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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10]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연엽주’

대한인 2016. 10. 14. 06:37

[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10]

아산 외암마을 참판댁 ‘연엽주’

  • 김봉규기자
  • 20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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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좋아했던 약주 … 술독 방향까지 옛 방식 그대로

외암마을 참판댁 가양주 ‘연엽주’.
연엽주 핵심 재료인 누룩과 연엽.
서리 내리기 전 딴 연잎에
누룩·솔잎 섞은 밥 넣고
겨울에는 20일 정도 발효
길일 택하는 등 정성 다해
고종이 최고 약주로 꼽아

외암 이간의 6대손 이정열
통상조약 반대하며 낙향
충신이 마음쓰였던 고종
집 지어주고 편액도 하사


충남 아산의 외암마을(송악면 외암리)은 2000년 1월에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아름다운 마을이다. 10월 초순 청명한 가을날 외암마을을 찾았다. 마을 초입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니 어디 못지않은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휘감고 꽃이 핀 갈대숲 속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그 뒤쪽으로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는 들판의 벼들이 마음을 풍성하게 했다. 황금들판 뒤로 단풍이 들기 시작한 느티나무, 감나무, 밤나무, 산수유 등 고목들 속에 돌담을 두른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멀리 뒷산(설화산)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 마을 길을 걸으니 돌담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총 5㎞ 넘는 아름다운 길이다. 돌담길이 다른 전통마을보다 넓은 데다 돌담의 폭 또한 유난히 넓어(50㎝~1m) 눈길을 끌었다. 멀리서 보는 마을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옛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골목길을 걸으며 느끼는 정취 또한 각별했다.

이 마을은 옛 모습을 잘 갖춘 데다 아름다운 풍광을 갖추고 있어서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클래식’ ‘덕이’ ‘야인시대’ 등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애용되었다.

예안이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는 예전에는 이씨 외에는 거의 없었으나 6·25전쟁 이후 이씨들이 좀 빠져나가고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지금은 68가구 중 47가구 정도가 이씨다. 참판댁 종손 이득선씨(72)의 설명이다.

예안이씨로서 이곳에 처음 입향한 사람은 조선 명종 때 장사랑(將仕郞) 벼슬을 지낸 이정(李珽)이다. 이후 그 자손들이 번창했는데, 그의 6대손인 외암(巍巖) 이간(1677~1727)이 가문을 빛낸 대표적 인물이다. 이간은 우암 송시열의 학맥을 이은 수암(遂菴) 권상하의 수제자로, 그의 문하인 ‘강문 8학사(江門八學士)’ 중 으뜸이었다. 사후에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며, 외암서원에 배향됐다. 마을 이름은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지은 그의 호 ‘외암(巍巖)’에서 따온 것이다. 한자는 나중에 ‘외암(外巖)’으로 바뀌었다.

500년 정도 예안이씨 집성촌으로 존속해온 이 마을의 대표적 고택인 참판댁에 제주(祭酒)로 올리던, 연잎을 사용해 담그는 가양주 ‘연엽주’가 지금도 전해오고 있다. 최소한 150여년 전부터 빚기 시작한 이 가양주는 고종황제에게 올리던 술이기도 해 더욱 유명하다.

◆고종 황제도 마셨던 연엽주

참판댁 사랑채. 사랑채 마루에 고종이 지어준 호가 담긴 ‘퇴호거사’ 편액이 걸려있다.
참판댁은 외암 이간의 증손자에서 시작된 가문의 종택으로, 이간의 8대손인 이득선씨 내외가 자녀들과 함께 지키고 있다. 참판댁이라는 이름은 이씨의 조부인 퇴호(退湖) 이정열(1868~1950)이 이조참판 벼슬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고종의 아들인 이은의 가정교사를 맡기도 했던 이정열은 이간의 6대손으로, 일제가 조선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통상조약과 사법권의 이양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며 항거했다. 일제가 이 두 가지를 요구해오자 이를 앞장서서 진행하고 있던 책임자인 외부대신의 탄핵을 주장하는 상소(上疏)를 써서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정열은 “나라를 팔아먹은 조정의 신하로 일을 하면 후손들에게 거름이 안 된다”며 즉시 사임하고 낙향했다.

고향에 내려온 그는 칠은계를 조직해 충남 일대의 항일운동에도 가담하면서 은거 생활을 했다. 고종은 올곧은 신하인 그를 곁에 두고 싶은 심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복직 명령을 내렸으나 끝내 조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편 고종은 가난하고 청빈한 선비인 그의 생활을 걱정하며 세 차례에 걸쳐 하사품과 전(錢)을 내리기도 했으나 그는 바로 돌려보내곤 했다. 이에 고종은 ‘아예 집을 지어주면 뜯어버리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창덕궁의 낙선재를 본떠 그의 고향에 집을 한 채 짓게 했다. 이렇게 마련된 집이 참판댁이다.

