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김치, 평안김치 왜 다를까
김치 종류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지역별로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각 지역의 기후, 재료, 식습관 등에 따라 인기 있는 김치도 달랐다.
강원도는 산과 바다가 많은 지역답게 이곳에서 나오는 재료를 많이 활용했다. 더덕김치, 해물김치, 오징어김치 등이 강원도의 특산 김치다. 서울은 궁중에서 먹던 김치가 서민들에게도 퍼졌다. 오이소박이, 장김치, 섞박지 등이다. 경기도 역시 김치 모양이 화려하고 재료가 풍성했다. 총각김치, 비늘김치, 수상나박김치 등이 경기도민들이 많이 먹었던 김치다.
함경도엔 왜 김치에 해산물을 넣었을까
반면 충청도는 소박하고 담백해 깔끔한 맛의 김치가 인기였다. 나박김치, 총각무동치미, 가지김치 등이 충청도에서 많이 만든 김치다. 전라도는 젓갈과 고추 양념을 많이 사용해 김치를 담궜다.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나주동치미 등이 유명하다. 경상도는 맵고 얼얼하며 간이 짠 김치를 많이 먹었다. 깻잎김치, 쪽파김치, 부추김치 등이다. 제주도에서는 양념을 적게 하고 해산물의 맛을 살린 김치가 인기였는데 해물김치, 전복김치, 나박김치 등이 있다.
북쪽으로 눈을 돌려 보자. 함경도는 젓갈보다는 오징어, 생태 등의 해산물을 넣은 김치가 많았다. 꿩김치, 가자미식해, 동치미 등이다. 평안도는 간이 싱겁고 국물이 많은 김치를 많이 먹었다. 동치미, 꿩김치, 백김치 등이다. 함흥냉면, 평양냉면의 차이를 보는 듯하다. 황해도 김치 역시 기교를 부리지 않아 소박한 대신 양이 넉넉한 점이 특징이다.
또 하나 예를 보자. 요즘 서양에서 많이 주목받고 있는 김치가 사찰 김치, 즉 절에서 먹는 김치다. 사찰 김치는 완벽한 채식 음식인데다 영양도 풍부하다. 단순한 채소 절임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 물 건너온 배추에 갖은 양념을 버무리다가 인진왜란이후 화룡정점인 붉은 고추를 넣는 등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김치의 포텐셜이 절에서도 터졌다.
인류무형유산 김장
김치는 2013년 12월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정확히 무형유산이 된 건 김치가 아니라 김장이다. 즉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다. 유네스코는 “김장은 한국에서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연대감과 정체성, 소속감을 증대시킨 매개체”라고 평가했다. 김치에는 식품과학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수천년을 버무려온 문화와 삶이 발효되어 있는 것이다.
‘김치는 손맛’이라고 하는데 과학적으로는 김치 속에 들어 있는 미생물이 내는 맛이다. 김치 미생물, 즉 유산균이 배추와 갖은양념을 먹고 ‘발효’라는 과정을 통해 내놓는 부산물이 김치의 맛을 좌우한다. 그런데 치즈나 요거트, 와인 등 다른 발효음식과 무엇이 다를까. 김치에는 들어 있는 유산균의 종류가 훨씬 많다. 요거트는 많아야 두세 종의 유산균이 발효를 시킨다. 그런데 김치는 어떤 유산균이 들어있는지 모를 정도다. 미생물의 종류가 많으니 그들이 내놓는 기능성 물질 역시 훨씬 다양하다.
맛도 맛이지만 김치는 몸에 좋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배추는 단백질, 칼슘 등의 영양분이 풍부하고 섬유소가 많아 당뇨병 예방에 좋다. 고춧가루는 비타민C가 사과보다 25배나 많다. 생강 속 ‘진저롤’ 성분은 신진대사를 돕는다. 배추와 함께 중요한 밑재료인 무는 비타민과 칼슘, 인이 풍부하다. 파는 살균, 살충 효과가 뛰어나다. 김치 속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성분이 종양 생성을 억제해 대장암, 고형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다.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최종적인 김치의 맛은 유산균이 좌우한다. 다른 미생물을 죽이고 유산균만 살리기 위해 하는 것이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이다. 사실 신라시대 최초로 먹었던 김치가 바로 채소를 소금으로 절인 형태다. 김치는 pH 4.5, 젖산 농도 0.6~0.7%인 적숙기 때가 가장 맛있다. 김치 미생물은 시간이 지나면 탄산도 만드는데, 잘 익은 김치가 시원한 맛이 나는 이유다.
다른 음식과 궁합이 좋은 김치
다른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 것도 김치의 특징이다. 삼합이라고 해서 ‘수육+홍어+김치’가 대표적인데 잘 삭힌 홍어는 염기성이 강해 산성을 띠는 김치와 잘 맞는다.
삼겹살 등 지방이 많은 고기의 느끼한 맛도 김치가 잘 씻어준다. 고구마나 떡을 먹을 때도 김치가 좋다. 김치가 침샘을 자극해 침의 양을 늘려주기 때문에 전분이 많은 음식도 잘 넘길 수 있다. 참치라는, 우리 조상은 듣도 보도 못한 생선을 넣어 침이 꿀떡 넘어가는 김치찌개를 만든 것도 이런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 참고로 김찌지개라는 말은 1900년대 초반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처음 나왔다.
점점 싱거워지는 김치
김치의 단점은 소금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다행히 마트에서 파는 김치는 점점 소금을 적게 쓰고 있다. 남부지방에서 직접 담근 김치는 염분 농도가 3.0%를 넘는 경우가 많은데 파는 김치는 2.0~2.2% 수준이다. 저염 김치는 1.8%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요즘 김치는 감칠맛이 많이 난다. 김치의 감칠맛은 동물성 양념에서 나온다. 지방에 따라 감칠맛을 내는 재료가 다른데 북쪽 지방은 새우젓을 많이 넣어 시원한 맛이 많이 난다. 남쪽 지방은 젓갈이나 까나리액젖을 많이 써서 진한 감칠맛이 난다.
김치에 넣는 젓갈은 어패류 또는 부산물로 만든다. 젓갈은 이미 10~20%의 소금에 절여 발효시켜 둔 것으로 여러 가지 유익한 미생물이 들어 있어 김치의 발효를 돕는다. 특히 젓갈은 어패류의 근육 등에 들어 있는 물질들이 모여 감칠맛을 한 층 높여 준다. 한편 멸치젓은 봄철에 담근 것을 많이 쓴다. 새우젓은 살이 통통하고 붉고 노란색으로 삭은 것이 좋다. 음력 6월에 살이 오른 새우로 담근 육젓이 잘 발효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