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 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MC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영상 화면 캡처. |
“저도 그러고 다녔거든요. 지역구에서 지역민들에게 ‘꼭 투표하시라’고 얘기하고 다녔거든요.”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방송된 SBS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 MC중 한명인 김제동 씨를 두둔하며 한 발언이다. 김 씨가 작년 10.26재보선 당시 투표독려 행위로 고소를 당한 것을 가리키며 에둘러 자신의 생각을 언급한 것.
연예인 중에서도 진보색채가 강해 한나라당과 배치되는 정치적 언행을 곧잘 해오는 김 씨였지만, 박 위원장은 이 프로그램에서 시종일관 그에 대해 호감과 공감의 뜻을 표현해 눈길을 모았다.
박 위원장은 “김제동 씨를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며 진정성을 강조한 뒤 “말씀이 어록이 될 정도로 (훌륭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랑을 했으면 앞을 바라보고, 사랑을 할 것이면 마주 바라보고 사랑을 하고 있으면 같은 방향을 바라보라’는 김 씨의 예전 발언을 줄줄이 읊기도 했다.
김 씨가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까칠한 질문을 던지자 박 위원장은 “그런 그 생각을 갖지 않도록 (정치권이) 많이 노력해야한다”고 답했다.
‘정치권이 권력을 너무 휘두르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비리가 없어져야 되고...”라며 공감을 표했다. ‘사람을 볼 때 (정치적)성향이 다른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성향이 문제가 아니다. 나는 마음, 성품을 본다”고 답하며 포용 마인드를 드러내기도 했다.
시사풍자 개그로 유명한 개그맨 최효종 씨에 대한 ‘고소 사건’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개그)프로그램은 못 봤지만 얘기는 들었다”며 “코미디인데 뭘 (문제 삼느냐)... 정치권에서는 반성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쿨’하게 말했다.
또 다른 MC인 이경규 씨가 ‘용띠로 올해 환치를 맞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숙녀 나이를 함부로 발설하는 건 고소감이 아닌가”라고 재치있게 받아넘겨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풍자 코미디 보면 어떠냐’는 질문에 “나는 패러디를 워낙 많이 당해서 면역이 잘 돼 있다”고 답했다.
박 위원장은 스피드게임에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은 교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질문에 “젊은 세대와 소통과 교감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나꼼수’를 설명할 때는 “시사 풍자를 담은 프로그램”이라며 “한번 들은 적 있다. 주로 기사를 통해 많이 봤다”고 밝혔다. ‘나꼼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나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고 말했다.
◇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 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MC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영상 화면 캡처. |
◇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 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MC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영상 화면 캡처. |
이날 방송에서 박 위원장은 재치 있는 입담도 발휘해 눈길을 끌었다. 그간 ‘정치인 박근혜’ 프레임에서 벗어나 유쾌하고 진솔하게 속마음을 밝히는 등 ‘인간 박근혜’의 모습을 내보였다. 딱딱하고 차가울 것이라는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한 모습이다. 의외의 예능감도 돋보였다는 평가다.
특유의 ‘썰렁개그’를 여럿 선보인 그는 “새우와 고래가 싸우면 새우가 이긴다. 새우는 ‘깡’이고 고래는 '밥'이니까"라는 유머를 선보여 MC들이 웃자 “모처럼 히트쳤어요”라고 말해 재차 웃음을 자아냈다.
스피드퀴즈에서는 ‘뽀로로’, ‘SNS’, ‘애정남’, ‘나꼼수’, ‘하의실종’, ‘지못미’와 같은 각종 트렌드에 대한 상식을 깜짝 드러내기도 했다.
대학시절 첫사랑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서는 “본받고 싶은 남학생이 있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선배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고 떠올렸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잃었을 때의 충격과 아픔도 털어놓았다. 그는 “프랑스에 있었을 때 급한 전화가 온 후 대사관 직원이 왔는데 그분들은 제가 충격을 받을까봐 이야기를 안 해주셨고, 공항에서 프랑스 신문들이 꽂힌 스탠드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봤다”고 밝혔다.
이어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수 만 볼트의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이었다. 몇시간을 울었다. 한도 없이 눈물이 났다. 여러 가지 아버지에 대해서나 모든 게 걱정이 됐다”며 “동경에 왔더니 아버지 편지가 와 있었다. 놀랄까봐 자필로 쓰셨더라”고 회상했다.
박 위원장은 “한국에 도착하니 공항에 아버지가 나와 있었다. 나도 마음이 무너져 내려서 주체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저를 위로하고 다독이시려고 노력했다”며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 때 내 일을 하면서 그런 슬픔을 견뎌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피습을 당한 사건을 언급하면서는 “부모님도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며 “시간이 지나서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됐지만 당시 상처가 깊어 얼굴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한손으로 해도 벌어지는 상처를 막을 길이 없어서 두 손으로 꼭 쥐고 병원에 갔다”고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언급했다.
이어 “조금만 더 깊었거나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갔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하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생명을 안 잃어도 마비가 오는 치명상이었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퇴원한 후에 남은 생은 덤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살려주셨기 때문에 앞으로 내 삶은 덤”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가 생기지는 않았느냐. 나같았으면 그럴 것 같다’는 MC 한혜진 씨의 질문에는 “그게 정상”이라며 “이 상처는 안 없어지겠지만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 그것도 없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정치를 위해 이루고 싶은 꿈 그것만을 위해서 산다. 국민을 위해 다 바치자는 생각으로 산다”고 밝혔다.
그는 ‘충신과 간신이 보이느냐’는 질문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살았다. 이러던 사람이 저렇게 되는 것을 겪다보니, 직감 같은 게 생겼다. 그게 대개 맞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몸싸움을 하다가도 상황이 끝나면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발언이 나오자, 박 위원장은 “사실을 갖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악수하는 건 좋은 일”이라며 “하지만,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고 마음에 상처를 내고선 갑자기 웃고 악수하는 식의 행동은 악성코미디고 가식”이라고 지적했다.
7년여만에 TV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박 위원장은 ‘차가울 것 같다’는 이미지에 대해 “국회에서 (기자들이)질문할 때에는 재밌는 것으로 질문하지는 않는다. 심각한 문제 다른데서 풀다 풀다 안 되니 '아무개 답해라'하는 것”이라며 “첨예한 갈등이 얽힌 문제에 대해 답을 하면서 웃으며 즐겁게 할 순 없지 않는가. 그러다보니 국민 여러분이 항상 딱딱딱한 표정만 보게 되는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