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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령, 낡고 피묻은 내 점퍼와 자기 고급 점퍼 바꾸자고 해

대한인 2013. 1. 20. 06:46

[정전협정 58주년 주간 연재] 박정희 대령, 낡고 피묻은 내 점퍼와 자기 고급 점퍼 바꾸자고 해

  • 정리=문갑식 선임기자 gsmoo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1.07.26 03:12
  • [영원한 사령관 채명신의 '내가 겪은 전쟁'] 中
    게릴라부대 백골병단 시절

    군은 극비리에 게릴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민간인 300명을 선발한 배경엔 미군의 힐난이 있었다. 그들은 신성모 국방부장관을 비꼬았다. "북한은 게릴라전에 능한데 남한은 대체 뭐 하는 거요?" 그 말을 듣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유격부대가 전멸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인사국장에게 조건을 달아 지휘를 수락했다. "숫자는 50명입니다. 전과를 올리면 GO(게릴라 군번)를 정규 군번으로 바꿔주십시오." 정일권 참모총장도, 신 장관도 "OK"라고 했다.

    유격부대로 적진에 침투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백골병단’의 생존 용사 26명이 지난해 6월 25일 계룡대 육군본부 연병장에 모였다. /신현종 기자

    인민군 복장, 소련제 AK소총, 북한 지폐를 지닌 유격결사 11연대가 마침내 51년 1월 말 강원도 영월 북방 적진에 잠입했다. 그런데 뒤이어 유격12연대(160명), 13연대(120명)가 따라왔다. 계획과 달리 유격대는 500명의 부대가 됐다.

    내키지 않았지만 부대명을 백골병단(白骨兵團)으로 바꿨다. 2월 하순 대위가 포함된 적 연락병 5명을 만났다. 그들은 인민군 중좌 차림의 내가 반가운 듯했다. "동무, 어딜 가오?" "전 2군단 예하 69여단 사령부 연락장교입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렇소? (주위를 둘러보며) 이놈들 무장해제시키시오!" 그들은 진짜 월척이었다. 69여단장이 인민군 최현 2군단장에게 보내는 극비문서와 부대 배치가 표시된 지도를 갖고 있었다.

    정보를 아군에게 보내 2군단을 폭격한 뒤 후퇴 도중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기린리 군량밭이란 마을에 인민군 거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는 조선공산당 제2서기이자 현역 중장이며 대남유격대 총사령관 길원팔이었다.

    그가 거처하는 곳에 잠입했다. 의외로 일행은 외팔이 참모장 강칠성 대좌를 포함해 15명과 무장 자위대원 30명뿐이었다. 나는 200명을 선발해 그들을 완전히 포위했다. 일단 무장 자위대원부터 처치하기로 하고 대장에게 접근했다.

    여기서도 인민군복과 '당 직속 정찰대장'이라는 거짓말이 통했다. 영문도 모른 채 모인 자위대원을 무장해제한 뒤 길원팔이 사는 세포위원장 집을 포위했다. 그는 돌연한 국군의 출현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죽기 전까지 "썩어빠진 이승만 괴뢰도당 중에 여기까지 침투할 놈은 없다"는 말을 수십번 했다. 길원팔은 거물이었다. 남으로 끌려가기보다 자결을 원했다. 그에게 김일성이 선물했다는 권총에 총알 한 발을 넣어줬다. 2군단이 폭격당하고 길원팔이 살해됐으니 이젠 우리가 도망칠 차례였다. 예상대로 적의 부대가 끈질기게 쫓아왔다.

    우리는 설악산 능선에서 죽을 고비를 맞았다. 적에게 쫓기다 절벽 아래로 뛰었는데 2m 넘는 눈 덕에 살아나 강릉 9사단에 인계됐다. 당시 9사단 참모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대령)이었다. 그는 유격대의 활약상을 흥미있게 들었다.

    어느 날 박 대령이 날 불고깃집으로 초대했다. 그러면서 적군의 핏자국이 얼룩진 누더기 점퍼를 자기 고급 점퍼와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봐, 그거 역사적인 점퍼잖아"라면서. 자기 깨끗한 옷을 내게 선물하려고 배려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