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 씨의 단상을 보내드립니다.
예전 책들에 비해서 감동의 깊이는 좀 떨어지지만
여행에 관한 내용 만을 뽑아 보았습니다.
1. 일상을 벗어나 상이한 풍경, 상이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그 문화와 접촉하는 여행의 시간, 그 놀라운 감동은 매번 나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건축에 대한 꿈을 상기시켜 준다.
2. 여행이란 홀로 떠나는 것이리라.
일상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미지의 장소에 홀몸으로 다다랐을 때 인간은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고,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눈길을 던지게 된다.
고독이야말로 긴장과 불안, 삶의 지난함과 위대함을 가르쳐준다.
3. 구체적인 이동만이 '여행'이 아니다.
그 궤적을 더듬으며 반추하여 기억을 보다 깊이,
뚜렷하게 만드는 사색의 '여행'도 존재하리라.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여행'이 얼마나 격렬히 마음을 흔들었는가,
얼마나 스스로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방시켰느냐다.
건축을 직업으로 삼는 나라는 인간의 골격은
'여행'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4. 여행은 인간은 만든다.
나 또한 전 세계 도시란 도시를 방문하고,
길이란 길을 맴돌고, 골목이란 골목을 수없이 걸어왔다.
긴장과 불안 속에서 낯선 땅을 홀로 헤매다 고독에 쫓기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곳에서 활로를 찾아 시련을 극복하며 여행을 이어왔다.
5. 생각해보면 내 인생 또한 여행이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건축을 지향한 나날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
낯선 땅을 홀로 헤매는 여정과 같았다.
물론 그 사이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과 만나,
때로는 도움을 받았고 때로는 스쳐 지나갔고, 그리고 헤어졌다.
6. 즐거운 날도 있었다.
새삼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오히려 인고의 경험 끝에
얻은 것을 양식으로 삼아 오늘까지 살아온 듯하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항상 고독과 불안과 기대 속에서 홀로
도시를 방황해온 감각이 흐른다.
7. 여행은 고독이다.
그런 가운데서 예기치 않은 일과 수시로 만난다.
인간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행은 건축가를 만든다.
8. 여행은 실재하는 건축을 보기 위한 몸을 움직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발자국 한 발자욱 내디딘 여행의 궤적을 마음으로 되새기고,
길 위에서 만난 것들과 나눈 가상의 대화를 반추하고,
걸어가며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의 깊이를 더하면서 여행은 다시 이어진다.
그런 여행 속에서 나는 건축가가 됐다.
9. 왜 건축가가 됐는가.
내게 건축이란 인간을 알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
그와 동시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지구에 거주하는 일원으로서
사회와 불화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건축이란 언어를 사용하는 나는, 내 안의 사고를 사회에
제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10. 그리고 지금 이렇게 과거의 여행에 대한 문장을 엮고,
기억 속 도시를 맴돌고, 다시 사고 속을 하염없이 헤매는 행위는,
걸어가며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을 다시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직업이기도 하다.
여행은 지금도 내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출처: 안도 다다오, (안도다다오의 도시 방황), 오픈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