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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19] 논산 사계종가 ‘불천위 제사 상차림’

대한인 2016. 10. 15. 04:48

[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19]

논산 사계종가 ‘불천위 제사 상차림’

  • 김봉규기자
  •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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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비용만 250만원…광산김씨의 아낌없는 ‘먹치레’

사계 김장생 불천위 제사상. 사계 종가는 제사음식을 특히 풍성하게 마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논산문화원 제공>


충청도의 대표적 선비로 사계(沙溪) 김장생(1548~1631)을 꼽을 수 있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1536~1584)와 구봉 송익필(1534~1599)에게 성리학과 예학을 배운 뒤, 나중에 성리학으로 예학의 바탕을 마련하고 정밀한 고증을 통해 예학을 정립·집대성함으로써 ‘조선 예학(禮學)의 종장(宗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예학은 몇 차례의 전란으로 혼란해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아 사회질서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는 당쟁에다 이괄의 난,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국가적 위기에 처했던 시기였기에 민생회복과 기강확립이 절실하던 때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장생은 이념적 체계로 예에 주목했다. 그는 심성의 온전함을 지키면서 예에 맞게 행동하고 하늘을 우러러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늦은 나이에 벼슬을 시작했고, 과거를 거치지 않아 요직 경력이 많지는 않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영수로서 영향력이 매우 컸다. 고향인 연산에서 주로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충남 오현(五賢)인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윤선거, 유계를 비롯한 당대 대표적 예학자가 모두 그의 제자들이었다.

김장생은 별세 후 ‘문원(文元)’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고, 1688년에 성균관 문묘에 배향되었다. 돈암서원(연산), 충현서원(공주) 등 10여 곳의 서원에 위패가 모셔져 추모를 받고 있다.

문묘에 배향된 것은 나라에서 불천위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국가 불천위는 영원히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기리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한다.

사계 김장생의 불천위 제사는 지금까지 380여 년 동안 계속되고 있고, 예학의 종장 가문답게 사계종가의 제사는 다른 종가에 비해 특별히 성대하게 지내는 데다 옛 법도를 잘 유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계 김장생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염수재(念修齋)’

‘조선 예학의 종장’사계 김장생 별세후
 성균관 문묘 배향…380년간 제사 지내


 제사상 고임 위해 전문가까지 모셔와
 밤·배 등 차곡차곡 쌓아 모양에 정성
 참례자에겐 음식 대접하고 나눠주기도


◆제사 음식에 특별히 정성을 다한 사계종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논산군이 탄생하기 전 지금의 논산시 지역은 연산현, 노성현, 은진현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선 초기부터 이 세 고을의 대표적 성씨로 광산(光山)김씨, 파평(坡平)윤씨, 은진(恩津)송씨가 살면서 여러 가지 일화도 생겨나는데, 그중 하나로 ‘광산김씨 먹치레, 파평윤씨 묘치레, 은진송씨 집치레’라는 말이 있다.

연산지역에 주로 세거해온 광산김씨 가문에서는 제사 때 제물을 풍성하게 장만해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대접하고 봉송을 마련해 주며, 마을 사람들에게도 제사음식을 나누어 주는 등 먹을 것에 정성을 들이고 비용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봉송(封送)은 제사에 올렸던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 싸서 참례자들이 집으로 가져가 그 가족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한 제사음식을 말한다. 참례자의 식구들도 조상이 흠향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조상의 음덕을 기리도록 하는 뜻에서다.

광산김씨 먹치레의 대표적 예가 김장생 불천위 제사이다. 김장생 불천위 제사는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염수재(念修齋)에서 진행된다. 염수재는 김장생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재실(齋室)이자 사계종가의 종택 역할을 하는 고택이다. 염수재는 네 칸 한옥으로, 마루방 두 칸과 온돌방 두 칸으로 되어있다. 마루방에서 불천위 제사가 진행된다. 염수재 건물 서쪽 뒤편에 김쟁생의 불천위 신위가 봉안된 사계종가 사당이 있고, 염수재 마당 좌우에 제수를 준비하는 안채와 제관들이 묵고 가는 행랑채가 있다.

