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 (4035, 壬午) 조선 숙종 28
5월 삼척영장(三陟營將) 이준명(李浚明)이 울릉도(鬱陵島)를 수토하고 지도와 토산물을 바침.
肅宗實錄 권36.
1705 (4038, 乙酉) 조선 숙종 31
6월 울릉도(鬱陵島) 수토 후 돌아오는 길에 平海 등의 軍官 黃仁建 등 16명이 익사한데 대해 恤典을 거행함.
肅宗實錄 권42.
1708 (4041, 戊子) 조선 숙종 34
2월 부사직(副司直) 김만채(金萬埰)가 울릉도(鬱陵島)에 진(鎭)을 설치하자고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肅宗實錄 권46.
1717 (4050, 丁酉) 조선 숙종 43
3월 강원도 관찰사 이만견(李晩堅)이 흉년을 이유로 당해의 울릉도(鬱陵島) 搜討를 정지하자는 장계를 올려 받아들임.
肅宗實錄 권59.
1726 (4059, 丙午) 조선 영조 2
10월 강원도 儒生 이승수(李昇粹)가 울릉도(鬱陵島)에 邊將을 두고 주민을 모아 경작하게 하자고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英祖實錄 권1.
1735 (4068, 乙卯) 조선 영조 11
1월 강원도 관찰사 조최수(趙最壽)가 흉년을 이유로 당해의 울릉도(鬱陵島) 수토를 정지할 것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英祖實錄 권40.
1769 (4102, 己丑) 조선 영조 45
10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건의로 文蹟을 널리 모아 울릉도에 관한 책자를 만들기로 함. 제조 원인손(元仁孫)에게 명하여 삼척영장을 지낸 자와 더불어 울릉도의 지형과 물산을 그리게 함.
英祖實錄 권113.
1775 (4108, 乙未) 조선 영조 51
일본 최초로 경위도선을 그려 넣은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일본여지노정전도(日本輿地路程全圖)에 울릉도와 독도가 각각 '다케시마 혹은 이소다케시마(竹島一云磯竹島)', '마츠시마(松島)'로 그려졌다. 울릉도 오른 쪽에 "(이 섬에서) 고려를 보는 것이 이즈모에서 오키도를 보는 것 같다(見高麗猶雲州望隱州)"고 부기하여, 두 섬을 조선의 영토로 구분함.
日本輿地路程全圖.
1785 (4118, 乙巳) 조선 정조 9
일본의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저술한 三國通覽圖說의 附圖 「三國接壤地圖」와 「朝鮮八道地圖」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표기함.
三國通覽圖說.
1787 (4120, 丁未) 조선 정조 11
7월 울산어부 14명이 울릉도(鬱陵島)에서 전복과 향나무, 대나무 등을 채취하고 돌아오다가 삼척 포구에서 잡힘.
正祖實錄 권24.
1794 (4127, 甲寅) 조선 정조 18
6월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沈晉賢)이 울릉도 수토결과를 보고함. 搜討官 월송만호(越松萬戶) 한창국(韓昌國)은 4월 21일 출발하여 5월 8일에 돌아옴. 그는 4월 26일 가지도(可支島)를 다녀옴.
正祖實錄 권40.