종부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성교육 필요성을 절감, 종택을 활용한 예절교육과 다도교육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류정숙 종부는 “종택을 찾는 이들 모두가 종가의 품위와 넉넉한 마음을 느끼고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각별히 마음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오랫동안 종택을 지켜온 류정숙 종부는 차종부(이주현)가 종택에 들어와 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는 이야기도 했다. “요즘 사람들은 특히 시골의 종택을 지키며 살기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국악(가야금)을 전공한 큰며느리가 머지않아 종택에 들어와 종가문화를 지키고 가꾸며 살겠다고 해 고맙고 마음이 놓입니다. 저보다 종가문화를 더 잘 가꾸어나갈 것 같습니다.”
◆사우당 김관석의 효도 이야기
성현의 학문을 배우고 후학 교육에 매진하다 일찍 별세한 김관석의 호 사우당의 ‘사우’는 사군자로 불리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의미한다. 선비가 본받아야 할 정신에 비유되는 사군자의 성품을 닮으려 한 그 마음이 그가 남기 시 ‘사우(四友)’에 잘 드러나 있다.
‘반 이랑쯤 되는 뜰 앞에 네 군자를 심으니(半畝庭前植四君)/ 그윽한 꽃과 곧은 줄기는 범상한 나무 무리가 아니다(幽和貞幹不凡群)/ 매화와 난초는 봄과 여름에 향기를 맡고(梅蘭春夏香能看)/ 국화와 대나무는 가을과 겨울에 그 절개를 알겠다(菊竹秋冬節已聞)/ 시험 삼아 그려서 병풍을 꾸미니 다 묘한 그림이요(試寫粧屛皆妙畵)/ 제목을 달고 읊어 시축을 만드니 역시 진기한 글이로다(題吟作軸亦奇文)/ 일년 내내 아름다운 경치와 절후를 따라서 즐기니(年中美觀移時樂)/ 사랑스러운 너의 맑은 기품 가히 내 벗 되겠구나(愛爾淸慓可友云).’
김관석은 효성이 남달랐다.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어쩌다 맛있는 음식이나 과일을 얻게 되면 자신이 먹지 않고 소매 속에 넣어 돌아와 부모에게 드렸다. 사람들은 “육적(陸積·중국 오나라 학자)이 원술의 집에서 몰래 귤을 소매에 숨겨 돌아와 부모에게 드린 일(懷橘·효자의 정성을 나타내는 고사)과 같다”며 입을 모아 칭송했다.
부친이 원인 모를 병으로 고생하게 되자, 그는 백방으로 약을 구해 올리고 정성을 다해 간호했으나 별 효험이 없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부친의 대소변을 맛보면서 병의 위중함을 측정하고, 매일 새벽 목욕재계한 다음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간절히 기도했다. ‘자식 된 도리가 부족해 부친의 병이 위중해졌으니 이 불효자에게 병을 대신하게 해 주소서.’
지극한 효심에 하늘이 감응했는지 부친의 병이 드디어 완쾌되고, 그의 효심에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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