종택에는 한옥 두 채가 더 있었으나 20여 년 전에 식구가 줄고 관리가 힘들어 헐어버렸다고 한다. 이 염수재 뒤 야산 자락에 김장생 묘를 비롯한 광산김씨 가문 조상 묘가 있는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김장생 불천위 제사 기일은 음력 8월2일이다. 기일이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그 후손들이 염수재를 찾아 제사에 참여한다. 제사는 새벽 3시가 넘어 시작하고, 제사 후 문중회의를 하고 음복을 마치면 새벽 5시 정도가 된다. 지금도 제사 후 참례자 모두에게 밥상을 차려 내고 봉송을 일일이 준비해 나눠 준다. 조상 제사와 제사음식에 대해 이처럼 정성을 들이며 풍성하게 준비하는 법도는 김장생 아들인 신독재 김집 불천위 제사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계종가 불천위 제사상

김장생 불천위 제사상을 마련하는 데 드는 제수 비용만 250만원 정도이고, 제사상에 오르는 제사음식은 30가지 정도.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맨 앞줄에 진설되는 10가지 제수다. 주로 과일이다.

밤, 배, 잣, 호두, 은행, 조과, 사과, 곶감, 대추 등을 왼쪽부터 진설하는데 그것을 쌓은 모습이 ‘예술’이다. 같은 높이와 부피를 보여준다. 이렇게 제수를 격식에 따라 제기에 차곡차곡 쌓아 모양을 내는 것을 고임이라고 하는데, 이 제사상 고임을 위해 전문가를 초빙한다고 한다.

과일 뒤로는 포와 나물, 조기 등을 진설한다. 그 다음에는 전과 탕, 떡, 면 등이 놓인다.

잔을 올릴 때 안주로 적을 올리는데 초헌관은 육적(쇠고기), 아헌관은 어적(생선), 종헌관은 계적(닭고기)을 올린다.

제사음식은 하루 전에 유사들이 장을 보아 준비를 한다. 제수 비용은 문중 전답에서 나온다. 제수 장만은 가까이 사는 문중 부인들이 와서 준비한다.

제사상은 흰 앙장(천장에 치는 휘장)을 치고 병풍을 두른 뒤 그 앞에다 차린다. 병풍은 임금이 김장생에게 내린 교지 글로 만든 12폭 병풍을 사용한다. 조상이 식사를 하는 합문 때는 병풍을 ‘ㄷ’ 자 모양으로 쳐서 제사상을 감싸고, 앞쪽은 걷어올린 앙장을 내리는 방식을 취한다.

병풍 교지 내용은 예학의 종장으로 인간생활의 도덕 확립에 이바지한 공인 크므로 문묘에 배향하도록 임금이 명을 내렸다는 것을 담고 있다. 예전에는 백지 병풍을 사용했다는데, 글을 모르는 후손을 위한 배려였다고 한다. 김장생 불천위 제사에 참석하는 제관은 점점 줄어들어 요즘은 40명 정도다.

◆사계 가문과 양천허씨 부인

김장생은 조선시대에 265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한 가문인 광산김씨로, 달성서씨·연안이씨와 함께 조선 3대 명문으로 꼽힌다. 이들 문중 중에서도 광산김씨의 사계 김장생 가문, 달성서씨의 약봉 서성 가문, 연안이씨의 월사 이정구 가문을 가장 명문으로 꼽는다.

사계 김장생 가문은 특히 그의 아들 김집과 함께 문묘에 배향되었는데, 부자가 함께 문묘에 배향된 가문으로는 유일하다. 문묘에는 우리나라 대표적 유학자 18현이 배향되어 있는데, 한 가문에서 2명이 배향되기는 송시열과 송준길을 배출한 은진송씨와 광산김씨뿐이다.

김장생 가문이 이처럼 명문이 된 데는 김장생의 7대조 할머니인 양천(陽川)허씨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허씨는 조선 태조 때 대사헌을 지낸 허응의 딸로, 김장생 7대조 김문과 혼인을 한다. 그런데 그가 일찍 사망해 17세 나이에 임신한 청상과부가 되고, 친정 부모는 재가를 강요한다. 하지만 허씨는 부모의 강요를 피해 유복자인 철산(鐵山)을 데리고 개성을 떠나 김문의 아버지 김약채가 터를 잡아 살고 있는 연산 고정리의 시가까지 걸어 가서 시부모를 모시며 아들 철산을 잘 키워 사헌부 감찰을 지내게 했다. 철산은 좌의정을 지낸 국광을 비롯해 네 아들을 낳았다.

광산김씨는 자신들의 가문이 명문을 이룬 것은 허씨의 정절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극진히 모시고 있다. 허씨 묘는 김장생 묘 바로 아래에 있고, 근처에 허씨를 기리는 재실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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