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께 백일기도하고 눈 뜬 중년신사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향가 가운데 도천수대비가를 조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千手),
천안(天眼)의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향가를 통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중생이 슬픔속에 관음보살님께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만산에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우는 화창한 봄 날. 산새소리
가득한 강진 무위사에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다.
필자는 그때 무위사 큰법당인 극락보전 앞에 있는 고목나무 밑에
놓여 있는 깨어진 멧돌 위에 정좌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남자는 필자에게 정중히 합장 인사를 하고는 어눌한 음성으로
무위사에 관세음보살님의 국보 벽화가 봉안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원천리 찾아왔으며 관음기도를 지성껏 모셔보고 싶노라고
허락을 구해왔다.
그는 슬픈 얼굴로서 후리후리한 키에 회색 양복을 입었고 한 손
에는 낡은 트렁크를 힘겹게 들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으나 필자는 이내 그의 설명을 듣고 속사정을
알았다.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는 경북 포항 사람으로 그동안 자그마한 개인 사업을 하며
일개미처럼 열심이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 왔다.
갑자기 두 눈이 어두워 오더니 마침내 눈 뜬 장님이 되다시피
되고 말았다.
“아, 내가 앞을 못 보게 되다니….”
그는 나날이 잃어가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발악하듯 몸부림을
치며 유명하다는 병원의사는 성지순례하듯 찾았다.
병원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절망에 빠져 울고 있는 그에게 누군가 마지막으로 신불(神佛)께
기도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 그는 무위사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오정수(吳定洙). 필자는 오정수씨의 딱한 이야기를
듣고 무위사에서 기도할 것을 흔쾌히 허락하였다.
오정수는 각오의 뜻으로 삭도로 머리칼을 밀어 버렸다.
그리고 극락보전안에 있는 후불벽화인 수월백의관음벽화 앞에서
촛불과 향화를 받들면서 백일을 기한하고 천념 염주를 헤아리며
지성으로 관음기도를 올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정수의 간절한 기도소리는 무위사의
적막한 도량을 넘쳐 흘렀다.
죽기를 한하고 지성으로 기도하던 오정수는 백일기도가 끝나가는
즈음에 놀랍게도 두 눈이 밝아졌다고 부르짖었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 확신합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고 오정수는 다시 트렁크를 들고 필자 앞에 섰다.
눈이 웬만하니 걱정하며 고대하는 처자에게 달려가고 싶고,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어 가장의 책무를 다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작별하는 즈음에 오정수는 호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 그동안
산사에서 체류하게 해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부족한 돈이지만
시주금으로 받아달라고 간청하며 필자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
필자는 빙긋 웃고 다시 그 돈을 돌려주며 기도하느라 고생
많았다고 치하만 했을 뿐이었다.
“우리 인연 있어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필자는 멀어져가는 버스 차창을 통해 오정수씨의 흔드는 손을 답례
하여 마주 손을 흔들면서 내내 앞서의 신라의 향가를 생각하였다.
― 무릎꿇고 두 손 모아 관음전에 비옵나니, 천수,천안 그 중
한 눈, 눈 먼 저에게 주옵소서. 아아, 저에게 주옵시면 자비 더욱
크오리다.
무위사 수월백의관음보살님이 고해중생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고해대중이여, 우주에 의지할 성인 가운데 관세음보살님을 권장
하오니, 우리 모두 때가 되면 이승의 인연들을 작별하면서 한과
눈물속에 홀로 머나먼 저승으로 떠나갈 때 까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인생을 살아갑시다.
관세음보살님은, 우리가 세연이 다해 육신의 탈을 벗고 어둠속에
홀로 울며 머나먼 윤회의 길을 떠나려 할 때 반드시 광명으로
나투며 현신하여 우리의 영혼을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 글 / 법철스님 -
여기는 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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