고종은 그에게 또 직접 ‘퇴호(退湖)’라는 호를 지어주고, 당시 아홉 살이던 아들 영왕에게 글씨 ‘퇴호거사(退湖居士)’를 쓰게 해 만든 편액을 하사했다. 그 편액이 참판댁 사랑채에 지금도 걸려 있다. 편액에는 ‘고종황제 사호(高宗皇帝 賜號)’와 ‘영왕 9세 서(英王 九歲 書)’라는 문구가 있다.

참판댁 연엽주는 고종과 관련된 일화가 전하고 있어 더욱 유명하다.

어느 해, 가뭄이 극심해 백성이 기근으로 고통을 겪자 임금도 쌀밥을 먹을 수 없다며 고종이 잡곡밥을 해먹게 되었다. 그러나 먹지 않던 잡곡밥이라 잘 먹지 못하게 되고 기력이 떨어졌다. 이에 신하들이 대책회의를 열어 옥체 보전을 위한 방편으로 전국의 약주를 수소문해 그중에서 가장 좋은 술을 선정해 올리기로 했다. 이때 전국에서 올라온 약주가 두견주, 국화주, 송화주 등 120종류나 되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참판댁의 연엽주가 최고 좋은 약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연잎과 솔잎 등으로 만드는 청주

연엽주는 연잎과 솔잎, 누룩, 감초, 멥쌀과 찹쌀 등을 사용해 만드는 청주다. 가문의 제사 때 올리는 제주로 빚어오던 술이다. 1990년대 중반쯤 종손의 막내아들 대학 학자금 마련을 위한 방편으로 일반인에게 팔기 시작했다. 조상에 올리던 술을 판다는 것이 마음 편할 수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도 종택을 찾는 사람들에게 판매를 하고 있다.

연엽주를 빚는 데 있어서 누룩이 특히 중요한데, 밀뿐만 아니라 녹두, 옥수수, 이팥 등을 사용한다고 한다. 연잎은 가을철 서리가 내리기 전, 잎이 마르기 전에 채취한다. 제철에 사용하기도 하고, 말려두었다가 수시로 사용한다. 해마다 연잎을 일정량(60장 정도) 채취해 사용하는데, 다 사용했을 때는 연뿌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연엽주를 위해 연 농사도 짓고 있다.

연엽주를 담글 때는 온 정성을 다했다 한다. 길일을 택해 술 담그는 날을 정하고, 술을 담글 때는 침이 혹시나 튈까 입에 창호지를 물었다. 술독을 놓아두는 방향도 엄격하게 정했다.

먼저 술 항아리는 짚을 태운 연기로 훈증·소독한다. 술 항아리에 연잎을 깔고 누룩과 고두밥, 솔잎을 물에 섞은 술밥을 담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으로 술을 담그는데, 연잎은 한 항아리에 5장 정도 들어간다. 적당하게 발효되면 용수(술을 거르는 데 쓰는 도구)를 받쳐 맑은 술을 뜬다. 술은 겨울에는 20일 정도, 봄·가을에는 15일 정도, 여름에는 7일 정도 숙성시킨다.

연엽주의 알코올 도수는 13도 정도. 집에서 전통식으로 담그기 때문에 일정한 도수를 유지하기는 어려우며, 12도에서 15도 사이가 된다고 한다. 연엽주는 90년 12월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이득선씨와 부인 최황규씨가 함께 빚고 있다. 며느리에게도 연엽주 빚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연엽주는 색깔은 그리 맑지 않으나 맛은 매우 좋다. 솔잎 향과 연잎 향이 섞인 은은하고 오묘한 향이 나면서 맛이 부드럽고 그윽하다. 약간 새콤하기도 하다.

외암마을 예안이씨 가문에서 전해 내려온 가양주이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이득선씨는 최소한 그의 고조부인 이원집(1829~79) 때부터는 빚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비서감승이라는 벼슬을 한 이원집은 술과 음식을 비롯해 병에 대한 응급처방, 농사 등에 대해 기록한 ‘치농(治農)’이라는 저술(필사본)을 남겼는데 여기에도 연엽주 담그는 법이 소개돼 있다.

연엽주 최고 안주로는 암소 앞다리로 만드는 ‘족편’이 내림음식으로 전하고 있다. 부드러운 암소 앞다리를 은근한 불로 푹 고아 뼈를 건져내고 광목이나 베수건으로 걸러낸 뒤 실고추, 석이버섯, 계란 등을 넣어 굳힌 다음 썰어낸다. 족편은 노인들에게 알맞은 안주로 올랐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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